모종의 분갈이가 필요한 때
요즘 전 세계가 이상기온인데, 캐나다도 예외는 아니다. 밴쿠버의 경우, 작년 여름엔 평년보다 10도 이상의 고온이 계속되어 42도의 기온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시켜주더니, 겨울에는 영하 13도로 내려가며 눈이 계속 오는 이변이 발생하기도 했다. 원래는 보통 일 년 내내 별로 춥지도 별로 덥지도 않은 날씨를 유지하며 비가 오는 것이 이 지역의 특색인데 놀랄만한 일이었다고 기록된다.
그런데, 요즘 날씨도 여전히 이상하다. 한국은 에어컨을 틀고 반팔을 입고 다닌다는데, 여기는 여전히 춥다. 최저가 3~6도, 낮에도 9~13도 정도이고 여전히 매일 비가 온다.
문제는, 늘 이맘때쯤이면 모종을 마당에 내다 심었을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집에는 내가 3월부터 발아시켜서 실내에서 곱게 키우다가 온실로 내보낸 모종들로 넘쳐나는데, 이것들을 여전히 실내에 있어야 한다. 심지어 온실 안에서도 밤에는 히터를 틀어줘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
물론, 상추나 무, 배추, 시금치 같은 작물들은 이 정도 날씨에는 야외에서도 쑥쑥 잘 자라지만, 토마토, 고추 같은 것들은 열대성 식물이기 때문에, 최저 기온이 10도 정도는 되어줘야 한다. 안 그러면 감기 걸리거나 죽어버린다. 오이나 호박도 그보다는 낫다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아직 춥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지만, 역시 생명을 다루는 일은 더더욱 그러하다. 마켓에서 파는 모종이 때론 너무 비싸다고 느껴진다. 내 주머니를 털어서 돈이 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러나 모종 하나를 키워내기 위해서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하는지 알기에, 그게 사실은 전혀 비싼 게 아니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때도 있다.
내가 3월 초부터 키운 모종들은 지금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어서 목을 빼고 좋은 날씨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날씨가 좋으면 바로 땅에 심어도 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온실 속의 화초들이 새 세상에 나가기 위해서는 경화 작업이 필요하다. 온실 속의 화초 같다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날이 온화할 때를 잡아서 반그늘에서부터 조심스레 바깥 날씨를 맛을 본다. 햇볕이 필요하지만,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막도 필요하다. 처음에는 한 시간 정도 바깥바람을 쐬고, 그다음 날에는 좀 더 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점차 외부 공기와 친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줄기는 더욱 단단하게 굵어지고, 뿌리도 당연히 쑥쑥 자란다. 그런데! 이렇게 날씨가 계속 추우면 갈 곳에 못 간 채, 작은 모종용 화분 안에서 발을 옹크리고 있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버티지만, 날짜가 갈수록 뿌리는 화분 안을 맴맴 돌면서 스스로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옭아매는 것이 점점 심해지면, 자기 뿌리를 가지고 자기를 동여 매어 결국 꼼짝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면 제대로 영양 흡수도 물 흡수도 못하고 식물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전족을 한 발처럼 되기 때문에 걷기도 힘든 것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지경이 되기 전에 분갈이를 해줘야 한다. 꼭 그 지경이 되지 않더라도, 식물의 크기에 맞는 적당한 크기의 화분으로 적절하게 옮기면 훨씬 더 잘 자란다.
아래 사진은 같은 날 사온 3개의 할라피뇨 고추 모종 사진이다. 가운데 있는 녀석이 살짝 크길래 처음에 그것만 분갈이를 해줬다. 그랬더니 머지않아서 크기 차이가 확연하게 벌어졌다. 이 사진을 찍은 후에 물론 나머지 두 개도 결국 분갈이를 해줬고, 지금 추워서 집안에서만 키우는데, 고추가 벌써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모종을 심으면 정식하게 될 때까지, 보통은 한 번 정도, 기간이 길어지면 두세 번 분갈이를 하게 된다. 그것은 식물의 상태를 보면서 진행한다.
어떨 때에는 작은 화분에 잔뜩 씨를 뿌렸다가 발아되는 것들만 꼬마 화분으로 옮기기도 한다. 사실 발아가 얼마나 될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부터 화분 하나에 씨앗 하나를 심지는 않는다. 따라서 왕창 올라올 때도 있고, 한 두 개 올라올 때도 있다. 물론 아예 하나도 안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분갈이는 어쨌든 필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모종 키우기와 분갈이에서 알아둬야 할 것들을 챙겨보자. 이 분갈이의 설명은 모종을 기준으로 한다. 즉, 실내용 화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화초마다 선호하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분갈이도 진행을 해야 한다. (나는 실내용 화분 키우기에 취약하다)
1. 처음 싹이 트면 바로 그로우 라이트 아래로 보낸다.
보통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고온이 유리하다. 그래서 습기를 넉넉히 머금게 해서 뚜껑을 덮고, 아래에 전기장판을 깔아서 발아를 시키면 굉장히 빨리 발아가 된다. 씨앗에 따라서 빛을 좋아하는 것들이 있고(광발아), 어두워야 싹이 트는 것들(암발아)이 있으니 구분해서 두는 것이 좋다.
그러나 어떤 종류이건 간에, 일단 싹이 트고 나면 좀 선선하게 해 주며, 충분한 빛을 쐬어 주는 것이 좋다. 너무 더우며 줄기가 힘이 없고, 게다가 빛이 모자라면 빛을 찾아 계속 길게만 웃자라서 허약한 모종이 된다. 이런 경우 명대로 못 살기 때문에, 고생만 하고 결실을 못 보는 경우가 태반이니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영상 10도 정도의 해가 잘 드는 베란다는 최적의 장소이다. 그러면 굵고 튼튼하게 자랄 것이다. 만일 집안에 해가 잘 드는 곳이 없으면, 실내에서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그로우 라이트(grow lights)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이 경우, 햇빛보다 약하므로, 최대한 새싹에 가깝게 바짝 붙여서 쬐어준다. 그로우 라이트도 잠자는 시간에는 꺼줘서, 식물이 밤에는 잠을 잘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2. 분갈이는 떡잎 이후 진짜 잎이 나왔을 때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제 막 밀고 나온 새싹은 아직 뿌리라 할 것이 없다. 그야말로 젖먹이 아가이다. 이럴 때 옮기면 스트레스받아서 죽기 쉽다. 좀 더 힘을 키울 때까지 기다려준다. 그 신호가 바로, 진짜 잎이다. 이것이 나와서 형태가 잡히면 그때 옮겨주기 좋다.
3. 하나의 화분에 여러 개의 식물이 같이 있으면 경쟁이 심해서 제대로 안 자란다.
좁은 방에 다닥다닥 붙어있으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 식물도 마찬가지다. 양분도 빨아야 하는데, 옆에 있는 뿌리는 참으로 성가시다. 특히 날이 갈수록 서로 세력을 뻗고 싶은데, 얌전하게 사회생활하려니 기를 못 펼 수밖에! 그래서 준비가 되면 빨리 독립시켜주는 것이 좋다.
아래 보이는 것은 천국의 계단 또는 야곱의 사다리라고 불리는 Jacob's ladder라는 화초다. 다년생인데, 한 군데에 씨를 넉넉히 뿌렸더니 이렇게 많이 발아를 했다. 두 번째 잎이 나오면 바로 분갈이를 해줘야 하는데 바빠서 한참 못했더니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이렇게 멈춰있었다.
화분 놓을 자리도 없고, 아직 너무 작아서 그냥 각각 하나의 달걀 껍데기로 독립을 시켜줬다. 위 사진을 보면, 같은 날에 씨를 뿌렸는데, 두 주일 전쯤 옮겨준 녀석들은 확 커졌다는 게 보인다. 나중에 옮겨 심은 아이들과 비교해볼 때 크기 차이가 확연하다. 지금은 더 자라서 더 큰 곳으로 옮겨갔다.
4. 적당한 크기의 화분으로 옮긴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마냥 큰 화분으로 옮길 필요는 없다. 그러면 쓸데없이 자리를 차지해서, 키우는 사람도 힘들거니와, 어린 식물들은 약간 화분 벽에 의지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아늑한 기분이 들 수 있도록 적당한 크기의 화분으로 옮겨주자.
나는 이렇게 계란 껍데기 화분에 파종을 하곤 하는데, 이만큼 자라서 뿌리가 밑으로 나올 때쯤 분갈이를 해준다.
손으로 살짝 힘을 줘서 으깨면 달걀 껍데기는 쉽게 부서진다. 그러면 살살 제거하고, 뿌리의 상태를 본다. 이 정도의 상태라면 아주 양호하다. 건강하게 뿌리가 잘 자라고 있으니, 별로 신경 쓸 일 없이, 이보다 한 단계 큰 화분으로 옮겨 심어주면 된다.
5. 흙이 약간 말랐을 때 옮기는 것이 더 쉽다
흔히들 분갈이 전에 물을 넉넉히 주라고 하지만, 막상 모종의 뿌리는 약간 말랐을 때가 더 편하다. 특히 여러 개가 하나의 화분에 있을 때는 더 그렇다. 젖었을 때는 서로 들러붙는다. 머리카락을 생각해봐도, 젖었을 때 엉킨 머리를 빗질하면 손상이 더 잘 되기 때문에, 머리 감기 전 마른 상태에서 빗질을 해주는 것이 좋은 것과 같은 원리이다.
화분에서 모종을 꺼내서 살살 털면, 사이에 붙은 흙들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면서 훨씬 안전하게 분리가 된다. 뿌리 다친다고 너무 심하게 겁먹을 필요 없다. 식물들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아래 양파는 좀 더 적극적으로 뜯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어린 모종들은 살살 털면서 당기면 쉽게 분리된다.
6. 분갈이 타이밍이 늦어서 뿌리가 뭉쳤으면 잘 풀어준다.
우리는 흔히, 식물이 스트레스받을까 봐, 화분에서 꺼내면 아주 살살 새 화분에 넣고 그대로 덮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렇게 해야 하는 식물 종류도 있다) 많은 경우, 식물의 뿌리들은 끊어져도 다시 쉽게 자란다. 오히려 끊어주는 것이 성장을 촉진하기도 한다.
특히, 타이밍이 늦어서 뿌리가 똬리를 틀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풀어줘야 한다. 전족처럼 스스로를 동여맸다면, 이 상태로 분갈이를 해줘도 스스로 풀 힘이 없어서 그대로 굳어버린다. 결국은 양분과 수분을 빨아먹지 못해 성장도 못하고, 그러다가 죽어버리기 십상이다.
처음에는 잘 모르고 조심스레 심거나, 아니면 끝부분만 살짝 터주고 심었는데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려서 상심한 경험도 있다. 화원에서 사 오는 모종들, 특히 세일 중인 것은 대부분 상태가 많이 심하다. 이런 경우, 죽은 모종을 화단에서 뽑아보면 전혀 뿌리를 뻗치지 못한 채, 처음 심은 그 상태 그대로 쉽게 빠져버린다.
7. 옮겨줄 때 영양을 살짝 제공한다.
처음 발아를 시킬 때에는 양분이 별로 없는 흙에 씨를 심는다. 발아를 위한 양분이 씨 자체에 이미 있으며, 자칫 양분이 있는 흙에서는 씨앗이 썩어서 비료가 되고자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싹이 올라오고 나면, 이제 성장을 해야 하는데, 씨앗 안에 있던 양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거름이 섞인 흙의 새 화분에 옮겨주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거름이 너무 강하면 뿌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나는 모종을 옮겨 심을 때면, 새 화분의 아래쪽에 흙을 좀 깔고, 그 위에 골분 비료(bone meal)를 살짝 흩뿌려준다. 그리고 다시 흙을 조금 더 덮고, 그 위에 모종을 넣는다. 골분 비료는 뿌리의 활착을 돕는다. 모종이 얼마나 잘 자라느냐는 뿌리가 얼마나 튼실하게 자라느냐에 달려있다.
8. 옮겨 심은 후 물을 준다.
새 화분에 옮겨 심었으면, 잘 자리 잡게 눌러주고, 그 위로 부드럽게 물을 준다. 물론 수분을 공급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뿌리 사이사이의 빈틈에 흙이 밀려 들어가서 뿌리를 들뜨지 않게 안착시켜준다.
대부분의 채소나 꽃은 잎에 물을 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은 흙 가까이서 살살 주는 것이 좋다. 위에서 고공 낙하하면 흙이 파이고, 안에 물길이 생겨서, 제대로 흙이 물을 흡수 못 한 채 밑의 구멍으로 빠져나가기 쉽다.
9. 분갈이 이후에는 그늘에서 쉬게 한다.
분갈이는 새집으로의 이사이다. 따라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사하고 힘들어 죽겠는데, 나가 놀자고 하면 반갑지 않다. 무리하면 병이 나기도 하지 않은가. 식물도 마찬가지다. 화분으로 분갈이를 했을 때에는 그늘에 둔다. 만일 마당에 정식으로 옮겨 심는다면, 아침보다는 초저녁에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밤새 잘 쉬고 나서 다음날부터는 해맞이를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모종은 발아 이후에 최소 한번 이상은 옮겨심기를 하게 된다. 호박이나 오이 같은 것은 자라는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좀 큰 화분에 키우면 옮기지 않고 곧장 밭으로 나갈 수도 있지만, 토마토 같은 경우 나는 최소 두 번, 필요하면 세 번 옮긴다. 옮길 때마다 거름이 섞인 흙을 넣어주고, 골분 비료도 함께 더해주면 힘이 있는 모종이 되어서 나중에 병 앓이를 할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77년 만의 이상기온이라 일컫는 캐나다 비씨 주의 봄추위는 언제나 끝날지 모르겠고, 온실은 미어터진다. 그래도 언젠가 따뜻한 날씨는 찾아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