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꿈은 무엇일까? 우리의 꿈은 계속 변한다. 어릴 때 꿈은 좀 거창한 것이 되기도 한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던 것 같고, 무용수가 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고, 언어학자가 되고 싶기도 했었다. 우리 때에는 아이들이 대통령이 되고 싶다거나,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도 많이 꿨던 것 같다. 뭔가 상상 속의 멋진 것이 되고 싶은 시절이었다.
내 딸은 어렸을 때 식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었다. 그러다가 책을 좋아하게 되면서, 전 세계 어린이들이 즐겨 읽을 책의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글을 진짜 많이 썼고, 대학에 가기 전에 정말로 책을 출판했다. 전 세계로 명성을 날린 것은 아니었지만, 국내 출판사에서 인정받아 출판되었고, 아마존에 이북으로 등록이 되었으니 꿈으로 가까이 다가간 셈이었다.
딸이 꾸던 또 다른 꿈이 있었다.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픽사에서 일해보고 싶어 했다. 정말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람들이, 주말에도 얼른 직장에 나가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하는지 궁금해했다. 그런 사람들과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여러 번 픽사 인턴쉽에 도전장을 내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픽사에서 인턴쉽은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대학 2학년 겨울방학 때, 짧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그것이 아이의 첫 애니메이션이었고, 상당히 참신했고, 혼자 했다고 하기에 놀라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걸로 인턴쉽을 따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그다음 해에도 도전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교환학생으로 가있어서 바빠서 애니메이션은 만들지 못했던 것 같다.
대학원에 들어간 첫 해에도 도전했다. 역시 미끄러졌다. 잠재력 있는 사람들을 뽑는다는데 그 기준은 뭘까 궁금해했다. 사실 그때는 완전한 첫 작품을 만들기 전이었다. 작년에 드디어 자신의 작품이라 할만한 애니메이션을 세편을 만들었다. 학교에서 상영 후 여기저기 콘테스트에 내서 노미네이트 되거나 소소한 상들을 받기 시작했고,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갔다.
그리고 일 년 후인 올해 다시 픽사 인턴쉽을 신청했다. 여러 번 떨어졌던지라 올해에는 사실 별 기대를 안 했었다. 그거 아니어도 할 일이 많았고, 어차피 하루를 72시간처럼 살아가고 있었기에, 이제는 더 이상 픽사를 꿈꾸는 어린이가 아니었다.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벌써 애니메이션을 새로 두 편이나 다시 시작했고, 졸업작품 구상도 시작했으며, 학교 영상팀에서 일하느라 바빴고, 또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소에서도 스카우트가 되어서 눈코뜰 새 없었기 때문에, 그 인턴쉽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여름방학이 한가할 일은 전혀 없었다.
아이는 이미 자기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냥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었고, 자신에게 오는 기회는 놓치고 싶지 않아서 필요한 것들을 여러 개 잡아서 저글링 하는 중이었다. 사실 일을 너무 많이 잡아서 물리적 시간의 부족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네가 그 경쟁률을 뚫고 애니메이션 부문 24명에 뽑혔다는 연락이었다. 그리고 다시 두 주일 후 최종 8명에 들었으며, 네가 그 상위에 있다는 전화를 다시 받았다. 딸은 정말 꺅 비명을 지르며 우리에게 바로 전화를 해왔다. 정말 짜릿한 순간이었다.
아이가 말했다. 마치 어린 시절 하늘을 보며, 막연히 달나라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고, 그러다가 천문학자가 되었지만, 그래서 더 이상 달나라에 가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게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너, 달에 가라는 통보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뭔가 갑자기 너무 현실성 없는 기분이랄까? 그냥 꿈같은 순간.
아이는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이제는 더 많은 꿈을 꾸는 어른이 되었지만, 어릴 적에 가슴 두근거리며 가졌던 그 꿈이 어느 순간 현실이 된 짜릿함은, 어느 회사의 인턴이 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으리라. 자기가 높은 목표로 가졌던 것이, 열심히 달리던 어느 순간 갑자기 확 가까워진 기분일 것이다.
딸이 보냈던 힘들었던 시간들, 열심히 노력하면 지그시 밟아주던 사람들 틈에서 혼란스러워하던 시절,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것일까 흔들릴 만큼의 가스라이팅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 암흑 속에서 떨고 있던 그 순간에, 네가 누구인지를 잊지 말라는 말로 밖에는 아이를 위로해 줄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들이 뭐라 해도 너는 너이고, 네 꿈은 네가 노력해서 이룰 거라고 해줬었다. 내가 중학교 때 선생님께 들었던 조언은 이랬다. 살면서 몇 번의 기회가 정면으로 찾아오는데, 그게 워낙 크고 둥글고 미끄러워서,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그대로 놓쳐버린다고 했다. 그래서 늘 기회를 준비하며 살라고. 아이에게 고난의 시간이 지나가고 지금 이렇게 기회가 날아왔고, 아이가 그것을 잡은 것 같다.
신이 나서 정신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딸에게,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네가 자랑스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이가 암흑 속에 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에 네가 부끄럽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자식은 부모가 자랑스러워하거나 부끄러워하라고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식이 뭘 한다고 자랑스럽고, 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사랑하고, 지지할 뿐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는 것을 이루었으니 정말 좋겠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앞으로 또다시 어떤 시련이 널 찾아올지 모르지만, 그때 지금 이 순간을 잊지 말라고 말해줬다.
달에 가게 된 딸아, 축하한다!
카툰 및 표지 도용 : https://www.instagram.com/catchat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