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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06. 2022

완전히 하얗게 살 수는 없지만...

하얀 꽃 모두 모여봐

치자꽃이 피었다. 원래 심어둔 곳이 그다지 해가 안 드는 곳이라 꽃이 안 파는 듯했다. 그래서 옮기면 좋겠다 생각하고 화분에 담아두고는 깜빡하고 몇 달이 흘러버렸다. 그렇게 방치된 치자나무는 삐쳤나 보다. 아니면 시름시름 아팠던 것도 같다. 뒤늦게 발견하고 해가 잘 드는 곳으로 옮겨왔더니, 잎도 많이 잃은 상황에서도 예쁘게 꽃을 피웠다. 예쁘고 향기로운 꽃을...


치자꽃 (gardenia)


하얀 꽃을 보고 있노라니, 하얀 꽃들이 과연 얼마나 완전히 하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순백의 꽃이라고 하기엔 약간 미색의 기운을 가진 치자꽃. 우리는 어느 정도 흰색일 때까지 그걸 흰색이라고 부를까?


사람은 얼마나 고결할 수 있을까? 사람은 얼마나 순수할 수 있을까? 티 한점 없고,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어야 아름다운 사람일까?


꽃들은 보면, 흰색이 완벽하지 않아도 그 하얀 느낌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을 맑고 깨끗한 기분이 들게 해 준다면, 우리 인간들에게도 좀 너그러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언뜻 보면 흰색처럼 보이는 이 달리아는, 속 안에 연분홍을 품고 있다. 사랑의 마음을 숨기듯 말이다. 


달리아(dahlia)


하얗게 핀 함박꽃, 작약을 보면 그저 하얗기만 해 보이는데, 그러나 봉오리에는 붉은 기운이 보인다. 꽃받침이 붉은 작약은 활짝 피면 그 붉은 부분을 살짝 가려 하얗게 보이고 싶은가 보다.


함박꽃 작약 (peony)


이 하얀 제라늄은 안쪽에 붉은색을 수줍게 드러내고...

제라늄(geranium)


이 수선화는 뜨거운 가슴을 활짝 열어 보여준다.

수선화(daffodil)


작약 부럽지 않게 화려한 붓꽃은, 화려한 속을 숨길듯하며 겹겹이 보여준다. 어디까지가 안이고 어디까지가 바깥인지 경계도 모호하여 겹겹이 입은 치마 속 같은 꽃이다.


붓꽃(iris)


다른 색의 꽃들 옆에서 흰색이 더욱 돋보이기도 한다. 눈이 부시게 하얀 튤립은 붉은 꽃 옆에서 더욱 도도하고, 하얀 꽃잎의 봉선화는 빨간색, 분홍색 친구들 옆에서 더욱 청순하다.


튤립(tulip) / 봉선화(garden balsam)
페튜니아(petunia)


보라색 틈에서 흰색을 강하게 뽐내는 페튜니아는 여름 내내 수도 없이 피었다가 졌다가 하며 우리집 꽃바구니를채워준다. 올해 바구니는 이렇게 두가지 색으로만 책웠다.


아래 왼쪽은 뒷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이다. 전부 진분홍의 로즈캠피온인 줄 알았는데, 올해 흰색이 이렇게 많이 피어서 깜짝 놀랐다. 이웃집에 씨앗 좀 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이렇게 흐드러지게 흰색을 과시하다니! 이 꽃도 여름 내내 열심히 핀다.


로즈캠피온(rose campion) / 니코티아나(nicotiana)


위 오른쪽은 올해 처음 키워보는 꽃, 니코티아나. 지금은 여러색이 뒤섞여 하나 가득 피었지만, 이렇게 가련하게 처음 한 송이 피었을 때의 모습은 내 가슴을 쿵 뛰게 만들었다. 이 꽃의 매력은 분꽃만큼이나 향기롭다는 것이다. 


글라디올러스는 층층이 꽃이 피고, 또 층층이 꽃이 진다. 아래쪽부터 시들어가면서도 위쪽에서는 우아함을 잃지 않는 이 꽃은, 아래쪽 꽃잎을 제거해주면,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아름다움을 계속 과시한다.


글라디올러스(gladiolus)


탐스러운 흰꽃 중에는 플록스가 있다. 한아름 안겨줘서 행복을 크게 전해주는 이 꽃은 몹시 향기롭다. 특히나 흰 꽃이 더 향기롭다.


플록스(phlox)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 산천에 백도라지... 텃밭에 심어 놓은 도라지들이 꽃필 때면, 텃밭 같지 않고 화단 같아진다. 그중에서 백도라지는 눈이 부시게 하얗다.


도라지(balloon flower)


나무도 있다. 뒷마당에 탐스럽게 피는 체리나무 꽃은, 어찌 이렇게 하얗게 피었다가는 빨간 체리를 내어 놓는가? 순수한 하양이 붉은 정열로 변하는가 보다.


체리나무 (cherry tree)
목수국 퀵 파이어 (quick fire)


너무나 아름다운 이 꽃을 보고 반했던 적이 있었다. 무슨 꽃인지 모르고 2년을 보냈는데, 다시금 찾게 된 이 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수국과 상당히 다른 느낌의 꽃이었다. 화원을 여기저기 헤매어 딱 우리가 원하는 꽃을 구해서, 앞마당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심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얀 꽃은, 가을이 되면 분홍색으로 시들어간다. 시든 것이 시든 모양새가 아니라 더 예쁜 특별한 꽃이다.


소박한 풀꽃으로 돌아와 보자. 깨끗한 하얀색으로 피는 이 꽃은 머스크 맬로우. 꽃도 예쁘고, 봉오리도 예쁘고, (사진엔 없지만) 씨방도 예쁘다. 여린 듯 탄탄하고 씩씩하다.


머스크 맬로우 (musk mallow white)


노란 꽃심때문에 흰색이 더욱 돋보이는 데이지들은, 여러 가지 종류로 피어나서, 늘 방긋 웃는 모습을 보인다. 순백이 아니어서 순진해 보이는 얼굴의 꽃들은 키가 커도 귀엽고, 키가 작아도 귀엽다.


데이지(daisy)


들판이나 구석에 아무렇게나 피어나고, 무리 지어 번져도 고상해 보이는 흰 꽃도 있다. 어찌나 고상한지, 이름도 베들레헴의 별이다. 초록색 위에 흰 줄을 머금고 있는 이파리도 꽃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녹색이 돕는 흰색이라니!


베들레헴의 별 (star of Bethlehem)


작은 꽃들이 모여서 큰 꽃처럼 보이게 하려는 꽃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들이다. 하얀 점들이 모여서 커다란 하나의 꽃을 이룬다. 흰색의 협력이라고 할까?


맛있는 참나물이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우다니!


참나물 꽃 (ground elder)


스스로 예쁘다고 인정받기보다는, 다른 꽃들 옆에서 보조 역할을 할 때 주로 사용되는 알리섬도 따로 자기 혼자 피면 이렇게 예쁘다.


알리썸 (alyssum)


별처럼 예쁜 초록잎 위에 달콤하게 피어나는 스위트 우드러프는 이른 봄, 화단에 생기를 더해주는 반가운 꽃이다. 번짐이 심하지만, 또 쉽게 컨트롤할 수 있는 이 꽃은 꽃이 져도 예쁘다.


스위트 우드러프 (sweet woodruff)


헛꽃과 진짜 꽃이 함께 있는 이 캔디터프트는 안쪽의 짧은 꽃잎과 바깥쪽의 긴 꽃잎이 너무나 예쁘게 조화를 이룬다. 역시 이른 봄에 피어난다.


이베리스(Iberis)라고도 불리는 캔디터프트 (candyfuft)


그리고 오늘 흰꽃의 마지막 주자는, 내 약혼반지에 영감을 준 '앤여왕의 레이스'라는 이름의 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위쪽으로 솟아오른 꽃이 너무나 예뻐서 그런 모양의 반지를 골랐고, 들판에서 같은 꽃을 찾았다고 한 뿌리 퍼왔는데...


Queen Ann's Lace


활짝 핀 그 꽃을 위에서 바라보니, 이렇게 화려하게 생겨서 깜짝 놀랐다! 게다가 쳐다보고 있는 내게 사랑 고백을 하듯 하트 모양을 보여주다니! 이 꽃은 톱풀(yarrow)였다. 내가 봤던 그 꽃보다 더 화려한 꽃이었구나. 


아름다운 흰색, 그대를 사랑해!


톱풀 (yarrow)


때론 얼마나 하얀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안에 진심을 담고 있다면, 빛이 바랜 흰색도, 얼룩이 있는 흰색도 모두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게 삶의 흔적인 듯. 나도, 당신도,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해.





몇몇 다른 작가님들과 '세상의 중심에서 사진을 외치다'라는 매거진에 매달 한 편의 사진이 담긴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요새 마음 쓰이는 곳이 많아서 사진 글 올리는 것이 쉽지 않네요. 글 중심으로 가는 것과 사진 중심으로 가는 게 이렇게 다를 수가 없습니다. 이미 한 번 약속을 어겼는데, 앞으로도 잘 못 지킬 것 같아요. 사진은 당분간 쉬어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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