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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Nov 26. 2022

가을이 끝나기 전에 호박파이를!

특별히 부드러운 시어머니표 호박파이를 한국 호박으로 

작년에는 추수감사절 때 시어머니표 호박 파이를 구웠는데, 이번엔 한국에 있었으니 아무것도 못 하고 지나갔다. 그러다 며칠전 미국에 있는 딸과 통화하는데,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교수님 댁에 초대를 받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맞다! 미국은 아직 추수감사절이 아직 안 지났지! 날씨가 훨씬 추운 캐나다는 추수감사절이 미국보다 한 달가량이 빠르다.


어쨌든 파이를 좋아하는 나는 뜬금없이 미국의 추수감사절을 핑계로 시어머니표 호박 파이를 굽기로 마음을 정했다. 다양한 레시피가 있지만, 시어머니의 파이는 유독 부드럽기 때문이다.


시어머님이 남겨놓으신 손글씨 레시피


호박파이를 만들 때의 호박은 무엇을 사용할까? 흔히, 할로윈때 장식하는 펌킨 호박으로 만드는가 생각하지만, 사실 그 호박은 그리 맛있지 않아서, 먹는 용도보다는 장식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된다. 먹는 호박으로는, 여기서는 길쭉한 버터넛 스쿼시가 인기 있다. 우리 한국에서는 늙은 호박이나 단호박을 사용하면 좋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흔히 간편하게 캔으로 된 것을 사용한다. 호박 퓨레라고 불리는 통조림은 미리 준비되어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집에 호박이 아직도 네 덩어리나 있으니, 저걸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푹 익은 한국 호박으로 만들면 당연히 맛있겠지만, 사실 우리 집 녀석들은 푸르스름할 때 따 놓은 호박이어서 속이 얼마나 달지 감도 안 잡혔다. 그러나 뭐,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번 기회에 하나 잡아보기로 했다. 일단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제일 작은, 그러나 거의 50cm 가까이 되는 길이의 날씬이 늙은 애호박을 잘랐다. 이건 원래 늙힐 계획이 아니었는데, 발견하지 못한 곳에 있어서 어느새 커버린 것이었다.


애호박도 늙은 호박이 될 수 있다




호박을 씻어서 반을 갈라보니, 상당히 말라서 과육이 많이 얇아져있었다. 파이 하나 정도는 거뜬히 나오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자랄 경우를 대비해서 고구마도 같이 준비했다. 모자라면 비슷한 맛을 섞어줘야 할 테니 말이다. 


호박이 모자랄까 봐 고구마도 같이 구웠다. 그러나 충분해서 고구마는 그냥 냠냠!


보통 180도 정도의 오븐에 굽는데, 그러면 물이 많이 나오므로 나는 온도를 200도까지 올려서 구워봤다. 그 대신 겉은 타고 속은 안 익을까 봐 작게 잘라줬고, 껍질도 미리 까줬다. 손 가는 게 싫으면, 큼직하게 잘라서 씨만 빼고 껍질 째 구운 후, 긁어내도 된다.


대략 한 50분 정도 구워준다. 살캉하게 익히는 게 아니라, 누르면 무를 만큼 넉넉히 익히는 것이 좋다. 오븐이 없으면 굽는 대신 쪄도 되지만, 그러면 수분이 많아서 질척해지기 때문에, 면포에 받쳐서 물기를 빼서 사용해야 한다.


부드럽게 익은 호박은 푸드 프로세서에 넣고 곱게 갈아주면 호박 퓨레 완성이다.



필요한 재료 중에는 농축우유(evaporated milk)도 있다. 이곳 캐나다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농축우유는, 일반 우유를 약간 졸여서 수분을 살짝 날려준 우유이다. 아무것도 추가로 첨가되지 않았기 때문에 팥빙수에 넣는 연유랑은 다르다. 


한국에서 이걸 구할 수 없다면, 우유를 낮은 온도로 잠시 졸여서 사용해도 된다. 농축우유는 일반 우유의 60% 정도가 되니, 3/4컵의 농축우유를 넣으려면 1과 1/4컵을 졸여서 사용하면 적당량이 될 수 있다. 


캔에 든 호박 퓨레와 농축우유


20분 정도 끓이면 되는데, 이때 불을 약하게 하지 않으면 쉽게 끓어 넘치니 주의해한다. 그리고 자주 저어주지 않으면 위에 단백질 응고된 것이 뜬다. 그 점을 주의해서 만들면 좋다. 집에 재료가 똑 떨어지면 나도 종종 사용하는 방법인데 무리 없이 잘 만들어진다.


다른 재료를 살펴보자면, 여러 가지 향신료가 있다. 생강계핏가루는 필수이다. 넛맥이 들어가야 맛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구하기는 어렵지 않은 듯하다. 서양식 음식을 해 먹는다면 이 넛맥이 은근 쓰임새가 많으니 하나 장만해둬도 좋다. 햄버거 같은 것을 만들 때에도 넣어주면 훨씬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에그넉에도 꼭 필요하다. 


그리고 당밀도 들어가는데, 향과 색을 준다. 한국에서는 식용당밀을 구하기가 힘드니 생략해도 된다. 흑설탕이 들어가면 그것으로 비슷한 맛이 난다.


이제 파이지만 있으면 준비 완료다. 파이지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만들어본 적이 없다면 판매되는 냉동생지를 이용해서 만들면 간편하다. 밀가루를 피하고 싶다면, 아예 파이지를 생략하고 호박 커스터드로 구워도 된다. 남편은 밀가루를 못 먹는 알러지가 있어서, 어머니가 특별히 자신을 위해서 이 커스터드를 만들어주셨다고 했다.


나는 남편을 위해서 밀가루 없는 파이지를 만든다. 파이 좋아하는 나는 늘 파이지를 만들어서 냉동실에 넣어둔다. 한 번에 두 개씩 만들어서 하나만 쓰고 나머지 넣어두면 아주 편리하다. 



파이지는 밀가루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지만, 밀가루 대용품으로 만들어도 손색없이 맛있게 나온다. 밀가루로 하는 경우는 치대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데, 글루텐이 없는 일반 가루는 반죽이 질겨지지 않아서 좋다. 다만 밀가루처럼 낭창낭창하는 반죽은 나오지 않는다. (파이지 만드는 법은 나중에 따로 정리할 예정임)





재료가 다 준비되었다면, 이제 합쳐서 구우면 된다. 이때부터는 일사천리로 빨리 진행되기 때문에, 오븐 예열을 걸어두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먼저 호박 퓨레에 향신료와 감미료를 모두 넣고 잘 젛어준다. 그러면 노랗던 호박이 갈색을 띠게 된다.



달걀은 따로 풀어준 뒤에, 우유와 섞어주고, 다시 호박 퓨레와 섞어주면 끝이다. 내용물이 너무 묽어서 깜짝 놀랄 수 있지만, 그 안에 달걀이 있기 때문에, 굽고 나면 고정이 잘 되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이제 파이지에 부어준다. 좀 더 정성껏 재료를 섞어서 거품도 잡았어야 했는데, 이 날 한국이랑 통화하면서 좀 골치 아픈 일이 생겨서 그냥 대충 휘리릭 부어버렸더니 나중에 거품 올라온 부분이 좀 탔다.



호박이 넉넉해서 두배로 내용물을 준비해서, 나머지는 커스터드로 구웠다. 파이지 없이 굽는 호박 커스터드는 남편의 애정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50분 정도 굽고 나서 커스터드를 먼저 꺼냈다. 아무래도 반죽이 있지 않으니 빨리 익었다. 거품을 정리하지 않아서 위쪽에 탄 흔적은 그냥 모르는 척하기로...


달걀이 들어서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지만, 잠시 후가 되면 다 꺼진다. 원래 이 파이는 식혀서 차갑게 먹는 것이지만, 이렇게 구워서 나왔으니 빨리 맛을 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얼른 커스터드 하나를 꺼내서 잘라 담았다. 그리고 파이지가 없으니 생크림을 듬뿍 얹어서 간식으로 먹었다. 



맛에 관한 남편의 평가는, 서양 호박이어서 풍미가 다르지만 맛있다고 했다. 호박마다 맛이 다르니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남편이 어릴 때부터 먹어온 호박과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나는 원래 설탕을 안 먹지만, 이번에는 흑설탕을 사용해서 색과 풍미를 지켜주기로 했다. 단, 원래 레시피에서 설탕을 반으로 줄여서 만들었다. 그래도 충분히 달다. 



추수감사절도, 할로윈도 지나갔지만, 아직 가을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에겐 호박 파이가 있으니까.





호박파이

20cm(8인치) 파이 틀 1개 분량. 북미식 계량컵 기준 (240ml=1컵)


재료:

차갑게 준비된 파이지 (직접 만들거나 냉동생지를 구매해도 좋다) ★ 

호박 퓨레 1컵

흑설탕 1/4컵 (무설탕으로 하려면 자일리톨 같은 양 사용)

소금 1/2 작은술

넛맥 가루 1/2 작은술

생강가루 1/2 작은술

계핏가루 1작은술

당밀 1큰술 (없으면 생략)

달걀 2개

우유 1/2컵

농축우유 3/4컵 (우유를 뭉근히 끓여서 식혀서 사용해도 된다)


만들기:

1. 파이지를 준비해서 파이 틀에 넣어 모양을 잡는다.

2. 오븐을 220°C(450°F)로 예열한다.

3. 달걀과 우유를 제외한 재료를 먼저 섞어 놓는다.

4. 달걀은 거품기로 살짝 젛어서 다 풀어놓고, 거기에 두 가지 우유를 섞어준다.

5. 모든 재료 섞어서 파이지에 붓고, 예열된 오븐에 넣는다.

6. 오븐을 즉시 180°C(350°F)로 낮추고, 55분~1시간 정도 구워준다.

   이쑤시개로 찔러봐서 반죽이 묻어 나오지 않으면 완성.

7. 그대로 어느 정도 식힌 후, 냉장실에서 완전히 식힌다. 차가운 상태에서 생크림 얹어서 서빙한다.


★ 파이지가 없으면, 오븐용 그릇에 담아서 호박 커스터드로 구워도 된다. 굽는 시간을 40분 정도로 줄인다.

★ 파이지 만들기의 레시피를 원하시면 https://brunch.co.kr/@lachouette/184 이 링크에 적힌 대로 하되, 애벌 굽기 따로 하지 않고 바로 사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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