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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n 29. 2023

열흘간의 음식 프로젝트 시작

캐나다 동쪽 끝에 사는 시누님이 우리 집을 방문하셨다. 7월 초가 생신이기 때문에, 이번엔 우리가 가는 대신 남편이 누님을 초청한 것이다. 작년에 아름다운 그 댁을 방문하였던 이야기를 적었는데, 그게 벌써 일 년 전이라니, 세월이 빠르기도 하다.



이번에도 생신상은 우리 몫이 되었는데, 작년에 맛있게 드셨던 미역국과 녹두전, 잡채를 또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이번에도 그렇게 진행할 예정이다. 더불어 열흘간 계시는 동안 다양한 한국 음식을 많이 대접하기로 했다. 우리가 그곳을 방문할 때에는 아무래도 한식 재료들이 다 있지 않으니 조리가 쉽지 않기 때문에, 여기 계실 때 다양한 경험을 해드리기로 목표를 잡았다. 


그래서 이미 한 달 전부터 밀플랜을 짰고, 누님의 도착부터 그 목표가 차근차근 실행 중이다.


메뉴는 검정, 준비할 것은 빨강, 준비된 것은 파랑으로 표시해서 관리


원래는 저녁을 잘 먹고, 다음날 점심에 남은 음식을 먹는 것이 우리 집 식사 방법이지만, 이번에는 과감히 모든 끼니를 새로이 챙기기로 했다. 그래도 중간중간에 누님이 조카들과 시간을 보내는 날이 따로 있기 때문에, 남은 음식들은 그때 우리 부부가 소진할 수 있어서 이런 진행이 가능했다.


늘 와인을 즐기는 서양 사람들에게는 반주가 중요하기 때문에, 오랜만에 막걸리도 담갔다. 이건 미리부터 준비해야 할 항목이었다. 막걸리에 어울리는 안주라면 역시 전이 필수! 그래서 해물파전과 김치부침개를 했다. 원래는 한 가지 전을 하려고 했는데, 이왕 반죽 만드는 김에 두 가지로 했다. 그리고 과감히 골뱅이까지 도전! 



이번 막걸리는 발효를 너무 오래 해서 그런지 알코올 농도가 확 낮아져 버렸다. 그래도 풍미는 살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시누님도 함께 건배를 하며, 한국 주점 메뉴(Korean Bar  Food)를 선보인 것은 대성공이었다.


누님이 사시는 곳은 노바스코샤의 시골이기 때문에 한국인 식당은 근처에 없고, 당연히 한국 마트도 없다. 따라서 제대로 한식을 맛보실 기회가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양한 한식을 골고루 선뵈기로 했다. 따라서 뜬금없는 부대찌개나, 마른오징어 구이도 끼여 넣고, 멀리 닭고기 픽업하러 갈 때에는 김밥을 싸서 소풍을 가기로 했다.


생신상은, 남편의 큰딸의 생일과 한꺼번에 하기로 했기에, 점심과 저녁으로 나눠서 차리기로 했다. 외국인에게 늘 히트 치는 엘에이갈비구이와 미역국은 점심에 넣었다. 육고기를 안 먹는 큰딸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래서 저녁때에는 흔한 한국식 생일상이지만, 고기완자 대신 생선어묵으로 대신하고, 녹두전과 잡채, 도토리묵을 준비하고, 거기에 딸이 좋아하는 냉면을 추가하였다.


그밖에 집에서 키운 맷돌호박으로 호박수프도 끓이고, 전형적인 한식으로 청국장과 멸치볶음, 김구이 등등, 소박한 상도 역시 메뉴에 넣었다. 막국수나 만두도 계획 중이다


물론 한식만 할 수는 없으니, 평소에 우리가 즐겨 먹던 비트 샐러드나 피자, 홍합 요리 등 여러 해산물을 넣고, 우리가 예전에 강습으로 배웠던 프랑스 요리 삼종세트도 집에서 시전 해보기로 했다. 


토핑을 탑처럼 쌓아서 구운 피자를 보며 좋아하시는 누님과, 미나리를 피자에 얹어 먹는 시범을 보이는 남편


아직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누님은 매일 바뀌는 메뉴를 무척 즐거워하신다. 남편네 집은 삼 남매였는데, 형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큰 누님과 남편 두 분만 있는 데다가, 누님이 멀리서 혼자 사시니 남편이 특히 마음을 많이 쓴다.


더구나 어머님이 병환에 오래 계시는 동안 누님이 곁에서 십 년 가까이 수발을 들며 지냈기에, 그 애틋함이 더 하다. 내가 여동생에게 갖는 미안하고 고맙고 짠한 마음과 비슷하리라. 점심 먹고 앉아서 그때 이야기를 하시며 쾌활하게 웃는 누님을 보니, 그 긍정적인 성격 덕분에 그래도 가능했겠다 싶었다. 어머님이 상당히 강단이 있으시고, 원하시는 것이 명확하신 분이었기에 곁에서 모시기 쉽지 않았을 텐데, 긴 세월을 그렇게 해내신 것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어머니가 한국에 계시고, 여동생이 그 병시중을 들고 있기 때문에, 남편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더 잘 챙기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도 엉망인 것을 알기에 남편도 내가 열심히 누님을 챙기는 일을 더 고마워하고 있기도 하다. 


세상 일은 참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 그 사실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실감하고 있다. 이번 여름에는 누님의 방문뿐만 아니라 우리의 여행계획도 잡혀있다. 다음 달에는 딸을 보러 샌프란시스코에 가기로 했고, 9월 초에는 오레곤주로 셰익스피어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남편이 예전부터 꼭 데려가고 싶다고 했던 곳이어서, 모든 일정을 다 남편이 준비했다.


처음 여행 계획을 잡으면서 나는 어쩐지 마음이 불안했다. 갈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예약을 망설이게 하였는데, 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아무 데도 못 가지 않을까 싶어서 저지른 것이다. 그때 걱정했던 것은 내 대장내시경 결과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또 어머니의 사고가 발생했다.


환불 불가한 티켓에 환불 불가한 호텔 등등이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데, 그 또한 지금 고민한다고 될 일이 아니리라. 역시 이것도 계획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니, 지금은 무슨 일이 생기든 유연하게 대처할 마음만 준비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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