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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Feb 06. 2024

벽에 꽃밭을 만들다

오랜만에 만든 퀼트

5년 전 캐나다에 오면서 나는 퀼트를 접었다. 20년 이상 내 생활의 일부였던 이 바느질을 앞으로는 더 이상 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퀼트가 아닌 다른 것을 경험하면서 사는 것도 괜찮으리라 싶기도 했다. 


내가 많이 지쳐있었던 탓이리라. 힘들었던 가정과 이혼에 이르기까지 막판에는 정말 기진맥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다 처분해도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들고 온 바느질 용품들을 이제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남편이 작업실을 만들어줬다. 그렇게 완성된 방에서 나는 다시 꼬물꼬물 바느질을 시작했다. 간단하게 바짓단을 수선하기도 하고, 해어진 시트를 꿰매기도 했다.


몇 가지 소품들을 만들고 나니 (이것은 나중에 소개 예정) 미루고 미뤘던 침대커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직후부터 만들겠다고 천도 구입해 놓았는데 그냥 파묻혀있었다. 


디자인을 고민했다. 손이 많이 가지 않고 빨리 만들 수 있으면서도 너무 단조롭지 않은 디자인이면 좋겠다 싶었다. 정사각형만 연결하면 지루할 테니 삼각이 들어갔으면 좋겠고, 남편이 원하는 대로 그라데이션도 주면 좋겠고...


그렇게 고민해서 디자인을 그렸다. 그리고 원단을 계산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구매해 놓은 원단은 택도 없이 모자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예전에 원단을 구입하던 당시에는 다른 디자인을 생각했었나 보다. 결국 추가로 원단을 더 주문하고 도착을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고 생각해 보니, 당장 이 작업실 벽도 비어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여기도 뭔가 하면 좋겠다 생각하다가, 그러면 침대커버 만들기 전에 같은 도안으로 벽걸이를 해보면 연습도 되고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젤리롤을 하나 꺼냈다.


퀼트 하는 사람들은 이 천 뭉치를 젤리롤이라고 부른다. 롤케이크(Jelly Roll)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색색의 천을 같은 크기로 잘라 놓은 것을 말한다. 2.5인치(대략 6cm) 폭으로 잘라진 총 40장의 천이 한꺼번에 들어있다. 다양한 천을 적은 양씩 살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상품이다.


롤케익 모양을 풀면 이렇게 다양한 천들이 있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이 천 뭉치를 펼쳤다. 알록달록한 원단들을 마주하니 뭔가 가슴이 설레었다. 침대커버는 단색의 원단인데 이것은 이렇게 색이 다양하니 전혀 다른 느낌의 작품이 나올 것 같지만, 그래도 방의 색과는 잘 어울리겠다 싶었다.



나름 그라데이션이 되도록 천을 펼쳐 놓은 후, 배색을 시도했다. 대략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제발 내가 원하는 대로 나오면 좋을 텐데...


나는 머신퀼터(machine quilter)이다. 즉, 재봉틀로 퀼트를 만든다는 뜻이다. 한국에는 원래 일본에서 퀼트가 들어오면서 모든 조각을 손으로 잇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나도 임신했을 때 그렇게 조각조각 직접 천에 그림을 그리고 가위로 자르고 손으로 이었다.


그렇게 만드는 작품은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린다. 완성하고 나면 그걸 차마 실용적으로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재봉틀로 만드는 퀼트에 눈을 떴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미국에 3년간 살면서, 티브이에서 하는 퀼트 방송을 보고 방법을 익혔고, 한국에 들어와서 그 방법을 전파하는데 힘을 썼다. 그 세월이 20년이 넘는다.


따라서 이번 작품도 재봉틀로 만들었다. 재봉틀이 손바느질보다 10배 이상 빠르다. 그러나 10배만큼 쉽지는 않다. 손으로 하는 작업을 살살 달래가면서 사이즈를 맞추면 되지만, 재봉틀로 할 경우에는 정말 정확하게 작업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밀려서 각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훨씬 정교한 작업이다.


나는 이 작업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은 계획대로 세장의 천을 이어 붙였다. 짝 맞춰 놓은 것이 헷갈리지 않게 주의해서 붙여야 한다. 



그러고 나서는 반드시 다림질을 해야 한다. 뒷면의 시접을 정리하고, 정면이 반듯해지도록 만든다. 시접의 방향은 작가 마음인데, 나는 언젠가부터 가름솔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재봉퀼트의 재미난 점은, 이렇게 연결을 다 한 이후에 그것을 다시 통째로 자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다시 박을 것이다. 이렇게 자르는 도구로는 피자칼 같이 생긴 로터리 커터(rotary cutter)를 이용한다. 



다시 이차 배색을 시작했다. 삼각형 모양으로 연결한 것이기 때문에, 두 개씩 짝을 지어 색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며 짝을 완성한다. 



그리고 짝이 완성되면 박아준다. 이것은 좀 특별한 기법이다. 원래는 정사각형을 마주 보고 대각선을 박고 나머지를 버리는 것인데, 그러면 원단이 아까우니 나는 크기 손실을 최대한으로 줄이도록 계산해서, 직사각형 한 쌍으로 두 개의 정사각형이 나오도록 만들었다.


완성된 블록이 위에 보인다. 아래는 대각선 기준선을 그리는 작업이다.


여기까지 했다면 반 이상 온 것이다. 다른 일들을 하며 짬짬이 시간을 내어 작업하였고, 사흘 걸렸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색감이 내가 딱 원하던 그 색감이 아니었다. 역시 천의 다양성이 부족하여, 원하는 그라데이션이 잘 되지 않은 것이었다. 겹치는 색들을 빼내다 보니 종류가 적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다르게 놓아보았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핀까지 다 꽂아놓은 녹색을 박지 않고 좀 더 고민해 보자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잠을 설쳤다. 머릿속에 패턴을 다르게 활용할 방법이 밤새 떠다녔다.


새벽 4시에 겨우 붙였던 눈을 뜨고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보니,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것들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미 박은 것을 뜯는 것은 지옥 같은 기분이었다. 결국 그냥 배치만 좀 더 바꿔서 일단 완성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다 해놓으면 나을 수도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나머지 푸른 계열도 빠르게 블록을 완성했다


고민의 흔적들


그날 하루종일 망상거리며 위치를 바꿔보고, 저녁 식사 후 연결을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조각을 박을 때에는 순서가 바뀌면 안 되기 때문에 한 줄씩 먼저 선택해서 박는다. 나는 이때에 핀을 다른 색으로 선택해서 순서를 잊지 않도록 했다. 


같은 줄에 같은 색의 집게핀을 사용해서 순서를 잊지 않게 했다


결국 밤에 이 퀼트 탑(quilt top)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이제 뒷면을 꼼꼼히 다림질해야 하고, 그다음에 솜과 뒷감을 대고 누벼야 한다. 다음 작업은 다시 다음날로 이어졌다. 


집에 가지고 있는 솜을 꺼내 보니 크기가 살짝 짧았다. 한숨을 푹 쉬고 나서, 솜을 이어 붙이기로 했다. 옆쪽에 길게 남는 부분을 잘라서 모자라는 부분에 조각조각 이어 붙였다.


기묘하게 파서 써서 아슬아슬하게 모자라는 솜


이제 뒷감을 골라줘야 하는데, 벽에 걸릴 것이니 그리 예쁜 천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좀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더구나 내가 가진 천의 대부분을 처분하고 온 나로서는, 갖고 있는 천이 전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다 보니 더 그랬다.


벽장을 바라보다 보니, 안 쓴다고 빼놓은 분홍색 침대커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 좋은 질의 천은 아니지만 그래도 면작물이니 뒷감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얼른 다림질해서, 밑에 깔고, 세 겹을 합쳐 핀을 꽂았다. 이제 누빌 차례이다. 이걸 퀼팅이라고 부른다. 누비는 선은 그야말로 약장수 마음인데, 나는 직선 누빔을 좋아한다. 누비는 것은 가운데부터 해야 한다. 바깥쪽부터 안쪽으로 누벼 들어오다가는 잘못하면 가운데의 천이 남아 오도 가도 못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누빔도 끝났고, 테두리 마감은 짙은 자주색으로 정해서 둘러줬다. 



그다음의 문제는 어떻게 벽에 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살 때에는 벽지에 핀을 찔러서 걸었는데, 이곳 벽은 벽지가 없어서 그게 불가능했다. 못을 박자니 거창했고, 압정으로 구멍을 뚫기도 싫었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쓰리엠에서 나오는 임시접착 벨크로였다. 벽에 한쪽을 붙이고 나머지를 퀼트 쪽에 꿰매주면 잘 붙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집에 있는 것은 후크형 뿐이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방법이 보였다. 



후크형을 사용하다가 플라스틱이 부러져서 새로 후크형을 더 사다 썼었는데, 벽면용 접착테이프만 남은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벨크로가 있었다. 결국 나는 이 두 가지를 붙여서 나만의 점착형 벨크로 테이프를 만들었다.


벽에 잘 붙인 모습


나중에 다른 작품을 만들어서 걸고 싶다면, 저 테이프를 떼어내고 새로 붙이면 된다. 만일 사이즈가 비슷하다면, 벽면에는 그대로 둔 채, 새 퀼트 뒷면에만 새로 벨크로를 붙이면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퀼트 워밍업이 끝났다. 닷새 만에 끝난 새 퀼트, 마음에 쏙 든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방의 색상에 잘 맞아서 분위기를 확실히 올려주니 좋다. 


내가 원했던 것은, 햇살을 받은 봄 정원이었다. 왼쪽 위로 햇빛을 받은 보다 노란색이 보이고, 그 밑으로 꽃과 푸른 잎들이 어우러진 것을 나타내고 싶었으니 나름 성공적이라 주장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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