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마지막에 당황하였다
바닷가에서 사흘,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서 나흘간 시간을 잘 보내고 집으로 올라오는 날이 되었다. 여행이 너무나 평화로웠고 순조로웠기에 떠나는 발걸음에 살짝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었다.
늘 그렇듯이, 숙박했던 에어비앤비를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짐을 실으러 나왔더니 사슴 가족이 반겨준다. 수시로 앞마당에 들어와서 사과를 먹더니, 사실은 아예 뒷마당에 진을 치고 살고 있었구나 싶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밤에 달려도 10시간이 걸리는 곳이기 때문에, 한 번에 올라가기는 무리이다. 내려올 때는 중간에 휴양을 하였지만, 올라갈 때에는 그냥 쉬었다 가기는 정도로 일정을 잡았다.
중간지점으로 잡은 곳이 포틀랜드(Portland)였다. 그곳에 큰 아웃렛이 있다니 쇼핑도 하자고 했다. 사실 우리는 쇼핑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지만, 오레곤(Oregon) 주는 세금이 없으니 어쩐지 그 혜택을 좀 누리고 싶었다.
아침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아침식사는 늘 숙소에서 간단히 해결하였지만, 이 날은 먼 길을 떠나니 든든히 먹자고 했다. 남편이 선택한 아침식사 전문점 브라더스(Brothers')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며 일요일 아침을 먹고 있었다.
전형적 푸짐한 아침식사가 제대로 준비되어 나왔다. 이곳을 여행하며 계속 느낀 것이지만, 애슐랜드(Ashland)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참 친절하다. 뭔가 늘 친근하게 대해주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인종 차별이 없다. 아예 없는 곳이 어디 있겠냐 만서도, 이 지역은 유독 차별을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일반적으로 백인이 많이 사는 시골 지역들이 인종차별이 많은 편인데, 이곳에서는 성별, 인종 등 어떤 것으로도 차별하지 않으려는 운동이 상당히 강한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 사람은 한 명도 못 봤고, 동양인조차 한 손가락에 꼽을 만큼만 만났는데도 한글이 쓰여있어서 깜짝 놀랐다.
수북하게 아침을 먹고, 우리는 북쪽으로 출발하였다. 포틀랜드까지도 거의 6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중간에 쉬어가야 한다. 들르기로 한 아웃렛까지도 5시간이 걸리니, 중간 지점에서 점심을 먹고 간단히 쇼핑을 하자고 했다.
사실 나는 정식 아웃렛 매장보다는 티제이맥스(TJ Maxx) 같이, 여러 회사의 제품을 한 군데 모아놓고 판매하는 곳에서 쇼핑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가격도 더 싸고, 결정적으로 여러 군데를 돌 필요 없으니 덜 피곤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우리는 2시간 반 거리에 있는 유진(Eugene)의 티제이맥스를 선택하여 출발하였다. 거리상으로 좋았고, 고속도로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아서 더 좋았다. 일이 거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할 줄이야!
도착해서 상점 안으로 들어가니, 일단 가게가 너무 작았다. 물건도 적었다. 남편 신발을 좀 볼까 싶었는데, 아예 남성 신발 코너가 없었다. 그래도 칼을 뽑았으니 뭔가 좀 골라보려고 애를 쓰고 몇 가지를 입어보았다. 아주 저렴하게 판매되는 카디건과 남편의 반바지를 선택했다. 싼 맛에 그냥 가볍게 입는 것이니 기분을 풀 생각이었다.
상점에서 나오니 피곤한 기분이었다. 주유할 곳을 찾다 보니 멀지 않은 곳에 코스트코가 있어서 일단 그곳에서 주유를 하고는 점심 먹을 곳을 찾았다. 내려올 때 연달아 파이브 가이즈를 먹었기에 좀 다른 것을 먹고 싶었다. 거창하지 않은 것이 마땅치 않다가 타라린(Ta Ra Rin)이라는 태국음식점을 찾아서 들어갔다.
음식은 생각 외로 아주 맛있었는데, 주문해서 음식이 나오기까지 아주 오래 걸려서 뜻밖에 시간이 지체되었다.
다시 차를 몰고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굳이 아웃렛에 가야 하나 싶었지만, 그냥 일정을 잡았으니 계획대로 그곳에 도착했다. 어차피 새삼 포틀랜드 관광을 하기에는 시간도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구매를 못하고 말았다.
구매를 못해도 윈도쇼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는 그냥 피곤하기만 했다. 그러기 시작하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한 시간가량을 달려 숙소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는 정말 잠만 잘 생각이었기에 저렴한 곳으로 선택을 했다. 그래도 편히 쉬고 싶어서, 쉐어 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만의 공간이 주어지는 곳으로 상당히 잘 골랐다고 생각했건만!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숨어있었다.
숙소는 아주 깨끗하고 넓었다. 부엌도 분리되어 있었고 모든 것아 다 갖춰져 있어서, 가격대비로 정말 훌륭했는데, 반갑지 않은 냄새가 너무 심했다.
집주인은 집안을 향기롭게 하고 싶었던 것 같았지만, 집안에 두 개나 꽂혀있는 전자 방향제 인퓨저의 냄새가 너무 강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향을 무척 싫어하는데, 더 문제는 남편이었다. 금방 알러지 반응이 올라왔다. 목이 조이는 느낌이 들며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왔다.
우리는 급히 인퓨저를 뽑아서 바깥으로 내놓고 창문을 열었다. 그런데 과연 금방 냄새가 빠질지... 계속 이곳에서 사용되었다면 모든 가구에 냄새가 배어있을 것 같았다.
우리의 도착을 확인한 집주인이 나타났다. 반갑게 인사를 하였고, 아주 상냥한 할머니였는데, 아마 자기 집에서도 이것을 쓰는 것 같았고, 전혀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
일단 선풍기를 달라고 부탁을 하고, 창문을 다 열고 저녁을 먹고 온 후에 냄새가 빠지는지 보겠다고 하면서 그곳을 나왔다.
우선 편의점 문 연 곳을 찾아서 항히스타민제를 구입하였다. 베네드릴을 원하였지만 일요일 저녁에 근처에서 원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남편이 그 냄새를 싫어하는 줄만 알았지, 이렇게 알러지가 있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신기한 것은, 남편은 향기 있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꽃도 향이 진한 꽃을 아주 즐긴다. 나는 러쉬(Lush)같은 목욕제품도 거부하는 스타일이지만 남편은 아주 좋아하며, 아로마 오일 인퓨저를 집안에 틀어 놓기도 하는데, 이런 인공향에는 알러지 반응을 일으킨다니 놀라웠다.
남편이 단지 그 향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몸에서 자동으로 거부반응이 나오는 것이라며 스스로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런 인공적 제품에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VOC)이 들어있는데, 벤젠 성분이 있고, 발암물질로 들어간다고 한다. 솔직히 마트에서 이런 것을 보면, 이런 인공향을 진짜로 쓰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것도 방 하나에 두 개씩 꽂을 만큼 열광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저녁을 간단하게 먹으면서 고민을 하였다. 식욕도 완전히 떨어진 상태여서 맛있는 것을 주문할 생각도 안 했다. 우리의 머릿속은 오로지, 과연 냄새가 빠질지 걱정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러지 않을 것 같았다. 집주인이 환불을 해줄지 자신은 없었지만, 돈 아깝다고 그곳에서 자려고 하다가 남편이 밤중에 응급실에 실려간다면 그보다 더한 낭패는 없을 것 같았다. 나도 두통이 생겨서는 가라앉지를 않았다.
숙소로 돌아왔지만, 냄새는 큰 변화가 없었고, 약을 먹은 후 조금 진정되는 듯했던 남편의 몸에서도 다시금 거부감의 반응이 올라왔다. 결국 집주인을 불러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른 숙소를 잡겠다고 말했다.
집주인은 우리더러, 그런 알러지가 있으면 사전에 반드시 알려야 하는 거라고 말했지만, 내가 에어비앤비를 8년째 쓰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요새는 각종 알러지가 많아지는 추세여서, 학교 같은 곳에서도 무향지역(scent free zone)으로 지정되는 일이 흔한데, 방을 대여하면서 이런 향을 추가하다니 참 놀라웠다.
그래도 집주인과는 트러블 없이, 서로 미안하다고 하며 마무리하고 숙소를 나왔다. 환불을 부탁했더니, 어떻게 해줄 수 있는지 에어비앤비와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조금만 가면 공항 근처니 어렵지 않게 숙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일부 수수료를 제외하고 환불되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우리는 근처에 있던 체인 호텔인 컴포트 스위트(Comfort Suite)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방이 없다고 하더니, 매니저에게 물어보고, 잠시 후에 매니저가 와서 하나 남은 방을 찾아주었다. 그렇게 해서 체크인 한 시간이 밤 아홉 시였다.
남편의 목은 점차 가라앉았고, 우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루를 돌이켜보니 참 시간 낭비를 많이 하였다 싶었다. 어정쩡하게 쇼핑한다고, 안 하던 짓을 하여서 시간을 소비하고는, 결국 밤에는 이렇게 또 사방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싶으니 맥이 쭉 빠졌다.
그래. 모든 일이 다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거 이제는 잘 안다. 우리는 방을 구해서 다행이라며, 남은 와인을 꺼내서 건배를 했다. 원래는 저녁식사를 사다가 에어비앤비에서 와인과 함께 먹으며 여독을 풀자 했지만, 저녁은 이미 대충 때웠고, 와인이라도 마셔야 하지 않겠나.
일은 꼬였지만, 무사히 안심하고 잘 수 있게 되었으니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름의 호텔 조식을 먹고 출발하여, 벨링헴에서 장 보고, 국경 가볍게 넘어 저녁 식사 전에 집에 도착했다.
집에 오니 좋다. 돌봐야 할 곳들이 구석구석 우리를 부르지만, 도착한 밤에는 그냥 자는 걸로!
순서가 틀렸지만, 일단 가까이 기억나는 것부터 올리고, 자세한 여행이야기는 사진과 함께 차근히 풀어볼게요. ^^ 오자마자 할 일이 많아 허덕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