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불이 사랑에 빠질 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정말 오랫동안 극장에 안 갔었는데, 최근에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Elemental)을 보려고 나들이를 했다. 내가 애니메이션 마니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 살 때에는 나름 괜찮다는 것들을 챙겨 보는 편이었다.
픽사에서 나온 주토피아, 월E, 인사이드 아웃 등은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영화들이다. 내가 픽사를 편애하는 이유는, 그저 이 영화들이 내 감성에 맞아서 일 것이다. 캐릭터는 만화이지만, 감성이 섬세하게 묘사되어서 감정이입이 잘 되는 그런 작품들이 나는 좋다.
이번에 엘리멘탈을 굳이 선택한 이유는 이렇다. 일단, 딸이 지금 픽사에서 인턴쉽을 하고 있으므로 한 번 더 마음이 갔고, 이 영화를 본 딸이 추천을 하기도 했다. 생각할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 이유라면, 비록 픽사에서 만들었지만, 감독이 한국인 재미교포이기 때문에 마음이 끌리기도 했다. 우리 딸도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미국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니 나름 서포트를 해주고 싶었다.
주인공들이 사람이 아니지만, 결국은 이민자들의 삶을 그린 이 작품은, 감독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영감을 얻었다고 한 만큼 더욱 내용이 관심이 갔다. 나 역시 이민자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원소들이 사는 도시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물, 불, 공기, 흙이라는 원소가 함께 사는 도시. 그곳에서 서로 다른 원소들이 부딪히고 어우러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사랑이 빠지지 않는다.
일단, 이민자의 삶이나 인종 차별 같은 것들을 무겁지 않게 다룬 점이 좋았다. 그리고 꼭 흑인, 백인, 아시안 등의 대립 구도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 대신 원소를 사용함으로써 꼭 어느 편을 지지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 좋았다.
무심코 벌어지는 차별이나, 다름을 통한 무지함 같은 것들을 캐주얼하게 묘사를 했고, 그로 인해서 가볍게 상처받거나 또 무겁게 상처받는 장면들도 지나갔다.
입국 심사에서 이름을 말하니 심사원이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반응을 보이는 장면을 보면서, 정말 우리네 이름이 그들에게는 그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소리로 들린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했다. 내 남편이 한국어를 따라 하고자 할 때 바로 그런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현지인들에 대한 편견과, 반대로 현지인들이 바라보는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이 서로 어느 쪽이 더 심하다 할 것 없이 묘사되었다. 어느 세상에서든지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니까 말이다.
나 같은 아시아인이 이렇게 캐나다라는 서양의 나라에 와서 살게 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불이 물의 나라에 와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한층 가까워진 것 같다가, 아, 정말 다르구나를 느끼는 순간들이 문득문득 나타나니까 말이다.
주인공인 엠버와 웨이드의 사랑은 그래서 더 간절하고 안타깝다.
특히나 웨이드가 엠버를 거대한 방울거품에 넣고 조심스럽게 물속으로 안내하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민자이기는 하지만, 혼자 와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보다는 쉽게 살아가고 있는 편이다. 왜냐하면 캐나다인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골치 아픈 일이라 생각되는 것도 그에게는 그냥 늘 있는 일일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 나라라는 강점 때문에 훨씬 쉽게 일을 풀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이든 문제가 생기면 남편이 나서서 나를 보호하고 이끌어주는 것이, 그렇게 방울 거품 안에 넣어서 나를 데리고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어쩌면 내 같은 민족의 누군가보다 더 날 잘 아는 것 같고, 더 잘 이해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엠버도 자기가 사랑하는 아버지보다 더 잘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웨이드 때문에 갈등한다.
나 역시 지금의 남편과 사랑에 빠졌을 때, 외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어떻게 한국어로 한국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말이 통할 수 있는지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게 사랑의 힘이겠지.
이 영화에서 좋았던 점은, 흔히 그렇듯이, 둘이는 좋은 관계이지만 이루어질 수 없다, 내지는 좋은 친구가 되기로 했다는 식으로 이끌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달라도 사랑할 수 있고, 달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서로 다른 원소들이 서로의 사이에 선을 긋지 않고, 다가가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지 아닌가!
물론, 이 영화가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타깃이 누군지 헷갈리게 짜여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린이들을 타깃으로 한 것처럼 정신없이 구성을 잡았는데, 막상 아이들용 영화라고 하기에는 무게감이 있었다. 즉, 아이들은 무슨 뜻인지도 전혀 모르고 장면만 보고 웃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쉬웠다. 트레일러도 별로였다.
그리고 너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려고 욕심을 부린 탓에, 영화가 시사하는 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이건 요즘 애니메이션들의 추세인 것 같다. 기술이 자꾸 발달하다 보니 뭔가 더 현란한 것을 보여주고 싶어 주체를 못 하는 느낌이랄까?
우리 집에 머물고 있는 시누님도 함께 영화관에 갔는데, 평생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본 그분의 소감도 그랬다. 디테일이 너무 많아서 내용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고... 동부로 돌아갔을 때까지 계속 상영 중이라면 가서 한 번 다시 보고 싶다고 하셨으니, 분명 실패한 영화는 아닌데, 진짜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면, 디테일을 살리면서도 내용에도 빠져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우리는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수많은 이름들이 지나가는데, 딸이 영화를 만들 때 나오는 엔딩을 생각하기도 했고, 저 자리에 딸의 이름이 나올 날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감독의 부모님의 사진이 짧게 나왔다가 사라졌는데, 그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했다. 효녀 주인공은 어쩌면 감독 자신의 모습의 일부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