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바뀌는 세상의 기운
봄이 다가오는데 자꾸 눈이 온다고 칭얼대기도 했지만, 봄은 차근차근 오고 있다. 종종 우박이 쏟아져서 우리를 당황시키기도 한다. 그래도 봄은 여기저기서 꾸준히 밀고 올라온다.
땅에서 밀고 올라오는 싹들과 꽃들은 그 꽁꽁 얼었던 땅에서 계속 뭔가 하고 있었나 보다. 그냥 자는 줄 알았는데... 하긴, 우리 인간도 자는 동안 몸이 회복을 하고 스스로 치유를 한다지 않은가?
어떤 것들은 꽃이 먼저 올라오고, 어떤 것들은 싹이 먼저 올라온다.
그리고 땅에서만 밀고 올라오는 것은 아니다. 죽은 듯 조용히 있던 가지에서도 싹들이 올라온다. 장미도 개나리도, 벚나무도, 앙 다물고 있는 꽃망울이 점점 커져간다.
햇볕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봄은 너무 아름다운데, 카메라에서는 색이 모두 날아가버린다. 아마 눈으로 즐기라는 뜻이겠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 봄의 싱그러운 공기가 폐로 치고 들어온다. 마당에 한 번 나가면 해 질 때까지 못 들어오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늦게 나가려고 버티는데, 막상 나가고 나서는 진작 나올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매일매일이다.
봄이 되면 만물이 깨어나는데, 더 신기한 것은 집안에 있는 고추다.
뒤쪽으로 보이는 고추는 겨울을 두 번 난 귀염둥이 꽈리고추인데, 겨우 내 저렇게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우리 집에서 초록 빨강으로 예쁘게 반짝거렸다. 역시 한 살 더 먹은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데 앞에 있는 이 녀석은, 집으로 들어온 이후에 모든 잎을 떨구고 불쌍하게 서있었다. 혹시 죽은 것은 아닐까 싶다가도, 가지는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고, 뿌리도 단단히 발을 딛고 있어서 그냥 기다리며 지켜봤더니 봄을 알아보고 싹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밖에 있는 식물들이야 날씨가 변하니 봄을 인식한다지만, 늘 같은 온도를 유지하는 실내에서 이 녀석은 어떻게 봄을 알아본 것일까? 아마 일조 시간이 늘어서겠지 하면서도 참으로 신통하다.
채식주의인 분들이 말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동물이 불쌍해서 못 먹는다는 것이지만, 나는 이 식물들을 먹으려고 자를 때마다 경건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멀쩡하게 세상을 다 읽고 있는 녀석들을 보면 결코 동물보다 무심하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채식주의는 아니고, 자연스러운 음식을 먹고자 하는 편에 속한다. 동물도 자연 복지로 기른 것을 선택하고, 식물도 자연에 가깝게 키운 것들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단지 맛이나 건강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먹기 위해 키우고 있으니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음식들을 먹으면 그들이 누렸던 행복도 함께 누리는 것 같다.
사람도 언젠가 죽고, 동물도, 식물도 언젠가는 죽는다. 다만 그 어느 개체이든 좀 더 제대로 대접받고, 사는 기간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내 나름의 철학이다.
아무튼 봄이 오니 좋다. 두근거리는 기다림이 좋다. 꽃도, 잎도, 화창한 날씨도.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봄으로 기류가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알아서 반응하면 좋으련만, 아마 인간은 동식물보다 감각이 한참 뒤처졌나 보다.
봄이 와서의 단점 하나 : 글 쓰는 시간이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