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그렇지? 아닌가?
한동안 닭살 글을 안 올렸더니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오랜만에 한 번 깨소금 부어봅니다. 닭살 기피증 있는 분들은 절대 피해 가세요! 안 본 눈 못 구해드려요. 책임 못 집니다. 구독자 확 떨어질까 봐 불안하네요.ㅎㅎ 손목 부상으로 긴 글이 어려워서 예전에 쓰다가 혼자 웃었던 글을 올립니다.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고, 노인의 주책에 껄껄 웃을 여유가 있는 분들만 읽어주시길...
나는 남편을 보면서 매일 몇 번씩 감탄한다. 어쩌면 이렇게 잘 생겼을 수가 있지? 아무리 봐도 너무 잘 생긴 거다. 옆에 앉아서 컴퓨터로 뭐 검색하고 있는 남편을 모습을 보면서 심쿵하는 것이다.
이 상황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궁금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외모를 안 밝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어린 시절에는 잘생긴 남자를 좋아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잘 생기면 좋은 거 아니냐 생각했고, 대학생 때 첫 짝사랑도 182cm 그림 같은 꽃미남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나는 이 잘생긴 남자들에게 실망을 하기 시작했다. 첫눈에 반할 만큼 잘 생긴 인물의 소유자가 그 잘생김을 유지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남자친구가 자기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한다고 했는데, 그중의 한 친구가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식당에 들어오는 순간 음악소리가 들릴만큼 잘 생겼더랬다.
아니! 너한테 저렇게 잘 생긴 친구가 있었어?!!!
그런데 나의 이 반응에 당시 남자친구는 폭소를 터뜨리며, 그럴 리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그맘때만 해도 벌써 인물을 밝히는 어린 나이는 지나갔기 때문에, 잘생긴 그를 보고 가슴이 설레거나 하는 것은 없었지만, 그가 뭐 그렇게까지 엄한 반응을 보이는지 의아했다.
그리고 그 의문이 풀리는 데에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는 근사하게 폼을 잡고 있던 그 친구의 진가가 점점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잘생긴 부잣집 아들이었던 그는, 당시 남자친구의 딱 그 표현대로였다.
"무슨 소리야? 쟤가 우리 중에 제일 맹해."
그랬다. 맹했다. 전체 대화에 적절히 반응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일삼기 시작하면서 그의 외모는 급속도로 퇴화해 갔다. 정말 신기하게도 더 이상 잘생겨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당시 남자친구도 전혀 외모를 고려하지 않고 만나고 있던 상태였지만, 잘 생긴 남자에 대한 미련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는 아이 엄마가 되었고, 미국에 살던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러 한국에 갔다가 딸과 둘이 다시 미국으로 가는 길이었다. 공항에서 체크인을 했더니, 직원이 쿨하게 라운지 티켓을 제공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여행하기 힘들 테니 쉬어 가라는 배려였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라운지에 들어섰는데, 비슷한 또래의 여아를 데리고 온 한 아버지가 있었다. 보통 아이 아빠쯤 되면, 적당히 배도 나온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정상인데, 깜짝 놀랄 만큼 잘 생긴 것이 아닌가? 게다가 티셔츠를 입었지만 몸매도 정말 탄탄해 보였다.
우리가 흔히 하는 농담으로, 기차나 버스 여행을 할 때, 내 옆에 훈남이나 미모의 아가씨가 앉을 확률은 0%보다 적어서 거의 -30%쯤 되는 것 같을 지경이라고 표현한다. 술냄새 풍기는 아저씨라거나, 잔소리하는 아주머니라든가, 귀의 이어폰 소리가 바깥으로 뛰쳐나오는 젊은이 등, 아무튼 별로 반갑지 않은 타입의 사람이 탈 확률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훈남 아저씨는 비행기에서 심지어 우리의 뒷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라운지에서부터 친해진 두 딸아이는 같이 놀고 싶어 했기에 결국 자리를 바꿔서 아이들끼리 앉히고, 우리가 비행기에 나란히 앉는 일이 발생했다. 물론 유부남 유부녀가 뭔가 썸씽이 일어날 기대 따위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인물도 좋고 매너도 좋은 사람이 좋지 않겠는가.
그 사람은 무척 그래 보였다. 본격적으로 입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30분쯤 지나자 나는 다시 자리를 바꿔 딸과 앉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미국에 가는 이유가 뭔가 요행을 바라고 친척집에 빈대 붙으러 가는 길이라고 했던가 했고, 뭔가 터무니없는 계획을 늘어놓았다. 거기에 아메리칸드림까지...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게 아니냐며 나름 허심탄회하게 나오는데 나는 대답할 말을 잃었다. 그는 정말 내 가치관의 반대쪽 끝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미모는 순식간에 퇴색되어 갔다. 그가 그렇게 탄탄한 몸매를 가졌던 이유는 오로지 그가 학교 체육선생님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는 결론이 나오고 나니 몸매도 결국은 직업일 뿐이었고 말이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미남에 대한 마지막 동경심을 완전히 버리고 말았다. 잘생김의 유효기간은 짧으면 1분, 길어봐야 만 하루가 안 간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잘생긴 사람들이 더 이상 잘생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에 예쁜 여자에 목매는 남자 후배들에게도, 그것만을 목표로 해서 달린다면, 그 아름다움의 기간이 너무나 짧아서 놀라울 것이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사실 남자들이 흔히 하는 말은, "첫눈에 예쁜 여자랑 결혼해야 해. 못 생겨도 정들면 예뻐 보이거든." 이거였지만, 반대로 예쁜 여자가 예쁨만을 유지하기 위해서 깍쟁이 짓을 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예뻐 보이지 않는 것도 순식간이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인물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잘 생긴 사람이 더 이상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엄마의 영향을 받은 딸은 심지어 인물의 잘생김을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엄마보다 진화한 것이다. 그 사람의 됨됨이가 인물로 보인다고 말했고, 실제로 남들의 평을 전해 듣고 "저 사람이 정말 잘 생긴 사람이에요?"라고 의아하게 묻기까지 했다.
이렇게 외모기준으로부터 먼 삶을 살아오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는 멋있는 사람이었다. 딸아이에게 엄청난 정신적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고, 언제나 올곶고 또 정의로웠다. 나랑은 전혀 연결될 일 없는, 그저 멀리 있는 딸아이의 멘토 선생님이었기에, 내 기준으로 그는 티브이에 나오는 저명하고 훌륭한 학자쯤으로 보였다. 즉, 연예인을 향한 팬심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 사람과 내가 사귀기 시작하면서, 물론 눈에 콩깍지가 씌었을 때에는 최고로 멋있어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는 잘 생기고, 목소리도 멋진 남자였다. 심지어 대놓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진짜로 남자 인물 안 밝히는데, 그래도 당신이 잘 생긴 것은 명백한 사실이네요."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다. 이 남자는 함께 살면서 세월이 가는데도 인물이 퇴색되지 않는 것이다. 분명히 인물의 효과는 길어야 하루라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았는데, 이 사람의 인물은 왜 바래지 않을까 나는 정말 궁금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는 답을 찾은 것 같다. 그는 진짜로 잘생겼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 돌이 날아올 테고, 그는 속이 정말 잘 생긴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와 함께 하는 그 어느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매사에 나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내세워 내 마음을 이용하려 들지 않고, 내가 자신을 위해서 희생하며 뭔가를 해주기 기대하지 않으며, 내가 행복한 순간에 그의 얼굴이 기쁨으로 빛이 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왜 살면서 티격태격이 없었겠는가? 그런데 싸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는 서로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희생시키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논쟁이 일어나는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가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의 티격태격마저도 점점 줄어들어서 이제는 신혼 초만큼의 투닥거림도 없다.
그가 고맙다. 늘 고맙다.
그런 그가 나를 쳐다볼 때 그의 푸른 눈이 진심을 담아 깊게 빛나니, 어찌 그가 내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긴 남자가 아닐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