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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04. 2023

더덕꽃 필 무렵

초롱초롱 담장 타고 매달린 꽃들이 더덕 뿌리보다 좋아서

우리의 자그마한 마당에 요새 더덕꽃이 한창이다. 한국에서는 아파트에 살면서 선인장도 죽이던 나였기에, 더덕은 그저 향기로운 맛있는 뿌리라고만 알고 있었다. 산동네 여행 가면, 아주머니들이 산기슭에 앉아서 껍질을 까며 판매를 하는 그런 기억이다 보니, 거의 산삼 기분이 드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더덕이 이렇게 덩굴 식물이고 꽃이 핀다는 사실을, 키워보고서야 처음 알았다. 게다가 이 꽃이 얼마나 예쁜지! 줄기는 내버려 두면 고층 아파트도 올라갈 태세이다.


처음 더덕의 씨앗을 구한 것이 3년 전이었다. 텃밭 동호회에서 어떤 분이 더덕 씨앗을 나눔 하겠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 집에서 꽤 먼 곳이었지만, 우리는 단걸음에 가서 씨앗을 받아왔다. 비닐봉지에 듬뿍 담아 주셨는데, 조그만 씨방에서 씨앗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너무나 키우기 어려울 것 같은 이 씨앗을,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밭에 뿌렸다. 자신이 없으니 모종을 만든다고 집안에서도 시작했다.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휴면타파 한다고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꺼내기도 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포기하는 마음이 들 무렵, 5월 중순도 지난 어느 날, 자그마한 새싹들이 텃밭에 가지런히 나왔다. 그때의 기쁨이란!


가지런히 올라온 더덕 새싹들


줄뿌림 한 것을 따라서 가지런히 귀엽게 올라왔다. 보통의 채소들이라면 이럴 때에 솎아주며 정리를 해주겠지만, 도라지나 더덕은 그냥 두는 편이다. 이렇게 바짝 붙어있으면 뿌리가 곧게 자란다고 한다. 여러 갈래의 잔뿌리가 생기는 것보다는 굵은 하나의 뿌리로 자라는 것이 나중에 수확해서 좋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은 그렇게 쑥쑥 자랐다. 일단 싹이 나기 시작하니 빠른 속도로 덩굴을 뻗어갔다. 작게 지지대를 세워줬지만 모자란다 싶어서 가운데 하나를 더 세워줬다.


막 자라기 시작하는 더덕 줄기들 (오른쪽)


더덕 덩굴에서 더덕 냄새가 났다. 당연한 것인데 어찌나 신기하던지! 줄기가 너무 길어서 끝을 잘라내서 입안에서 씹어보니 향긋하고 달콤했다.


그리고 10월로 들어서면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때 더덕 꽃을 처음 보았다. 조롱조롱 매달리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꽃이 핀 모습도 예뻤지만, 꽃망울이 풍선처럼 달려있는 모습도 너무나 귀여웠다. 아마 나는 이때부터 더덕 사랑에 빠진 것 같다.



그 이후에는 날씨가 급속도로 추워지면서, 꽃이 그리 오래 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씨앗을 수확할 새도 없이 한 해가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미처 뿌리를 확인할 새도 없이 겨울이 되었다.


날이 추워서 뇌두가 얼면 죽는다던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도 해봤지만, 그해 유난히 눈이 많이 와서 땅 밑은 포근할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굳이 캐지 않았던 이유는, 한 해 만에 실제로 뿌리 같은 뿌리가 생기기나 했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월 말, 단단하지 않은 지반 위에 세운 우리의 텃밭이 너무나 가라앉아버렸기에, 나무틀을 다시 균형을 잡아 세우고 흙을 보충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그 위로 그냥 흙을 덮어버리면, 더덕이 싹을 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한겨울이지만, 일단 파서 다시 심기로 결정을 했다. 호미를 들고 조심스레 땅을 긁어 나갔더니, 뇌두가 보이면서, 뿌리가 제법 모양을 갖추고 자리를 잡은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겨우 내내 뿌리가 계속 조금씩 자라고 있었나 보다.


도라지와 더덕의 수확


사진상으로는 제법 커 보이지만, 사실상은 거의 새끼손가락 길이에 두께도 몹시 가늘었다. 즉, 먹겠다고 덤비면 잇사이에 낄 수준이랄까? 향기는 좋았지만 굳이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 해 더 키워서 제대로 먹어야지 싶었다. 도라지나 더덕은 보통 3년 차에 먹는다고 한다.


이 녀석들을 이대로 다시 땅에 묻자니, 새로 사서 얹은 거름흙이 너무 셀 것 같았다. 도라지나 더덕은 거름이 많은 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은 버켓에 흙을 채워서 이것들을 담고, 그 위에 다시 흙을 덮어줬다. 밭에 있던 친숙한 흙을 사용해서 편안하게 쉬라고 지붕 밑에 두었다.


그렇게 한 달 반을 보내고 3월 초가 되어서 이제 심어도 되겠다 싶어 열어보니, 어라, 벌써 싹이 막 올라와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허둥지둥 심었다.


일렬로 늘어서서 붇을 준비 완료한 도라지들. (더덕은 이미 심어서 사진이 없다)


한 달 후에 뿌리에서 싹이 올라온 모습


그렇게 두 주일쯤 지나자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씨앗에서 나오는 싹과는 나오는 모습이 완전히 달랐다. 굵직한 줄기가 씩씩하게 나오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해 나갔다. 지지대가 너무 낮은 것 같아서, 이번에는 꽃밭 담장 밑에도 좀 심었다. 그리고 끈을 달아 유도를 해줬더니 기분 좋게 자라났다.


비 온 뒤, 물방울을 보석처럼 머금고 있는 모습


이제 더덕은 더 이상 채소가 아니었다. 예쁜 모습으로 자라는 화초가 된 것이다. 꽃밭의 배경이 되는 예쁜 담벼락 역할을 여름 내내 하였다. 그렇게 자라서 두 번째 해에는 훨씬 넉넉하게 꽃을 피웠다. 지지대가 넘쳐 나려 들 정도였다.


잎도 쫑쫑 썰어 샐러드에 넣어 먹기도 하고, 꽃도 역시 샐러드에 활용하면 예쁘고 향기롭다



그리고 겨울이 될 무렵, 땅에서 캐 봤더니, 1년 차때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녀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울타리 쪽에 심은 것들은 아무래도 화단이 깊지 않아서 제대로 길게 자라지 못했지만, 그래도 제법 통통한 것이 탐스러워 보였다. 파 놓고 보면 도라지와 더덕은 별 차이가 안 보이는데, 냄새를 맡아보면 확실히 다르다.


1년 차와 2년 차의 수준차이


이제는 3년 차. 얼마나 컸을지 모르겠다. 3년까지만 키우고 먹겠다고 했는데, 먹으려면 어쩐지 미안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올해는 어떻게 하려나?


잡아먹겠다는 내 속도 모르고 꽃이 열심히 또 피는구나. 올해는 예년보다 훨씬 일찍 피었다. 그러니 비를 덜 맞아 모양도 훨씬 예쁘게 유지가 된다. 담장이 환하니 내 기분도 환해진다.



더덕꽃 필 무렵, 우리 정원에는 가을이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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