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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24. 2022

일 년간 매일 먹은 어머니의 김밥

김밥 그 무궁무진한 자유

최근 종영된 드라마 우영우. 나처럼 외국에 살면서 티브이를 안 보는 사람에게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이다.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이 정말 한참 뜨거웠으니까. 그러면서 거기에 나오는 김밥을 만들어봤던 사진들이 줄줄이 올라오기도 했다.


전혀 생소한 김밥 모양이 내 관심을 끌었다. 사실 나는 언젠가부터 탄수화물을 확 줄여서 김밥을 거의 먹지 않지만, 한때는 매일 김밥을 먹던 시절도 있었다.


이 기억은 삼십 년도 더 전의 과거로 내려간다. 나는 당시에 대학생이었고, 막내 여동생은 중학생이었다. 일반적으로 대학생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지 않지만, 어머니는 동생들의 도시락을 싸야 했다. 그래서 덕분에 내게까지도 혜택이 내려온 것이었다. 사실 말이 대학생이지, 빠듯한 용돈을 아껴 써야 하는 입장에서, 도시락을 싸주시면 정말 감지덕지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입장에서, 매일 도시락 반찬을 고민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그래서 어머니는 가장 간편한 김밥을 싸기로 하셨다. 김밥이 마냥 간편하지는 않다. 작정하고 김밥을 싸자면, 각각의 재료를 준비해야 하고 그러기에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우엉채까지 넣는다면 더욱 그럴 일이다.


어머니의 김밥은 그런 김밥이 아니었다. 냉장고 털이 김밥이었다. 전날 저녁에 먹고 남은 반찬들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어차피 한식에는 반찬이 여러 가지가 있으니, 아침에 그 재료를 이용해서 재빠르게 자식들의 김밥을 싸셨다. 어떤 날은 멸치 볶음이 들어있었고, 어떤 날은, 오징어 진미채가 들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생이어서 멋 내기 바쁜 나를 위해서는 좀 더 특별한 배려를 해주셨다. 요즘 대학생들이야 백팩을 메고 청바지를 입고 가볍게 다니지만, 당시만 해도 교복에서 갓 벗어난 대학생들은 드디어 자유를 만끽하며 패션에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물론 나도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기도 했지만, 높은 구두에 목에 레이스가 붙은 블라우스 같은 것을 입기도 했다. 그리고 백팩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 어깨에 작은 핸드백을 메고, 책을 한가득 가슴에 끌어안고 다니는 것이 당시의 유행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우습고 촌스럽지만, 그때는 그게 그렇게 쿨했다. 더구나 불어과였던 나는 그 책들이 예쁜 원서라서 더욱 패션에 도움을 준다는 친구들의 말에 동조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니 그 상황에 도시락 가방을 따로 챙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핸드백은 턱없이 작았다. 


어머니는 김밥을 싸서는, 네모나게 쿠킹포일로 감싸고, 그것을 다시 비닐봉지에 담아서 주셨다. (당시에는 일회용품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다) 그러면 그게 핸드백에 쏙 들어갔고, 나는 구내식당에서 꺼내먹은 후, 그대로 버리면 되니 너무나 간편했다.


그 김밥 점심은 일 년 정도 지속되다가 끝이 났다. 내 동생이 드디어 김밥을 더 이상 못 먹겠다고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나만 먹자고 아침마다 김밥을 싸시라고 하기에 죄송해서 그 도시락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지만, 나는 정말 신기하게도 일 년이 되도록 전혀 질리지 않았고, 지금 생각해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시 초중고등학교에는 급식이 없었고, 고등학생들은 야간 자율학습 의무로 인해 도시락을 두 개씩 싸야 했으니, 아이 셋이 모두 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의 도시락 노동은 정말 대단했으리라. 매일의 반찬 고민도 그러했겠고 말이다.


그러나 내가 아이를 낳아 초등학교에 보냈을 때에는 도시락이 없었다. 학교 급식이었고, 엄마들이 가서 급식당번을 섰다. 그러면서 참으로 감지덕지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그 딸이 커서 독립하고, 대학원 다니면서 혼자 김밥을 싸가지고 다닌다. 역시 전천후 김밥이다. 냉장고의 이것저것을 넣어서 아침에 둘둘 말아서 간다고 하는데, 고맙고 기특하다.




나는 잠시 과거의 추억 속에 잠겼다가 더운 여름 저녁 메뉴로 김밥을 싸기로 했다. 물론 집에 우엉도 없고, 단무지도 없고, 햄도 없으니, 나도 어머니처럼 냉장고를 뒤져서 쌀 수밖에 없었다. 


샐러드에 넣어 먹고 남은 연어캔 마요 믹스, 소고기 다짐육, 달걀이 있으니 이걸 단백질로 잡고, 낮에 만들고 남은 당근 라페와 오이 랠리쉬를 넣어서 싸기로 했다. 그리고 싸는 김에 요즘 유행인 우영우 접는 김밥도 같이 시도해보았다.


내가 김밥을 쌀 때에는 밥보다 김을 많이 먹으려고 김을 반장 더 얹어서 싼다. 그러면 안에 검정 동그라미가 생기면서 내용물과 밥이 분리되어 썰었을 때 더 선명해 보인다. 아니면 좀 길게 연장을 해서 깻잎을 놓고 싸도 좋다.


우영우 김밥을 얹어놓고 사진 찍는 나를, 재미있다고 사진 찍어준 남편


하지만 나는 사실 어떤 일정한 규칙 없이 적당히 싸는 편이다. 김발도 있지만 귀찮아서 꺼내지 않고 맨손으로 그냥 싸는데, 그래도 잘 싸진다. 


우영우 김밥은 처음 해봤는데, 좀 실패를 했다. 아무래도 접어 싸는 형태이기 때문에 부스러지는 재료보다는 단단히 붙는 통 재료가 더 좋았을 것을 그랬다. 김에 연어샐러드가 직접 닿으니 녹아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원본에서 햄을 사용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밥이 바깥쪽으로 가게 싸고, 무너지기 쉬운 것을 안에 넣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다음번엔 좀 더 잘할 수 있을 듯.


그래도 자른 단면으로 달걀 프라이가 저렇게 보이니 예쁘더라는!


그렇게 해서 후다닥 일반 김밥 두 줄 싸고, 우영우 김밥 두 개 싸서 저녁을 푸짐히 해결했다. 어차피 두 사람이 먹으니 많이 쌀 필요도 없었다.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는 자리에서 남편에게도 나의 옛날이야기를 해주며 추억에 잠기는 시간이었다.




가을엔 한국에 가서 어머니를 뵐 예정이다. 이젠 손떨림도 있으신 어머니는 더 이상 김밥을 싸지 못하신다. 그래서 가끔 사드신다고 한다. 이번에 한국에 다니러 가면 옛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김밥을 싸드려야겠다.




이번 레시피는 쉽니다. 사실상 레시피랄 것이 없네요. 그냥 김 놓고, 밥 놓고, 아무거나 집에 있는 것 얹어서 싸는 김밥이다보니 팁이랄 것도 없습니다. 다음번에 당근 라페 레시피를 소개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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