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을 넘게 별러서 가게 된 아주 특별한 요리 강좌
요리 강좌에 다녀와서 배를 두드리며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가 요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가까운 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나는 생존 요리파지만, 때론 집착에 가까운 성취감을 추구하기도 하고, 줄리아 차일드의 두꺼운 요리책을 북클럽을 열어 독파하기도 했다.
남편은 나보다 훨씬 요리를 즐기는 사람인데, 자기가 저녁 하는 날은 정말 즐겁게 요리사가 된 기분으로 요리를 한다. 작은 그릇들에다가 양념들을 다 따로 준비해 두고, 하나씩 착착 집어넣는 모습을 보면 정녕 즐긴다는 게 보인다.
그런 우리가 결혼한 지 1년이 지난 첫 크리스마스 날에, 남편의 자식들로부터 요리강좌 쿠폰을 받았다. 사실 우리는 이렇게 요리를 좋아해도 강좌에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책을 읽고, 티브이 요리프로그램을 보거나 하면서 직접 해보고, 고민하고 변화시키고 그러면서 점점 터득한 우리만의 방식으로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남들은 또 어떻게 요리를 하는지 보는 것도 상당히 즐거운 일일테니 이 강좌가 아주 흥미로웠다. 다 큰 자식들이 돈을 모아서 준비한 만큼 비싼 강좌였다. 두 사람이 합쳐서 400불, 그러니까 40만 원 정도 하는 강좌인데, 강좌 시간 동안 몇 가지 요리를 해서 거기서 먹고 오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가 스스로 돈주고 살만한 강좌는 아니었지만, 원래 선물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아무래도 그렇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만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고 말았다. 그래서 요리강좌는 물 건너가고...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가 올해가 시작될 무렵 문득, "아, 이거 가야지, 우리!" 그래서 연초부터 일정과 희망 코스를 찾아 고민하느라 4월 말에서야 예약을 하게 된 것이다.
요리 강좌 하는 곳의 이름은 더티 에이프런(Dirty Apron, 지저분한 앞치마)이다. 앞치마 더럽혀 가면서 열심히 요리하라는 말이겠지? 이탈리안 코스도 있고, 채식주의 코스도 있고, 여러 가지 주제의 강좌가 있었는데, 우리가 고른 것은 줄리아 차일드 (Julia Child) 스타일의 프랑스 요리였다. 메뉴를 보니 나도 남편도 이전에 만들어 본 것도 있긴 했지만, 우리가 프랑스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진짜 요리사의 요리비법을 한 번 탐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밴쿠버 시내에 있는 그곳, 한 시간가량을 운전해서 장소에 도착했다. 주차하느라 애를 먹어서 시간이 빠듯하게 도착했는데, 허둥지둥 들어가보니 사람들이 벌써 도착해서 애피타이저를 먹고 있었다. 간단한 와인과 식전빵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강의가 시작되었다.
메뉴는 랍스터 터머도어(Lobster Thermidor) - 비프 부기뇽(Beef Bourguignon) - 초콜릿 수플레(Chocolate Souffle)였는데, 과연 이 모든 요리를 다 제시간에 해서 먹고 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특히나 비브 부기뇽은 워낙 시간이 오래 걸리는 손이 많이 가는 요리인데 말이다.
그러나 그 걱정을 불식시키려는 듯, 능청맞은 셰프 아저씨는 정말 빠른 속도로 시범을 보이면서 설명을 해서 보는 사람들을 경탄시켰다.
첫 수업은 비프 부기뇽이었다. 고기를 베이컨 기름에 구운 후, 소스를 만들어 섞어서 오븐에서 익히는 요리다. 스튜용 부위를 이용하기 때문에 뭉근하게 오래 익혀야 하는데, 그 요리를 당장 만들어서 먹어야 하기 때문에, 그걸 일단 제일 먼저 하기로 한 것이었다.
만드는 법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약간의 팁과 디테일이 보였다. 작업하는 순서라든지 딱 어느 정도로 준비하는지 등에 관한 것들이 관심을 끌었다. 단체로 앉아서 설명과 시연을 보고 나서 바로 각자 작업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루도록 자리 세팅이 되어있었다. 오븐과 가스레인지가 있었고, 재료는 다 손질이 되어있었다. 요리를 할 때 사실 재료 손질하고, 계량하는데 시간이 엄청 드는데, 그런 과정이 모두 준비되어 있었으니 우리는 진짜 요리만 해도 되는 것이었다. 세상 럭셔리한 쿠킹 과정이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와서 쓰레기를 수거해 가 주니 가장 귀찮은 뒷정리까지 싹 다 되는 요리 과정은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오븐에 비프 부기뇽을 넣고 나서는 랍스터 요리를 할 차례였다. 역시 시연을 보며 설명을 듣고, 살아있는 랍스터를 받아다가 그 자리에서 요리를 했다. 엄청 거창한 요리가, 역시 수많은 밑준비 덕에 아주 쉽게 끝이 났다. 물론, 직접 랍스터를 삶았고, 두드려서 껍질을 깠다. 그게 가장 손이 가는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소스를 만들어 랍스터를 섞어준 후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는 드디어 상으로 가져가서 먹었다. 요리 강좌 와서 이런 럭셔리한 식사라니! 랍스터 터머도어는 흔히 랍스터 껍데기를 분리한 후, 살을 잘게 썰어 다시 그 껍데기에 담고 소스를 뿌려주는 럭셔리한 스타일인데, 이 요리 방식에서는 살을 통째로 주는 대신 껍데기를 희생했다. 그러나 이렇게 토실한 살이 통으로 서빙되는 것이 오히려 더 럭셔리한 기분을 주었다.
밀가루 없이, 달걀노른자와 코냑을 넣은 이 소스는 정말 고급스러운 맛이 났다. 색상 면에서도 껍질콩을 넣은 것이 조화를 이루어서 보는 즐거움도 함께 제공해 줬다. 너무나 맛있었지만, 누가 애피타이저로 랍스터 한 마리를 다 먹느냐 말이다! 그래서 나는 좀 남겼다. 싸가지고 갈 수 있는 통도 미리준비되어 있었다.
애피타이저를 마치고 나서 우리는 수플레 제작에 돌입했다. 비프 부기뇽은 여전히 오븐에서 익어가고 있었으니, 디저트를 그동안 준비하는 것이 옳은 수순이었다. 셰프의 강좌를 듣고 나서 열심히 달걀 머랭을 올리고, 초콜릿을 중탕해서 수플레 준비를 완료했다.
물론 이번에도 수플레용 램킨에 버터를 겹겹이 바르고 설탕을 뿌려서 코팅하는 일 같은 것들은 이미 다 진행되어 있었다. 우리는 수플레 내용물을 만들어 램킨에 부으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디저트 먹을 타임이 아니므로, 이것은 한쪽으로 얌전히 두고, 비프 부기뇽을 마무리했다.
준비된 감자와 껍질콩, 버섯 등을 버터로 맛있게 볶은 후, 마침내 다 익은 비프 부기뇽을 꺼내서 접시에 담고, 그 위에 새로 볶은 재료를 얹어 장식을 했다. 1인분의 비프 부기뇽이 가능할까 했는데, 이렇게 멋들어지게 완성되었다.
우리는 완성된 접시를 가지고 다시 식탁으로 갔다. 그리고 입에서 살살 녹는 비프 부기뇽을, 신음을 하면서 먹었다. 마치 줄리아 차일드의 첫 요리책 편집장이 된 기분으로! (줄리 앤 줄리아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다) 소스와 고기의 식감이 정말 딱 좋았다.
마지막으로 수플레를 구워야 했지만, 감사하게도 우리가 만들어서 준비해 둔 수플레는 이미 오븐에 들어가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꺼내서 위에 아이싱 슈거를 뿌려 장식하고는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수플레는 기분 좋게 부풀어 올라있었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 따끈한 수플레는 기대 이상이었다.
처음에는 서먹했던 사람들도 점차 친해지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함께 웃고 와인을 마시며 남은 시간을 즐겼다. 뒷정리도 안 해도 되고, 설거지도 할 필요 없는 쿠킹 클래스는 그렇게 우아하게 끝이 났다.
사실 진짜 요리는 준비부터 정리까지가 다 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이 클래스는 세상 럭셔리한 체험코스 같았다. 귀족의 요리 체험 교실이라고 이름 붙이면 적당할까? 정말 딱 하고 싶은 과정만 하고, 손 가고, 신경 쓰고, 귀찮은 것들은 다 시종들이 해주는 귀족의 요리 흉내내기 교실처럼 느껴졌다. 아니면, 어른들이 다 준비해준 어린이 요리교실이라면 이럴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뭔가 빠진 것 같았다. 너무 맛있는 음식이 되었지만 내가 다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고, 남에게 뭐러 시키는 성향이 아닌 우리는 정리해 주는 사람들에게 어쩐지 미안한 감정이 자꾸 나와서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요리에 관한 몇 가지 팁을 건지기도 했고, 분명히 재미있는 놀이였다. 많이 웃었다.
그곳이 오픈된 시간이 5시였고, 모든 작업이 다 끝났을 때가 9시 반이었으니, 요리 재료 모두 포함해서 시간당 50불(1인)이라면 그리 비싼 게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음식도 고급스러웠고 아주 맛있었으니, 고급 식당에서 와인까지 곁들여서 이런 메뉴를 먹는다면 이런 비용이 나오리라 싶었다.
선물해 준 자식들에게 고마웠고, 즐거운 요리 체험을 하게 해 준 요리사 및 모든 직원들에게 고마웠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시간을 함께 보내며 즐길 수 있는 남편이 있음에 가장 감사했다. 그리고 그 넉넉한 음식 덕에 다음날 점심까지도 다시 한번 럭셔리하게 먹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즐거운 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