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에서 봄을 즐기는 방법
한국은 지금쯤 날씨가 따뜻해져서 완연한 봄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벚꽃사진이 올라오고 있지만, 캐나다 밴쿠버는 아직 춥다. 지난주에 좀 해가 나며 반짝하더니 다시 우중충하며 비 오고 으슬으슬한 날씨가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와중에도 봄은 계속 조금씩 다가온다. 집 앞마당의 벚나무는 짙은색 꽃망울을 잔뜩 매달고 묵직하게 늘어져있어서 보는 나를 들뜨게 만들어 주고 있으니, 다음 주부터는 집 앞을 환하게 비춰주리라는 기대감이 내 마음의 봄도 재촉한다.
벚꽃은 우리 집에만 피는 게 아니라 맞은편 집에도 피는데, 그 집의 가지는 길 바깥까지 길게 늘어져서, 양쪽 집의 벚꽃이 흐드러지면, 마치 아치처럼 꽃길을 만들어주어서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동네사람들이 산책을 나오면 꼭 이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가곤 했고, 일부러 차를 타고 와서 멈춰서 사진을 찍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물론 우리는 벚꽃놀이를 따로 갈 필요가 없고 말이다.
그런데 엊그제, 아침 일찍 비가 오고 잠시 멈춘 오후 시간, 앞마당의 수선화 중에서 쓰러진 것들을 주워다 화병에 꽂으려고 나갔는데, 어라? 앞집의 벚나무가 잘려 나가고 있었다. 묵직하게 꽃망울이 맺힌 가지가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가지치기 중이었다. 아예 한 겨울에 자르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터질 듯 맺혀있는데 지금 자른다니 너무 안타까웠다. 두 주일만 있다가 자르면 좋을 텐데...
우리도 벚나무 가지치기를 2년 전에 심하게 했는데, 꽃이 피었다 진 이후에 했다. 사실 가지치기는 겨울철, 나무가 자고 있을 때 하는 것을 추천하지만, 밴쿠버는 겨우내 비가 오기 때문에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다. 비가 올 때 가지치기를 하면 자른 부분이 아물기 전에 물이 닿아 오히려 병이 들기 쉽기 때문이다.
꽃이 진 후에 가지치기를 하면, 한창 왕성하게 성장할 무렵이라 잘라낸 부분이 많이 아프긴 하지만, 그만큼 회복력이 좋기도 하다. 그리고 여름 내내 가지를 새로 만들어내서 이듬해에도 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2년이 지나면 어느새, 언제 가지치기를 했냐는 듯 무성하게 꽃을 매달게 된다.
나는 피지도 못한 채 잘려나가는 꽃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잠시 쳐다보다가 다가가서, 잘라낸 가지를 좀 가져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들은 내가 말하는 뜻을 바로 알아듣고는, 가지를 한쪽으로 빼주면서, 여기서 자르면 안전하다고 말해줬다.
기쁜 마음에 얼른 들어가 전지가위를 들고 나와서 되는대로 성큼성큼 꽃가지를 잘라 모았다. 내가 잘라 모으는 모습에 어쩐지 그들도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정리를 시작하는 것 같기에 잘라놓은 것들을 허둥지둥 우리 집 현관 앞으로 옮겨 놓으려니 다가와서 떨어진 것들을 주워 내 팔에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명함을 주며, 우리 집 가지치기가 필요하라면 연락하라는 홍보도 잊지 않았다.
나는 현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부지런히 가지들을 정리했다. 마침 내가 전해줄 물건이 있어 받으러 왔던 지인에게도 얼른 캔에 물을 받아 꽂아주고, 꽃을 좋아하는 이웃집에도 한 뭉치를 만들어 집 앞에 놓아두었다. 꽃을 나누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이렇게 준비된 가지들은 집안의 꽃병으로 들어왔다. 금세 시들어버릴 준비가 다 되어있던 나뭇가지들이 다시 물을 만나 생기를 되찾았다. 그리고는 따뜻한 실내에서 기분 좋은 듯 마지막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아니, 기분이 좋을 리는 없을 것이다. 잘려나갔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최선을 다하려는 듯한 모습인 것 같기도 했다.
내일 종말이 오더라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마음과 같은 것일까? 아마 내가 그 꽃이어도 그렇게 했을 것 같았다. 죽음을 앞두고 있더라도, 그동안 준비했던 공연은 꼭 펼치고 싶을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 해서 기쁨으로 준비하고, 뜻대로 되지 않아도 끝까지 아름답게 마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지켜주고 싶었다. 너희가 준비를 잘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넉넉히 챙겼기에 집안 곳곳에 꽂아 놓은 꽃들이 시간이 가면서 여기저기서 마치 팝콘이 터지듯 열리기 시작했다.
전자레인지 안에서 돌아가는 팝곤도 이렇게 터진다. 처음에는 하나씩 둘씩 톡 톡 소리를 내며 터지기 시작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타타타탁 연달아 터진다. 조그만 알맹이에서 깜짝 놀랄만한 사이즈로 터지는 팝콘. 벚꽃잎들이 그렇게 부지런히 열리기 시작했다.
다이닝룸의 탁자 위에도, 거실 창문 앞에도, 안방에도, 화장실에도... 분홍색 팝콘들은 참으로 바빴다.
하룻밤 지나서 아침에 나가 봤더니, 놀랄만한 속도로 물을 빨아들이느라 물이 어느새 반도 안 남아서 깜짝 놀랐다. 얼른 시원한 물을 넉넉히 챙겨주었다.
가지가 없이 꽃망울이 떨어진 것들은 이렇게 물에 직접 띄워놓았더니, 더욱 빠르게 망울을 열어줬다. 단단하던 진분홍이 화사한 연분홍으로 바뀌어서 대접 안에서 발레를 하고 있었다.
느리게 봄이 오는 밴쿠버, 아직도 패딩을 입고 마당에 나가서 차가운 빗속에 일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마당에 나가있는 시간이 부쩍 늘어서 글 쓰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고, 또 실내에서는 나름의 다른 방법으로 봄을 즐기고 있다. 집안의 꽃을 다 즐기고 날 때쯤이면 마당에 한가득 피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