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당근은 겨울에 좋은 음식
당근을 싸게 팔길래 큰 봉지로 하나를 샀다. 당근이 좀 많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 소비할 수 있는 수준이 도저히 아니었다. 처음에는 갈아서 주스로 마셔야겠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니 날것으로 먹기에는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지용성 베타카로틴이 듬뿍 들은 당근은 기름을 이용해서 익혀 먹는 것이 흡수에 훨씬 좋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날씨는 추워졌고, 남편은 얼마 전 배달받은 우드칩을 나르느라 밖에서 바빴다. 어차피 힘쓰는 일이다 보니 나는 밖에서 별 도움이 안 되기에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 당근을 발견한 것이었다. 이런 날씨에 바깥에서 일을 하고 들어오면 뭔가 따끈한 수프가 있으면 딱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손이 갑자기 바빠졌다.
며칠 전에 조선호박 수프도 끓여 먹었지만(https://brunch.co.kr/@lachouette/541) 서양식 수프는 대개 다 비슷하다. 한국 사람이 된장찌개 끓이는 것처럼 딱히 레시피도 필요 없다. 기름에다가 양파랑 마늘이랑 볶다가 원재료 넣고 볶고, 그다음에 육수 부어서 끓이면 된다. 재료가 잘 익어 무르면 믹서로 갈아주면 예쁜 수프가 완성된다.
야채 육수를 써도 되고 고기 육수를 써도 된다. 그에 따라 맛이 바뀐다. 아무것도 없으면 물을 넣어도 무방하다. 이미 맛은 기본 재료로 잘 나고 있으니까. 그러고 나서 취향에 따라 생크림을 섞거나 버터를 섞어주면 고소함이 배가 된다.
그 정도의 고소함보다 더 진한 고소함을 넣고 싶다면, 편법으로 견과류를 사용하면 된다. 믹서기 성능이 아주 좋은 게 아니라면 좀 부드러운 견과가 좋다. 호두는 좀 텁텁함이 있으니 캐슈나 잣이 좋고, 아몬드는 껍질 까서 납작하게 썰어 나오는 것을 사용하면 된다. 그도 아니라면 그냥 아몬드가루 같은 것을 섞어줘도 된다. 다만, 견과류에는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누가 먹느냐에 따라서 주의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 감칠맛을 얹고 싶다면 레몬즙을 살짝 추가한다. 그러면 뭔가 맛이 쨍 해진다. 레몬이 없으면 애플 사이다 식초를 살짝 넣어도 된다. 다만 너무 많이 넣으면 시큼해질 수 있으니 한 숟가락 정도로 사용한다.
수프의 메인 재료는 당근이나 호박뿐만 아니라, 브로콜리, 컬리플라워, 비트, 고구마 등등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 각기 다른 색감이 식욕을 자극한다. 손님 초대를 할 때, 이런 수프를 하나 장만해두면 좀 더 정성스럽고 예쁜 식탁이 될 것이다.
재료의 맛에 뭔가 추가해서 다른 특징을 살려줄 수도 있다. 카레가루나 큐민, 정향, 코리앤더 가루 등을 사용해서 개성이 강한 수프를 만들 수도 있다. 고추장이나 핫소스를 살짝만 섞어서 약간 매콤하게 한다면 추운 날씨에 적당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번에 살짝 색다르게 해 보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양파와 같이 볶았을 당근을 구워보기로 했다. 수프에 고소함을 더해주기 위해서 재료를 굽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손은 한 번 더 가지만, 그래도 좀 더 정성을 들여보고 싶었다.
오븐에 굽기 위해서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는 것이 좋다. 너무 두껍게 썰면 열기를 안까지 익히기 쉽지 않으므로 대략 1cm~1.5cm 정도의 두께로 썰면 좋다. 좀 빨리 하겠다고 길쭉하게 어슷 썰었더니 뾰족한 쪽이 살짝 탔다. 길쭉하게도 썰어봤는데, 그것은 자르는 데에 시간이 좀 더 걸렸다. 한국 당근 같으면 굵어서 그냥 둥글 납작하게 써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올리브유를 한 숟가락 섞어주고 소금을 그 위에 뿌린 후 200도로 예열된 오븐에 한 30분가량 구워줬다. 젓가락이나 포크로 찔러봐서 무리 없이 들어가면 준비 완료.
이제 다른 재료를 준비한다. 당근이 완성될 시간에 맞춰서 진행하면 좋다. 양파부터 썰어주는데, 어차피 나중에 다 갈아줄 것이므로 잘게 다질 필요는 없다. 그래도 마늘이나 생강은 잘게 썰어서 풍미가 미리부터 빠져나오게 해 준다.
오븐에 큰 냄비를 올리고, 올리브 오일은 두 큰 술 정도 두른 후, 불을 약하게 해서 양파를 뭉근히 볶아 준다. 급하게 한다고 태우지 말고, 중불로 살살 투명해질 때까지 익힌다. 그러고 나서 마늘과 양파도 넣고 함께 볶아준다. 이렇게 볶아주는 이유는 풍미를 좀 더 살리기 위함이다. 만일 오븐이 없다면, 굳이 저렇게 따로 구울 필요 없이 양파가 어느 정도 익었을 때에 넣어주고 함께 볶아 주면 좋다.
다 된 것 같으면 물이나 육수를 부어서 끓여준다. 채수나 육수, 또는 맹물도 큰 상관은 없다. 오히려 맛이 너무 강한 종류의 육수는 별로이다. 그리고 물은 많은 것보다 모자라는 것이 안전하다. 자신이 없으면 물을 좀 적게 잡고 시작해도 좋다. 견과류를 넣고 싶다면 지금 넣자. 나는 채 썬 아몬드를 한 줌 넣었다.
바글바글 끓을 때, 오븐에서 나온 따끈한 당근을 쏟아 넣는다. 다시 팔팔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뭉근하게 10분 정도 더 끓여준다. 이때 간을 보고, 간이 모자라면 소금을 추가해준다.
수프를 갈아주는 방법은 핸드믹서를 사용해도 좋은데, 곱고 크림 같은 질감을 원한다면 제대로 된 믹서기에 갈아주는 것이 좋다. 다만 뜨거우니 특별히 조심한다. 믹서기를 너무 꽉 채우지 말고 두 번 정도에 나눠서 갈아준다.
이제 수프를 다시 냄비에 옮긴다. 수프가 너무 된 것 같으면, 이때 믹서기에 묻어있는 수프에 물을 조금 섞어 헹궈 넣으면 좋다. 그리고 수프가 많이 식었을 테니 1~2분 정도만 살짝 더 끓여준다.
이제 다 되었으면 마지막에 맛의 마무리를 위해서, 레몬즙 1큰술 정도 넣어주고, 생크림이나 버터를 넣어준다. 수프가 충분히 묽으면 버터를 넣고, 좀 되직하다 싶으면 생크림 또는 우유를 넣어줄 수 있다.
나는 며칠 전 먹고 남은 스콘이 있어서 호박 수프와 함께 서빙했다. 위에는 색을 위해서 파슬리를 뿌려주었는데, 잣을 얹어도 좋고, 쪽파를 송송 썰어서 얹어도 색은 잘 맞을 것 같다. 아니면 생크림을 조금 넣어 살짝 저어주면 흰 무늬가 예쁘게 나타난다.
아래 사진은 냉장실에 있던 거 이틀 뒤에 데워서 먹은 모습이다. 바빠서 남편에게 말해 급히 데우는 바람에 농도를 안 맞춰서 걸쭉하다. 단백질이 부족해서 수란을 급히 하느라 그랬다.(수란 쉽게 하는 법은 다음에) 나는 사실 걸쭉한 수프를 좋아하지만, 농도는 생크림 같은 것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묽은 것은 구해내지 못해도 된 것은 얼마든지 맞출 수 있다.
이 수프는 만들어서 냉장실에서 이삼일 정도는 끄떡없고, 아니면 냉동해서 보관할 수도 있다. 석 달 정도는 무난히 먹을 수 있다. 세일하는 야채가 있다면 만들어서 날 추운 때 곶감 빼먹듯이 먹어도 좋을 것이다. 그날 내키는 색상으로 골라서 말이다.
8인분
재료:
올리브 오일 1큰술
당근 900g (개수로 하기엔 캐나다 당근과 한국 당근이 너무 다름)
소금 적당히
올리브 오일 2큰술 (볶음 용도)
마늘 1쪽, 납작 썰어서
양파 1개, 채 썰어서
생강 조금, 채 썰어서 마늘만큼
소금 1 작은술
캐슈나 부드러운 견과류 1/4컵 (옵션)
육수 4 컵(1리터), 채수를 사용하거나 육수를 물과 섞어 사용, 또는 물만 사용해도 됨
레몬즙 1큰술
버터 1큰술
만들기:
1. 오븐을 200°C(400°F)로 예열한다. 오븐 랙은 위쪽으로 올린다.
2. 당근을 손질한 후 1~1.5cm 두께로 넓적하게 썬다. 어슷 썰기도 괜찮다.
3. 쿠키 팬에 유산지를 올리고, 그 위에 당근을 올린 후 올리브 오일을 뿌리고 뒤적여준다.
4. 소금도 위쪽에 적당히 뿌려준 후 예열된 오븐에 넣는다.
5. 타지 않는지 관찰하며 노릇하게 익을 때까지 30분 정도 둔다. 젓가락으로 찔러봐서 편하게 들어가야 함.
6. 오븐에서 익는 동안 양파, 마늘, 생강을 썰어서 준비한다.
7. 당근이 준비되기 10분 전쯤, 냄비에 올리브 오일 두르고 준비된 재료를 중약불로 태우지 말고 볶는다.
8. 5~6분 정도 지나 양파가 투명해지면 육수를 부어서 끓인다. 이때 견과류도 같이 넣고 끓인다.
9. 팔팔 끓으면 당근을 넣고, 다시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뭉근하게 끓인다.
큐민이나 카레, 코리앤더 가루 등을 넣고 싶으면 지금 넣는다.
10. 10~15분 정도 끓인 후 믹서기에 넣고 갈아준다.
11. 다시 냄비에 붓고 한 번만 더 끓여준다. 이때 레몬즙 1큰술, 버터 1큰술 넣어주면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