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Feb 08. 2024

월플라워, 바느질하느라 읽었는데...

보이는 것과, 겪는 것과, 느끼는 것,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같지 않다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아니, 책을 들었다. 한동안 책을 잡을 새가 없었는데, 최근에 바느질을 시작하면서 귀로 뭔가 듣고 싶었다. 안 그래도 영어 원서 북클럽에서 쓸 책을 고르느라 컴퓨터 안을 헤매다가 십수 년 전에 구해놓은 오디오북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를 키울 때 성장소설을 진짜 많이 읽었는데, 그때 읽으려고 했다가 못 읽은 책인 듯했다. 따로 시간을 내서 읽게는 안 되었지만, 손으로는 바느질을 하면서 들으면 좋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듣기 시작했는데, 내용으로 점점 빠져들어갔다. 그래서 퀼트를 하나 완성하는 동안 내내 내 동무가 되어주었고, 퀼트와 같이 끝이 났다.


영어의 난이도는 낮은 편이었다. 어려운 단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들으면서 술술 귀로 들어오는 종류의 문체였다. 하지만 서양의 문화적 배경을 모른다면 결코 쉽지 않을 책이었다. 서양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를 전혀 모른다면 상당히 충격적일 수도 있는 스토리이다.


내용에는, 마약, 성, 흡연, 동성애, 자살, 왕따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어우러져 있다 보니, 서양 아이들은 정말 이렇게 자랄까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실제로 흔히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래서 미국에서조차 이 책에 대한 판단이 정반대로 갈렸다고 한다. 진짜 청소년의 이야기를 녹여낸 좋은 작품이라는 평과, 너무 적나라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평으로 나뉘었고, 실제로 금서로 선정된 지역들도 있다.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by Stephen Chobosky
월플라워,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으면, 특별한 것들을 볼 수 있어 
스티븐 크보스키 作


제목부터 보자면, 월플라워(wallflower)를 직역하면 벽에 붙은 꽃이다. 하지만 진짜 화초가 아니고, 벽에 붙은 꽃처럼 무도회에서 춤 신청을 받지 못한 채 벽에 달라붙어 있는 여인들을 일컫는 단어다. 아름다운 드레스로 치장한 채 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인들의 모습은 정말 벽에 핀 꽃 같았을 것 같다. 


그녀들의 눈으로 보는 무도회는 어땠을까? 막연히 부럽거나 아름답기만 했을까? 어쩌면 방관자의 모습으로 보다 보면, 그곳에 춤추느라 바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사건들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주인공 찰리는 누군가에 편지를 쓴다.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으리라 믿는 누군가에게 가명으로 쓰는 편지다. 그래서 어투가 편안하고 쉽다. 자기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굉장히 차분하게 전달한다.


중학교 때의 친구가 자살을 했고, 그 트라우마를 가진 찰리에겐 또 다른 트라우마가 있다. 자신이 어렸을 때 돌아가신 헬렌이모다. 자기의 생일 선물을 사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이모에 대한 죄책감이 늘 자신을 감싸돌며 패닉에 빠지게 만들곤 한다. 자기랑 가장 친했고, 자기가 가장 좋아했다고 기억하는 이모의 죽음은 찰리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친구가 하나도 없는 찰리는 월플라워 같은 존재다. 그러다가 졸업반인 패트릭과 그의 이복 남매인 샘을 만난다. 예쁜 샘에게 한눈에 반한 찰리는 그녀의 주위를 맴돌지만,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녀가 행복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두 사람과 어울리면서, 찰리에게도 친구가 생긴다. 여자친구가 생기기도 한다. 파티에도 가게 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약도 해보고, 여러 가지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또한 엄청난 반전이... 이 이상의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테니 생략하고...


이 책에는 어록이라고 할만한 좋은 문장들이 참 많이 있다. 삶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을 볼 수도 있다. 그리고 테이프에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해서 준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며 옛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우리는 당시에 옳다고 생각하고 한 행동들이 그렇지 않게 되는 일을 종종 만난다. 


이 이야기에는 마약이나 성 같은 문제성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 사랑이 있고, 포용과 이해가 있고, 스스로의 독립이 있다. 그 과정에서 성장해 가는 모습이 있고, 또 어떻게 성장하면 좋을지 도우려고 하는 부분도 확실히 있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부분은, 여주인공 샘이 하는 말 중에 있었다. 바로 너 자신이 되라고 하는 말이었다. 친구를 위해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모습이 되고, 여자친구를 위해서 또 다른 모습이 되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이 되지 않으면서 잘해주려다 보면 자신의 모습을 잃게 될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 네가 정말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샘은, 스스로 자신 또한 그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셈이다.


이것은 현재의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다 좋은 의도였지만, 타인을 위해서 자신의 모습을 왜곡하면, 결국 자신이 원하는 모습도 될 수 없고, 그것은 상대방을 속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솔직하지 않으니 상대를 진짜 위한 것이 아니라는 아이러니이다.


어떤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런 사람이 되지도 못하고, 또한 나 자신도 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살면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인 것 같다. 이 말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를 해하라는 뜻이 전혀 아니다. 다만 내가 나일 때 가장 자연스럽다는 것, 그리고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에 더 가깝다고 보겠다.


이 책은 또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이 꼭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모는 한국사람의 문화와 관념을 가진 채 자식을 이런 학교에 보내다 보면, 아이가 학교에서 이런 비슷한 일에 휩쓸렸을 때 감당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여기에 나오는 일들을 모두 지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문화에서 그런 것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상당히 다르다. 서양에서는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슬쩍 눈감아주기도 하면서 아이가 스스로 성장하기를 바라보는 부모들이 많다. 자기들도 자랄 때 한 번씩 경험해 본 일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휩쓸려서 마약을 한번 해본다고 해서 모두 마약 중독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가정의 아이라면 그 경험을 딛고 더 바른 길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가 무방비 상태로 아이들이 이런 일에 휩쓸리는 것을 보게 되면 분노하거나, 무너져 내리거나 하게 되는데, 그것이 아이에게 또 다른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피해서 몰래 더 그런 것들에 빠져들 수도 있다. 


그래서 이곳의 아이들은 어떤 경험을 하는지, 그걸 통해서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미리 엿보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자 하는 부모가 되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원래 책을 읽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뭔가 이 이상 쓰기는 쉽지 않다. 다만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차별과 다름 속에서 꽃 피는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