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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Feb 28. 2024

생활 속 바느질, 냅킨

소박한 사치를 누린다

바느질방을 만들어 놓고서, 그 안에서 맨날 컴퓨터 작업만 하고 있다. 퀼트 이불 만들겠다고 파란 원단 잔뜩 사서 시작은 했는데, 영 진도가 안 나가고 있어서 은근 조바심이 난다. 큰 작품은 큰 덩어리 시간이 필요한데 나는 지금 조각시간들만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지난 크리스마스 때에 만들었던 것들 중 한 가지를 불러와 보련다.


남편은 상차림에 진심이다. 요리에만 진심인 것이 아니라, 맛있게 만든 음식을 잘 서빙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 집 식탁에는 매일 플레이스 매트가 놓이고, 천 냅킨과 포크, 나이프가 가지런히 자리 잡는다. 식구가 많이 모이면, 당연히 풀 세트로 준비하고자 한다.


간단한 한 끼도 제대로 놓고 먹으려고 늘 노력한다


그런데 이 천 제품이라는 것이 쓰다 보면 닳아서 해어지게 마련인지라, 때마다 갈아줘야 한다. 또한 분위기 바꾸려면 다른 색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작년에 이케아 갔다가, 원단 파는 코너에서 리넨천을 두 가지 샀다. 카키와 푸른색을 샀는데, 지난 크리스마스에 새 냅킨이 있으면 좋겠다는 남편의 심정을 읽고 그 천을 꺼내봤다.


대폭의 천을 정말 넉넉하게 샀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르려고 보니 원하는 분량에서 모자랐다. 나는 사방을 넉넉하게 접어 넣은 디너냅킨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랬다가는 8개밖에 안 나오게 생긴 것이다. 우리 식구 모두가 다 짝을 데리고 오면 10명인데 말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푸른색 리넨 천을 가지고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시접 부분을 대폭 줄여서 만들면, 한 폭에 3장씩 해서, 총 12개가 나올 수 있겠다 싶었다.  최대한 알뜰하게 잘랐다.

대폭원단은 자로 한 번에 자를 수 없을 만큼 넓다


다리고, 자르고, 또 다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테두리의 시접도 미리 접어서 다려줘야 깔끔하게 박을 수 있다. 


재봉틀 앞에 앉았다가 생각하니, 바느질한 지 오래되어, 청소한 지도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났다. 그래서 북집 들어있는 뚜껑을 열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먼지가 수북했다.


틈새로 먼지가 가득하다


이 먼지는 천이 지나가면서 만들어내는 먼지다. 천과 실과 이런 것들이 머금고 있는 먼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다림질만 해봐도, 그 과정에서 천의 겉의 고운 한 겹이 미세하게 닳아서 그게 다리미에 달라붙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아무튼 재봉틀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주기적으로 이 북집 있는 근처를 깨끗하게 청소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늘땀이 뜨거나 고장이 날 수도 있다. 나는 재봉틀 옆에 늘 면봉을 두고 수시로 청소한다.


사용한 원단의 색상에 따라 먼지의 색도 바뀐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크리스마스 전에 완성을 했다. 뭔가 과정샷을 찍었는 줄 알았는데, 아마 바빠서 그냥 지나갔나 보다. 뒤져보니 이 사진 한 장 나왔다. 



시접을 넓게 접어 넣어 고급스럽게 표현하고 싶었지만, 이게 현실인지라, 아예 바짝 잡아서 최대한 깔끔하게 처리하려고 했다. 그리고 모서리는 그냥 직각으로 접으면 둔해 보여서 사선으로 접어 넣었더니 그래도 나쁘지 않게 마무리가 되었다.


빨아도 상태가 그대로 좋았다


남편은 아주 흡족해했고, 크리스마스 상차림으로 붉은색의 접시받침과 함께 세팅했더니 아주 잘 어울렸다. 사진에는 질감이 잘 나타나지 않지만, 리넨소재여서 그 자체로 고급스러웠다.


크리스마스 파티 전의 고요한 순간


냅킨을 하나 완성하고 나니 뭔가 좀 다른 분위기의 냅킨이 한 가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새로 카키색의 리넨을 자르자니 좀 거창한 것 같고, 그렇게 망설이다가 좋은 것이 생각났다.


얼마 전에 남편이 침대 시트를 버린다고 들고 왔다. 우리 결혼할 때 산 거니까 5년 된 것이다. 당시에 고급으로 구매해서 면의 질이 아주 좋은데, 가운데 부분이 낡았다. 겨울철 거친 발뒤꿈치가 닿는 부분만 얇아져서 망가진 것이다. 중간을 이어봤지만 금세 옆자리가 찢어지더니, 급기야 세탁기에서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나왔다. 남편이 이걸 어쩌겠느냐는 데 내가 탐난다고 챙겨놨었던 것이다.



사실 고급 원단이었기에 가운데만 낡았지, 침대 옆면에 닿던 부분은 다 너무 멀쩡했다. 버린다고 하는데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일단 둬보라고 말하고는 고민을 했다. 일부는 잘라서 다리미판을 만드는 데 사용했는데, 나머지를 다시 보니, 작은 냅킨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디너 냅킨으로는 너무 작았지만, 티타임이나 런치용 냅킨이 열개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은 모든 식기 도구들이 다 열개가 되기를 희망하니까 말이다. 네 명의 자식이 모두 파트너를 데리고 올 경우를 대비한 숫자! 결국 지난겨울 크리스마스에 그렇게 열 장이 다 쓰였으니 맞는 계산이었다. 그래서 열 장의 냅킨을 다시 만들었다. 


약간 멋을 부려 시접을 넉넉하게 접어 넣고, 모서리를 액자 모양으로 뽑았다. 흰색만 사용하기에는 밋밋하여, 푸른색으로 무늬 스티치를 놓았다. 비록 재봉 자수였지만, 앞뒷면이 같은 무늬로 나타나는 스티지를 선택했더니 상큼하고 예쁘게 완성되었다. 


결국 이것은 남편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낙찰되었다. 남편 몰래, 크리스마스 전날 정신없이 박았다. 아무리 재봉틀이지만, 무늬를 가운데 줄에 잘 맞춰서 박아야 했기에, 열개나 만들자니 생각만큼 진도가 빨리 나가지는 않았다. 결국 당시에 와 있던 딸내미를 불러, 실의 끝 정리를 해달라고 하면서 간신히 마무리했다.


앞면과 뒷면이 차이가 없어서 더 좋은 디자인이었다. 


이렇게 해서 남편의 크리스마스 양말에 들어갔다. 정식 선물이 아니라 양말에 넣는 작은 선물이었다. 열어 본 남편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점심때 이 냅킨을 사용했다. 정신없던 시간이어서 남은 사진은 없다. 그러나 남편은 아주 흡족해했다.


혹자는 말한다, 이렇게 하얀 냅킨을 어떻게 쓰냐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쓰는 물건이 아니라면, 가끔 삶아주면서 사용하는 작은 사치를 누려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더구나 집에 바느질쟁이가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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