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31. 2023

받아들임 vs 이해하기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신혼이라 한창 좋을 때였기는 하지만, 서로에 대해서 아직 알아가는 단계였기 때문에 서로가 조심스러웠다. 뭔가 적극적으로 나를 어필하기도 쉽지 않고, 또 실수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침실에 있던 구식 벽장을 개조해서 그 안에 조립형 벽장을 만들어 넣는 작업을 하던 중에 의견 충돌이 났다. 작업의 순서에 있어서 내 생각에 우선이었던 것을 남편은 나중에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때의 일이 페이스북에 4년 전 과거의 오늘로 떠올랐다. 당시에는 내가 재혼한 사실을 페이스북에 밝히기 전이었기 때문에 글을 올리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감동이 너무나 커서 글로 남기고 싶었기에 그냥 그분이라고 묘사를 하였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이해가 중요할까, 받아들임이 중요할까?

가끔은 이해가 꼭 필요한 경우도 있고, 때로는 이해하지 못해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며칠 전, 이런 일이 있었다.

그분은 내게 열심히 설명하였고, 나는 그분의 뜻은 알겠으나, 반대로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왜 반대의 순서로 작업해야 하는지 열심히 설명을 하였다. 그러나 도통 전달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분은 자신이 둔해서 못 알아듣는다고 했고, 나는 내 영어가 짧아서 이해를 못 시킨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내가 포기하고 그분의 뜻대로 따르겠다고 하려는 순간, 그분이... 비록 이해는 못 했지만 그냥 내 뜻을 받아들여서 따르겠다고 했다.

결국 어제 그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내가 주장하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분이 알아차리게 되었고, 나는... 내가 설명하려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고 말하였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분...  자신이 당시에는 이해를 못 했지만, 내가 꼭 원하니 그냥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면서, 지금 작업하면서야 내가 왜 그랬는지 알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꼭 이해하지 못해도 난 때로는 그냥 받아들일 수 있어요,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말이지,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런다고 생각했고, 하다 보면 나중에 뒤늦게 내가 이해할 수도 있겠지 싶었어요, 아니면 말고... 하지만 반대로 당신이 그런 상황이었어도 내게 그렇게 해주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하긴 나도 그때 그냥 그분의 뜻에 따르려고 결정하려던 순간이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해줘서 고맙다고 그분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분도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럴 때 나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에는 꼭 이해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꼭 필요한 것은 믿음인 듯...

세상 모두가 서로 다 이렇게 믿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싸움은 생기지 않겠지?  이런 관계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밤이었다.


남편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상대를 받아들이기로 한다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 무엇을 재지도 않았고, 내 생각을 교정하려 하지도 않았다. 물론 나를 길들이려고 하는 일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상대가 꼭 나였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그는 당시 자신의 직장인 학교에서도 동료들을 그렇게 대했고, 학생들도 그렇게 존중했다. 그러니 세상 말썽꾸러기들이 다 모인 학교에서도 그렇게 평화롭게 교실을 유지했겠지.


벽장 세트의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은 부분을 손보던 남편


나는 살면서 이런 대접을 처음 받아본 기분이었다. 적어도 예전의 결혼생활은 그랬다. 내가 반드시 그를 납득시키지 않으면 대화는 단절되었다. 지기 싫어하는 상대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당히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고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 기진맥진 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런 생활이 너무나 당연했던 것 같다. 삶 자체가 그냥 치열한...


그러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사람이 사람을 받아들일 때는 이런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관계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마치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이해하지 못한 채 나를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게 되었다니 얼마나 행운인가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여전하다. 그래서 나도 여전히 행운아로 살고 임음에 감사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