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하고 시원한 바닷가, 왜 인기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곳
이번 여행의 반은 바닷가에서 유유자적하며 느긋하게 즐기고, 나머지 반은 빡빡하게 공연을 관람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그래서 먼저 그 첫 번째의 바닷가 여행을 시작했다.
사실 나는 링컨시티라는 곳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밴쿠버 지역부터 쭈욱 남쪽으로 바닷가지만, 사실 이렇다 하게 나를 감동시킨 바다는 만나보지 못했다. 항구이거나, 물도 별로 맑지 않고, 모래도 없는 그런 아쉬운 바다들이 대부분이어서, 동해안 바닷가를 기대하는 내게는 영 어설프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자그마치 7시간을 내려온 이곳에서 진짜 바다를 만난 기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창밖에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데크 문을 열어두고 침대에게 게으름을 피우니 파도소리와 함께 참으로 평화로웠다. 우리는 급할 것이 하나도 없었고, 창밖의 풍경만이 우리를 재촉했다, 얼른 바다로 나오라고.
결국 우리는 부름에 못 이기고 밖으로 나갔다. 전날 저녁에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가 귀찮기만 했던 경험을 되살려, 우리는 기꺼이 맨발로 응했다. 또한 들어올 때 집안에 모래를 흘리지 않기 위해, 따끈한 물을 한 바가지 떠서 현관 앞에 준비를 해뒀다. 들어오기 전에 밖에서 그 물로 발을 헹구면 쉽게 집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을 테니까.
날씨가 좋아지면서 아침의 바다 색이 확연히 달랐다. 생명이 느껴졌다.
바다에 남겨지는 우리의 발자국을 보았고, 새들의 발자국도 보았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해초들은 한국에서 보던 것들과 느낌이 달랐다. 엄청나게 긴 해초는 종종 썰어서 미역무침을 해도 좋을 것 같이 생겼다.
사람들은 연을 날리기도 하고, 달리기를 하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었고, 개를 데리고 와서 공을 던지며 놀기도 했다.
모래사장은 여러 가지 모습을 고루 보여줬다. 마른 유기물의 흔적, 파도가 지나간 자리, 그리고 그 파도가 돌에 만들어놓은 구멍들까지 모두가 평화로웠다.
모두 여유가 있었고 즐거웠다. 우리도 그랬다.
걷는 사람들, 개을 산책시키는 사람들, 깔깔 웃는 아이들, 그리고 연을 날리는 사람들... 급해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래사장은 여러 가지 모습을 고루 보여줬다. 마른 유기물의 흔적, 파도가 지나간 자리, 그리고 그 파도가 돌에 만들어놓은 구멍들까지 모두가 평화로웠다.
모래사장에 뜬금없이 솟아있는 바위는 모두에게 인기가 좋았다. 사람들에게도, 바다의 생명체들에게도
바위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붙어있었다.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입을 오므렸다 벌리는 모습에서 생존의 힘을 느꼈다. 새까맣게 가득 달려있는 작은 홍합들은 아기처럼 귀여웠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시내로 들어갔다. 점심은 느긋하게 외식을 해보기로 했다. 바닷가에 왔으니 회를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한국인들은 말하겠지만, 서양 사람들은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를 먹는다. 튀김옷을 입혀 튀긴 생선과 감자튀김이 함께 나온다.
우리가 검색하고 간 곳은, 지역 맛집으로 알려진 J's Fish & Chips였다. 자그마한 가게였지만 손님이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가게 입구부터 '규칙'이라고 써붙인 팻말이 있어서 불친절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가족이 운영하는 듯한 느낌의 소박한 곳이었다.
남편은 대구튀김으로, 나는 할리벗으로 주문했다. 사이즈는 생각보다 작았지만 둘이서 각자 배를 채울 수 있을만한 양이었다. 빵가루를 살짝 함께 입혔고, 튀김옷이 두껍지 않아서 맛있었다. 결정적으로 튀김기름이 아주 신선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함께 따라 나온 코울슬로도 맛있었다.
그곳을 나와서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링컨시티라는 거창한 이름이지만, 정말 작은 마을이었다. 시내라고 하는 곳은 대략 200미터 정도의 거리에 양쪽으로 앤틱샵 겸 기념품 샵들이 늘어선 정도였다. 해는 뜨거웠고 나는 사진을 찍을 생각도 못해서, 거리 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조금 아쉽긴 하다.
가게에도 딱히 살만한 물건들도 없었다. 다만 한 군데에서 관심이 가는 골무를 발견했다. 자개를 입힌 골무가 예뻐서 가격을 물었더니, 골무만은 판매하지 않고, 그 상자에 담긴 것들을 모두 한꺼번에 사야 한다고 말했다.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주얼리(jewlry)라고 불렀으나, 내 눈에는 그다지 관심을 끄는 것이 없었다.
나는 한때 골무를 수집하였기 때문에 살짝 마음이 흔들리긴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사모으는 것도 의미가 없다 싶어서 그냥 발길을 돌렸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시내에 더 볼 것이 있을까 둘러보다가, 개인이 소장한 정원이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입장료도 없다고 하니 부담 없이 둘러볼만하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아기자기하게 화단을 잘 가꾼 동네로 들어서자, 깔끔하게 정돈된 주차장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코니 한센 정원 (Connie Hansen Garden)이라는 소박한 팻말이 있었다.
우리는 정문으로 들어왔는데, 돌다 보니 중간에 또 문이 있었고, 어떤 남자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산책을 하러 들어왔다. 동네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개방되어 있는 정원이라니, 더욱 정이 갔다.
이 정원의 역사를 살펴보니, 한센여사가 은퇴 후, 고향인 오레곤에 와서 아이리스를 심을만한 습지를 찾아다니다가 이 땅을 찾았다고 했다. 정성을 기울이던 그녀의 정원은 그녀의 인생 말기에 이르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에 이르렀고, 결국 팔게 되었다. 그러나 이 정원을 아끼던 이웃들이, 이곳을 유지하기 위해 단체의 이름으로 사들였고, 현재는 기부금과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시기에는 화려하게 꽃이 만발하는 시즌이 아니었지만, 정원 내에 가득한 만병초들을 보고 있자니 봄철에는 정말 예쁠 것 같았다.
사무실 안을 빠꼼히 들여다보니 뭔가 판매를 하는 것 같았는데, 문이 닫힌 시간이라 그냥 추측만 할 뿐이었다. 사실 뭔가 팔아주고 싶어도 국경을 넘어야 하니 씨앗이나 화분은 어차피 불가능하고, 작은 기념품들이라도 팔아줄까 싶었지만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래도 바닷가 마을에 와서 바다만 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랑이 스며있는 마음의 정원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평화로운 기분이었다.
이 정원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면 :
이제 이 동네에서 볼 거 다 봤으니, 다시 바다로 가야지. 그래서 우리는 다시, 바다가 기다리고 있는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다녔으니 잠시 나른해진 몸을 붙들고 수영복 차림으로 데크에 앉아 차를 한 잔 마셨다. 딱 일광욕에 맞는 날씨였다. 뜨겁지만 덥지는 않은 선선한 날씨...
그렇게 널브러져 있다 보니 슬슬 해가 저물어가려고 했다. 더 늦기 전에 다시 한번 나갔다 와야지 싶어서 서둘러 나갔다. 한쪽 하늘은 여전히 오후였지만, 반대쪽에는 이미 해가 수면으로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다.
해가 낮아짐에 따라 날씨는 어느새 급속도로 쌀쌀해지기 시작했고, 바닷물에 들어간 발은 차갑게 느껴졌다. 우리는 수영복 위에 티셔츠와 잠바를 가볍게 걸치고 나왔는데, 더 놀다가는 감기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지런히 발길을 돌렸다.
들어와서는 천천히 식사준비를 시작했다. 메뉴는 근처의 마켓에서 사 온 연어로 정했다. 그리고 이곳으로 오면서 구입했던 아티초크도 곁들이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식사 준비하면서 동시에 마티니도 한 잔 곁들이는 여유. 전날과 달리 하늘이 맑은 이 날의 일몰을 놓칠 수는 없었다.
해는 졌지만 아직은 빛이 남아있는 시간, 우리는 완성된 우리의 저녁 식사를 천천히 즐겼다. 집에서 가져온, 우리 집 제작의 샤도네 와인을 곁들이니 더할 나위 없는 바닷가의 식사가 완성되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급속도로 피곤이 몰려왔다. 마지막 산책 끝의 쌀쌀했던 날씨가 몸에 남아, 바람이 몸을 휘감는 느낌이었다. 몸에서 한기가 빠져나가지 않자 갑자기 감기에 걸릴까 걱정이 되었다.
결국은 오늘도 핫텁에 몸을 담갔다. 쌀쌀한 날씨에 하체를 담그고 반신욕을 하고 있자니 온몸의 피가 순환이 되면서 한기가 사라졌다.
하늘을 보았다. 하늘 가득 별이 있었다. 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는 큼직한 별들. 나는 별자리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국자 모양의 큰곰자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더할 나위 없는 우리의 여행의 둘째 날이 이렇게 평화롭게 저물었다.
밀렸던 여행기를 다시 써보려고 매거진을 만들어서 이전 글들을 옮겼습니다. 브런치북 연재로 꾸밀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그러려면 이전글들을 발행취소해야하고, 그러면 소중한 덧글들이 다 사라지더군요. 그래서 그냥 매거진으로 모았다가 나중에 브런치북으로 묶으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끝을 내야한다는 것이지만요... 링컨시티를 지나 세익스피어 페스티벌까지 잘 달려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