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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Feb 28. 2023

봄을 기다리며 씨앗 심기

꼬마 모종들을 만들어서 봄에 심고 싶다면 지금 시작해도 좋다

2월 말이지만 날씨는 영하 8도로 내려가고 폭설주의보가 내렸다. 겨울이 길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봄을 기다리지만, 특히나 가드닝을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봄 몸살을 한다. 2월이 되면 정말 참을만치 참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벌써 두 주일도 더 전에 여기저기 크로커스가 올라오고, 설강화도 올라오고, 그 밖의 구근들도 조금씩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음이 살랑살랑 봄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날씨는 우리에게 아직 봄을 허락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기상 이변이 찾아왔다.


겨울에 되면서 실내로 들여온 꼬마 화초들이 번갈아가며 꽃을 피워서 마음을 달래주고 있어서 어느 정도는 버티고 있기는 했다. 이 꽃들은 모두 작년 여름에 꺾꽂이해서 키워 놓은 나름의 아가들이다. 큰 녀석들을 다 실내로 들일 수 없으니 이렇게 해서 사이즈를 줄여서 명을 잇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런데 즐거움까지 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부겐빌레아, 힐리아트로프, 폴투라카 모두 여름에 꺾꽂이로 살려낸 것들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날씨가 이렇게 갑자기 변덕을 부리면, 이미 피어오른 꽃망울이 얼어서 손상될까 봐 발을 동동 구르고, 뭐라도 덮어줘야겠다고 애를 썼는데, 올해는 제법 초연하다. 가드닝 4년 차가 되니 마음이 좀 여유로워지고, 자연의 섭리에 어느 정도는 순응하려는 마음이 드나 보다.


그렇다고 해서, 뱃속에서부터 꿈틀꿈틀 올라오는 봄의 욕구를 참을 수는 없었다. 이미 2월이 되면, 가드너들은 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름 참고 버티다가 2월 중순쯤 마당에 나가서 일단 양귀비 씨앗을 뿌렸다. 양귀비는 추울 때 씨를 뿌려야 한다. 땅이 얼지 않았을 때 뿌리라고 하지만, 뿌리자마자 이렇게 땅이 얼고 말았다. 뭐, 하지만 괜찮다. 원래 그러니까 그냥 그러려니 한다. 


나중에 어디에 뭘 심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니 이렇게 사진을 찍어 둔다.


그리고 이어서 모종도 만들기 시작했다. 고추나 토마토도 빨리 시작하고 싶지만 3월에 시작하려고 꾹 참고 있다. 사실 한국 같으면 2월이 시기적으로 딱 좋겠지만, 밴쿠버는 서리가 늦게까지 내리기 때문에 너무 일찍 시작하면 다 자란 모종을 내다 심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그래서 일단은 꽃을 몇 가지 심었다. 일찍 심어야 올해 안에 꽃을 볼 수 있는 꽃들이 있다. 금방 꽃이 피는 종류는 좀 천천히 심어도 되지만, 디기탈리스 같은 2년생들은 꽃 피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늦어지면 내년에나 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티스 씨앗은 가늘고 길쭉하게 생겼는데, 햇빛을 좋아한다.


흔히 생각하기에, 씨앗을 미리 심어 모종이 만들어지면, 그 모종이 자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날씨가 따뜻해질 때 내다 심는 정도로 간단하게 여긴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보다는 좀 더 복잡하다. 


일단 일반적으로 처음 씨를 뿌린 곳에서 계속 자라게 해주는 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화분 하나에 씨를 하나만 심으면 씨가 아예 발아가 안 되는 화분이 속출할 수 있고, 그렇다고 여러 개를 심었다가 여러 개가 나오면 좁은 화분에 여러 개를 동시에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임시 발아 장소를 선택하는데, 그게 바로 따로 비용이 들지 않은 달걀 껍데기다. 처음에는 좀 마음대로 안 되는 감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주 편리하다. 달걀을 먹을 때마다 위쪽을 살짝 깨서 그걸로 화분을 만들어 사용하는데, 나중에 모종을 좀 더 큰 화분으로 옮길 때 부담 없이 깨뜨릴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깨진 달걀 껍데기는 비료통으로 들어간다.


물에 젖은 키친타월에다가 씨앗을 발아시킨 후에 화분에 심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방법도 나쁘지 않다. 다만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힘들다. 바로 싹이 트지 않는 경우, 그대로 방치되었다가는 영양실조 걸린 모종이 되거나 그 안에서 곰팡이가 피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달걀 껍데기 밑을 살짝 뚫고, 그 안에 흙을 채운 후, 씨를 넣고 다시 살짝궁 덮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물은 넉넉히 주는 편이고, 씨앗의 종류에 따라서 빛을 쪼여주기도 하고, 밑에 전기장판을 깔아주기도 하지만, 그냥 매일 한 번씩 들여다보는 정도만 해준다.


달걀통 아래쪽에 이렇게 물을 주면 위쪽으로 빨려 올라가서, 씨앗을 흩트리지 않고 물을 공급할 수 있다.


빛을 원하는 씨앗은 젖은 흙 위에 살짝 얹은 후, 그 위를 한 겹만 가볍게 덮어주면 되고, 어두운 곳에서 발아가 되는 종류는 씨앗을 약간 깊숙이 찔러 넣어주고 다시 흙을 덮어주는 것이 좋다. 


근데, 어떤 녀석이 해를 좋아하는지 모르면 어떻게 할까? 별로 어렵지 않다. 씨앗이 큼직하면 대체로 암발아 씨앗이다. 땅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씨앗 두께의 한 3배 정도 들어가는 것을 추천하니 씨앗 크기에 따라 얼마나 다를지 알 수 있다.


이게 먼지 인지 씨앗인지 구분이 안 가는 작은 씨앗이라면, 당연히 빛을 좋아하는 녀석들이다. 이런 녀석들은 사실 흙을 덮을 필요도 없다. 다만, 완전히 노출되면 쉽게 말라버리기 때문에 위에 살짝 흙을 덮어주면 촉촉함을 유지하기 좋다.


씨앗을 발아시키는 인큐베이터


어라? 그런데 내 달걀 위에 있는 것들은 흙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걸! 그렇다. 이건 질석(vermiculite)인데, 수분을 많이 머금는 종류의 재질인 데다가, 이걸로 덮으면 곰팡이가 잘 안 피기 때문에 나는 이걸 쓰는 것을 좋아한다.


수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화분 위쪽을 뭔가로 덮어주면 좋은데, 달걀 껍데기를 이용하면 또 좋은 점이, 바로 달걀 틀을 이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투명한 뚜껑을 덮어줘서 수분을 유지해 주되, 틈이 있어서 통풍도 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빛을 원하지 않는 씨앗은 상표 밑에 놓았다


그동안 모인 달걀껍데기를 모아서 이것저것 심어주고 나서 보니, 일주일 전에 심었던 디기탈리스와 캔디터프트가 벌써 싹을 내밀었다. 먼지 같은 씨앗을 대충 뿌렸더니 이렇게 정신없이 올라왔구나. 좀 기다렸다가 분리를 해주면 된다. 


하루 만에 멀대처럼 자란 녀석들과 오밀조밀 귀엽게 얼굴을 내민 새싹들


이렇게 싹이 나면, 이제 온실 뚜껑에서 나와야 한다. 그리고 빛을 가까이서 바짝 쪼여준다. 안 그러면 온도 높은 집안에서는 키만 삐죽하게 자라서 힘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루 내가 안 본 사이에 나온 녀석은 벌써 이렇게 멀대같이 커버렸다. 


태양보다 약한 빛이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쬐어주면 나름 용도를 한다. 단단하고 짧게 자라야하기 때문이다. 


정육점 같은 불빛이 더 좋다 아니다 말이 많지만, 저렴하게 장만한 그로우 라이트가 제법 효과가 좋다


작은 달걀 껍데기를 들고 꼬물꼬물 작업하는 것은 재미나기도 하고, 또 성가시기도 하다. 잔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하지만, 요 녀석들과 씨름을 하다 보면, 날씨를 투덜 댈 새가 없이 바빠질 것이고, 어느새 봄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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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 된 아기 모종 옮겨 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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