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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와도 봄은 올 거야

by 라슈에뜨 La Chouette

자고 나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뭐지? 지금이 몇 신데 아직 서리가 있는 거야? 아니, 눈이었다. 얼마 전에 밭으로 옮겨 심은 배추 몇 개, 어떡하나 싶었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기엔 축 쳐져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행복해 보였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뚜껑이라도 씌워주는 것인데, 요새 일기예보 체크를 너무 안 했구나 싶었다.


그래서 얼른 하우스 코트만 두른 채 바깥으로 뛰어 나갔다. 목욕가운에 장화라니, 패션이 참, 허허! 밖으로 나가니 잔디밭도 다 눈얼음으로 덮여있었다.


그리고 널브러져 보이는 배추 모종에게 다가가보니, 얼음갑옷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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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살포시 갑옷을 들어 올리니, 그 밑으로 파릇한 여린 잎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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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뒤편에서 얼어버린 배추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표정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파릇파릇 생글생글했다. 나는 추운 줄도 모르고 쭈그리고 앉아서 얼음 갑옷을 다 떼어냈다.


앗! 하나를 안 떼어줬는데 몰랐네!


그러고 나니 다시 텃밭이 살아있는 것 같이 생기 있어 보였다. 우리 집 마당에는 이미 더덕 싹도 올라왔고, 래디시 싹도 올라왔고, 각종 꽃들도 있지만, 왜 난 얘네들만 아기처럼 느껴졌을까 모르겠다. 아마 최근에 내다 놨으니, 마치 거친 세상에 새로 나간 아기들같이 여겨졌던 것 같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세상에 처음 나갈 때에도, 이미 다 컸는데도 자꾸 아기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랑 마음이 비슷하겠지? 그래서 막 도와주고 싶고, 그런데 보면 또 이렇게 씩씩하게 잘 해내고 있는 모습, 그런 모습 같아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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