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로 퉁칠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한국어에는 ㄹ이 있고, 영어에는 R과 L이 있다. 문제는 이렇게 우리의 ㄹ 하나를 가지고 이 둘을 대변하려니 그것이 영 쉽지 않은 것이다. 사실상 한글로도 이 두 가지는 대략 비슷하게 구분이 되는데, 유독 이것을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은 늘 R과 L의 경계를 넘나 든다.
한글의 소리 나는 방식대로 설명하면 영어랑 똑같은 음이 나오지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음 두 가지를 구분할 줄 알면 조금 쉬워진다.
R / L
어른 / 얼른
빠리 / 빨리
머리 / 멀리
갈아서 / 갈라서
우리는 이 두 단어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다. 물론, 이 소리와 영어의 소리가 똑같지는 않다. 엄연히 다른 소리지만, 이 정도로만 발음해도 선방이라고 보인다. 그런데 R이나 L이 이렇게 두 음절의 사이에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단어의 맨 앞에도 오고 맨 끝에도 온다. 그러면 다시 혼란이 온다.
그냥 대충 하면 안 되느냐 하겠지만, 뜻이 전혀 달라지니 곤란하다.
rice (쌀) / lice (머릿니)
rock (바위) / lock (잠그다)
right (오른쪽) / light (불빛)
wrong (잘못된) / long (긴)
race (경주) / lace (레이스)
raw (날것의) / law (법)
crew (승무원) / clue (증거, 단서)
fry (튀기다) / fly (날다)
grammar (문법) / glamour (글래머)
grass(잔디) / glass (유리)
vary(변화를 주다) / valley (계곡)
arrive(도착하다) / alive (살아있는)
correct (정확한) / collect (수집하다)
berry (딸기) / belly (배)
뭐, 이걸 다 나열하다가는 오늘 설명은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를 테니, 이 정도로만 하고, 이제 소리를 구분해서 고민해 보자.
이 소리는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혀가 앞 윗니에 닿으면서 나는 소리다. 우리나라식으로 "랄랄라"할 때 들어가는 받침의 ㄹ 소리와 비슷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L 소리는 혀를 쭉 앞으로 뺀 후, 앞니 위쪽을 친다.
설명이 필요하다 보니, 고민을 하다가 그림을 그려봤다. 혀 끝을 올려서 앞니의 바로 뒤에 착 붙이면, 이 발음은 어렵지 않게 낼 수 있다. 찰떡같이 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이다. 한국어의 ㄹ받침과 비슷하지만, 소리가 약간 달라지는 이유는, 한국어의 ㄹ받침은 맨 오른쪽 그림처럼 혀를 안쪽으로 말아 넣어서 입천장을 치기 때문에 milk 같은 소리를 발음할 때 원어민이 못 알아듣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정식으로 똑같은 발음을 내려면 일단 혀를 앞으로 빼는 연습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다 보니 milk를 밀ㅋ라고 하기보다는 미얼ㅋ라고 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연습을 해보자. 혀를 앞 윗니의 뒤에 확실하게 댔다가 떼면서 소리를 낸다.
lady, lead, lips, land, lock, luck...
L이 맨 앞에 오는 소리를 낼 때, 혀를 위로 붙이는 것이 바로 되지 않는다면, 여기에 편법이 있다. 아쉬운 대로 "을"이라는 소리를 앞에 붙이는 것이다.
을레이디, 을리이드, 을맆ㅅ, 을래앤드, 을랔, 을렄...
중간에 들어가는 L은 어렵지 않게 저절로 되는 편이다. 그러나 뒤에 연달아 자음이 오면서 끝나면 쉽지 않다.
milk, film, field, almond...
이럴 때에는 혀를 앞으로 빼면서 '얼'이라는 소리를 내는 척한다. 완전히 내는 게 아니라 소리가 나는 듯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미어ㅋ, 피엄, 피어ㄷ, 아어먼ㄷ
L소리를 안 내는 것은 아닌데, 한국의 ㄹ받침처러 너무 찰지게 내버리면, 뒤에 나오는 자음이 당황하기 때문에, 제대로 소리를 낼 줄 모른다면 차라리 혀끝에 힘만 주다 끝난다고 생각하면 대략 비슷하다.
그럼, L은 이 정도로 하고, 이번엔 R로 가보자. 이것도 만만치 않다. 이 소리를 낼 때는 혀가 많이 구부러진다. 그래서 영어를 혀 꼬부리는 소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발음은 영국식과 북미식이 상당히 다른데, 나는 북미식으로 설명하겠다.
혀를 구부리는 것은 맞는데, 제대로 구부려야 한다. 혀의 가운데만 움푹 들어가게 하고 나머지를 다 올리는 것이다. 손으로 재현하자면, 한 손에 물이나 모래를 담고 있는 모양을 생각하면 된다. 이 상태에서 떨면서 내는 소리인데, 이걸 이론으로 알아도 소리로 내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면 역시 또 편법이 등장한다. 혀를 자동으로 이 모양으로 만들어주는 입모양을 하면 된다. 그 모습은, 입술을 한껏 내밀고 '우'라고 하는 것이다. 최대한 내밀어야 한다.
right, great, crunch, crispy, brown, tree...
우롸잍, 구뤠잍, 쿠뤈ㅊ, 쿠뤼ㅅ삐, 부롸운, 츄리...
물론, 이 소리를 낼 때, 정색을 하고 "부!롸!운!" 하면 안 되고, 한 음절이 되도록 재빠르게 세 개의 소리를 연결해서 내야 한다. 눈으로만 설명을 읽으면 안 되고, 실제로 입 밖으로 소리를 내서, 자신의 소리를 실험해 보자.
마지막으로 짬뽕이다. R과 L이 연달아 나오는 극악무도한 소리다. 제대로 낼 줄 아는 분이 극히 드물다. 대표적으로 괴로운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girl, world, jewelry...
과연 이걸 글로 설명이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도전해 보겠다! 흠!
으거를, 워를ㄷ, 쥬얼/으뤼
역시 하나씩 또렷하게 소리를 내지 말고, 재빠르게 이어가 가는 게 포인트다. (이해가 안 되신다면, 아무래도 언젠가 팟캐스트를 하는 걸로...)

이상은, R과 L의 차이를 최대한 글로 표현한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지만,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스스로 소리를 내보는 것이 훨씬 낫다. 직접 소리를 내면서 차이를 비교해 보고, 원어민의 발음들을 들어보면 도움이 되시리라 믿는다.
아무래도 글로 설명은 한계가 있기에, 덧글로 질문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