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집에서 저녁상을 차리곤 하지만, 올해는 특별히 외식과 외박을 해보기로 하였다. 밴쿠버 시내에 있는 실비아 호텔에 가서 저녁 먹고 하룻밤을 보내보자는 것이었다. 이 호텔은 백 년이 넘은 오래된 호텔이었는데, 남편이 전부터 여러 번 언급해서 궁금증이 있던 곳이었다.
젊은이들이게 인기 있는 곳은 아니고, 주로 나이 든 사람들이 찾는 이 호텔은 오래된 곳의 정겨움과 편안함이 있었다. 밴쿠버 앞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있는 곳인데, 여름에는 나무들이 오히려 바다를 가리기때문에 겨울이 선호되기도 한다.
우리는 모처럼의 외출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호텔에 체크인을 한 이후에 바닷가에 나가서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남편이 찍는 사진에서 나는 거의 언제나 얼큰이 숏다리가 된다. 키가 큰 남편이 찍는 사진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진이기 때문에 카메라 각도상 늘 그렇게 찍힐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내 남편의 눈에는 내가 언제나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저녁식사는 호텔 식당의 창가 좌석을 예약해서 와인까지 주문한 식사를 하였다. 월요일은 다이닝룸을 열지 않는다고 해서 약간 캐주얼하게 라운지의 좌석에서 먹었지만 음식은 참 맛있었다.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 우리 부부는 이렇게 외식을 하는 경우, 새로운 요리법을 눈여겨보기도 하며 즐겁게 먹는다. 그리고 웨이터에게 부탁해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사진이 제법 잘 나왔다.
흡족하게 남편에게 보여줬더니, 잘 나왔다고 좋아하면서도, 내 얼굴이 너무 작게 나온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내가 각도상 멀어서 얼굴이 작게 나왔다며 웨이터가 반대쪽에서 찍었어야 했다고 말이다.
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둘이 찍는 셀카는 항상 내가 찍어서 내 얼굴이 넓적하게 나오곤 했는데, 둘이서 찍는 사진이라도 내가 좀 작게 나올 수도 있는 것이지!
그러나 남편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한 것이었다. 얼굴이 작게 나왔다는 것은, 덜 주인공 같다는 느낌이었고,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가 사진의 주인공 같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원래 얼굴이 넓적하고 둥근 것을 선호하는 민족이었다. 얼굴이 달덩이 같다고 하는 것은 예쁘다는 칭찬이 아니었는가!
아흔이 넘은 모 여사는 자신의 얼굴이 작고 갸름한 것이 늘 속상했다. 달덩이 같은 얼굴이었으면 더 예뻤을 텐데 이렇게 턱이 조붓하다니 영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자식들을 낳았을 때는 자기 같은 속상함을 겪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사실 남편도 얼굴이 갸름한 형이었기 때문에 아이들도 낳자마자 그런 얼굴 형태를 가졌고, 뒤통수도 동그랗게 톡 튀어나온 짱구여서 똑바로 눕혀놔도 자꾸만 고개가 옆으로 쓰러지는 게 아닌가?
결국 그녀는 얼굴 양쪽에 베개를 받쳐놓아 아이들의 얼굴이 옆으로 쓰러지지 않게 해 주었고, 그 덕에 두 아이는 둥글넓적한 얼굴을 갖게 되었다. 부모를 전혀 닮지 않아 희한하게 느껴지는 그 남매의 얼굴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물론 이분은 나중에 아이들에게 엄청난 원망을 듣게 되었다. 지인의 실화다.
시대가 바뀌어서 이제 얼굴은 조붓해야 하고, 성형외과에서는 턱을 깎는 수술이 엄청나게 인기다. 몇 년 전에는 깎은 턱뼈를 전리품처럼 탑을 쌓아 진열했다가 의료폐기물 관리법 위반이라 낭패를 본 성형외과 이야기도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수술을 하고 있다. 검색창에도 얼굴 작아지는 마사지, 괄사 등등이 엄청나게 나온다.
실제로 얼굴을 작게 할 수 없다면, 사진에서라도 작게 하려고 애를 쓴다. 친구들과 여러 명이 사진을 찍을 때면 서로 뒤로 가겠다고 난리를 친다. 물론 장난이 반이지만, 얼굴이 크다는 것은 촌스로운 외모라는 고정관념이 많이 박혀버린 탓이리라.
옛날에 온라인으로 알던 어떤 분을 실제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 첫마디가, "어머! 어쩌면 이렇게 얼굴이 작으세요?"였다.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나는 삶에서 외모를 그리 중히 여기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더욱 그 말이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물론 그분은 진심 칭찬으로 한 말이었지만, 서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멘트였다.
서구적으로 작고 날렵한 얼굴이 미의 상징이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양인 친구나 동료에게 "어머, 너는 얼굴이 정말 작구나!"라고 말한다면 상대방은 그것을 모욕으로 느낄 수도 있다. 우선 대놓고 그렇게 외모 품평을 하는 것은 굉장히 무례한 일이며, 서양사람들은 작은 얼굴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평생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내 얼굴이 기형적으로 작아서 무슨 외계인 같다는 말인가?"라는 생각까지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서양사람들은 카메라에서 얼굴이 작게 나오기 위해서 뒤로 빠지는 일 같은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며, 우리 남편처럼 오히려 사진상 얼굴이 작게 나오면 애통해할 뿐인 것이다.
행복한 일박이일의 결혼기념일을 보내고 집에 오는 길, 잠시 스탠리파크에 들른 김에 남편은 결국 이런 사진을 찍고 흡족한 마음이 되었다. 당당하고 큼직한 얼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은 역시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나!
표지 사진: Unsplash의 Gabriella Clare Mar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