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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l 10. 2023

수국이 만발한 여름을 위하여

풍성함을 만드는 넉넉한 가지치기

남의 집에서 만났던 이 퀵 파이어(Quick fire) 수국은 내가 가장 아끼는 꽃 중 하나이다. 이름도 기억이 안 나서 똑같은 거 찾느라고 아주 애를 먹었는데, 이렇게 찾아서 집에 만발하니 너무 좋다. 둥그렇게 뭉텅이로 피는 수국도 예쁘지만, 이 녀석은 이렇게 하늘하늘하여, 꼭 레이스 장식처럼 보이는 게 너무 사랑스럽다.


예쁜 꽃은 원래 헛꽃이란다. 알갱이들처럼 보이는 것이 진짜 꽃이다.


올해로 삼 년 차인데, 이제 드디어 제 모습을 제대로 과시하는 것 같아 더욱 기쁘다. 사실 가지치기 할 때 과감하게 해야 하는데, 나는 좀 소심해서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러고 나면 꼭 여름에 후회를 하는 것이다. 예쁘지 않게 길게 늘어지고 좀 얼기설기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올해는 가지치기를 자그마치 세 번이나 했다. 가지치기를 소심하게 하고는, 나중에 보고서 마음을 굳게 먹고 더 잘랐고, 그러고 나서도 역시 모자란다 싶어서 다시 한번 더 쳐냈다. 이제 그 보답이 돌아오고 있다. 


왜 가지치기를 과감하게 많이 잘라야 한다고 하는 걸까? 더 길면 꽃이 더 많이 필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식물들의 공통적인 특성 중 하나는 바로, 모든 영양소를 가장 높은 곳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크게 자라도록 설계가 되어있다 보니 끝으로 끝으로 에너지를 보내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삐죽하게 길기만 하고 보기 싫은 모양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에너지를 이렇게 멀리 보내야 하면 식물들도 지치기 쉽다. 그래서 대부분의 식물들은 좀 자라고 나면 끝을 살짝 꼬집어서 더 못 크게 만든다. 그러면, 그 에너지가 밑으로 분산되면서 곁가지들이 나와서 풍성해진다. 


수국도 예외는 아니다. 수형을 잘 잡으려면 가지치기는 필수다. 다만, 수국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지난해의 가지에서 꽃이 피는 종류와 올해 새로 돋은 가지에서 꽃이 피는 종류가 있다. 


동그라미 안에 보면, 구 가지에서 그대로 순이 뻗어 올라와 꽃이 피었다.


첫 번째의 경우는 가지치기를 여름 지나서 하게 되면, 그다음 해에는 꽃이 안 피는 깻잎 수국이 되어버린다. 늦어도 7월 중순까지는 가지치기를 마쳐야 한다. 새로 뻗은 가지는 겨울이 오기 전에 꽃망울을 저장하고, 그렇게 겨울을 난 이후, 다음 해에 그 꽃이 피는 것이다. 즉, 작년의 가지에서 꽃이 올라온다.


우리 집에 있는 수국은 두 번째의 경우이다. 즉 새 가지에서 꽃이 핀다. 따라서 꽃을 가을 늦게까지 즐긴 후, 가지치기는 늦가을이나 겨울, 또는 이른 봄에 해주면 된다.


나는 늘 3월에 가지치기를 하는데,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지를 자른 부분에 빗물이 들어가면 썩기 쉽기 때문이다. 하루 정도면 상처는 아물기 때문에, 하루 정도 맑은 날을 골라서 가지치기를 한다.


가지치기를 하고 난 수국은 참으로 볼품이 없어서, 찍어 놓은 사진이 거의 없다. 아래 사진에서 왼쪽 귀퉁이에 희미하게 보이는 세 그루의 앙상한 가지가 수국이다. 아마 두 번째 가지치기 이후에 찍은 사진인 것 같다. 



아래 사진은 예쁘게 핀 헬레보어를 찍느라 그 앞에 있던 수국이 찬조 출연으로 나온 것이다. 잘 보면 수국 가지에 마디가 있고, 그 마디에 약하게 싹눈이 보인다. 3월에 가지치기하는 장점은, 이 싹눈을 확인하고 그에 맞게 잘라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싹눈이 있는 마디를 밑에서부터 두 개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잘라내는 방식으로 가지치기를 한다.



위 사진의 왼쪽 가지를 보면, 잘라낸 위로 새로운 가지가 올라온 것이 보인다. 작년에 기른 가지인데, 이렇게 제일 끝단의 마디에서 새 가지를 뻗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만일 길게 남겨 놓고 자른다면, 그 아래쪽은 휑하니 비게 된다.


아래 그림을 보면, 왼쪽은 어쩐지 아까워서 길게 길게 가지치기를 한 경우이고, 오른쪽은 딱 두 마디씩만 남겨놓고 자른 케이스이다. 길게 자른 쪽은, 아래가 텅 비어서 볼품없는 가지가 드러나는 반면, 오른쪽은 키가 작아도 단단하고 야무지게 보인다.



더 중요한 부분은, 다시 이 가지에서 두 마디 정도에서만 새 가지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새 가지는 여러 마디를 자라고 그 끝에 꽃을 피우게 된다. 따라서 가지의 개수가 적으면 꽃의 개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꽃이 나무 전체를 덮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꼭대기에만 띄엄띄엄 꽃을 피우게 된다.



반면에 과감히 짧게 자른 경우는, 빽빽하게 새 가지가 올라오고, 그 위에 많은 꽃을 피우게 된다. 이렇게 키우고 나서 다음 해에 다시 가지치기를 할 때에는, 새로 올라온 가지에서 역시 두 마디만 남기고 잘라낸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키는 천천히 자라면서 아주 빽빽한 나무가 되는 것이다.


가운데에 가지가 너무 많아서 통풍이 안 되고 빈약하게 가지가 자랐다면, 다음 해에 그 가지는 그냥 잘라 버려도 된다. 어차피 튼튼한 가지가 많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잘라내고 남은 가지는 이렇게 물꽂이만 해 놓아도 싹이 나서, 아직 추운 날씨에도 푸르름을 실내에서 즐기게 해 준다. 그리고 매일 물을 갈아주며 상하지 않게 관리해 주면, 뿌리를 내린다. 몇 달 걸리니 마음을 조급하게 갖지 않는 게 중요하다.


옮겨 심고 나서는 물을 충분히 준다.


예쁘게 뿌리가 내렸다 싶으면 화분에 심어주고, 처음 하루 이틀은 물에 푹 잠기게 해 준다. 물속에 있던 뿌리가 흙에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이다. 물이 너무 마르지 않게 잘 관리해 주고 뿌리가 완전히 커져 힘이 생길 때까지 얌전히 두면 삽목 성공이다. 성급히 괴롭히면 죽어버리니 주의한다. 


위에서 보았던 보잘것없던 수국이 5월쯤 되니 큼직한 덩어리가 되었다. 짧게 가지치기 한 덕에 동그랗게 예쁜 수형이 잡혔고, 빈자리 없이 빼곡하다. 



그리고 이제 한창 꽃이 피는 중이다. 가녀린 듯하게 보이는 꽃송이는 춤추는 듯 보이기도 하고, 레이스로 멋을 낸 드레스 같기도 하다. 볼품없던 가지는 다 감춰지고 지금은 화단 앞쪽을 완전히 뒤덮어 버려서 나를 매일 황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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