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읽어도 되는 교육서
우리 세대에 아주 흔한 대사가 있다.
"오빠 사랑하지?"
그러니까 잠자리 같이 하자고 꼬시는 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용해서 상대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는 행위는 인생에서 전혀 생소한 일이 아니다.
"사랑한다면서, 그것도 못 사줘?"
이것도 전형적인 레퍼토리로 들어간다. 사랑이 뭐길래 이렇게 전혀 사랑이 아닌 곳에 천연덕스럽게 등장을 할까? 정말 사랑한다면 할 수 없는 말들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쉽게 사용한다. 사랑하니까 때리는 것이고, 사랑하니까 잔소리하는 것이고,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이 책의 제목이 그거다. 사랑을 이용해서 아이를 다루지 말라는 말이다. 사랑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원서의 제목은 '무조건적인 자녀교육'인데, 아마도 번역을 이렇게 하는 게 더 강하게 와닿아서 그렇게 한 듯하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이를 키울 때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 진작 읽었다면 훨씬 덜 방황했을 텐데,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나는 참 많이 돌아왔다. 다 키워놓고 보니까 여기에 있는 이론들을 실천한 것들이 많았고, 그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를 홈스쿨링으로 키웠고, 그것은 참으로 무모한 결정이었지만, 위 책에 있는 것을 실천하기에는 더없이 유리했던 것 같다. 어쨌든 대학을 보내기 위해서 홈스쿨링을 결정한 부모의 교육철학을 써서 제출해야 했는데, 영어로 쓴 내용을 딸이 자기 멘토 선생님께 보여줬다. (지금은 남편이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말 한마디도 섞지 않던 관계였다)
그 내용을 읽은 그는, "너희 엄마가 알피 콘을 아니?"라고 놀라서 물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선생님이 지금의 남편이 되었고, 나는 드디어 내 손에 그 책을 쥐게 되었다. 남편을 통해서 책 내용은 여러 번 들었지만, 진짜 궁금했던 내용을 작년에 처음으로 정독을 해서 읽었다.
번역서도 궁금했지만 e북을 팔지 않아서 원서로 읽었다. 혼자 읽은 것은 아니었고, 스피드리딩이라는 원서 읽기 클럽을 통해 북클럽을 열어서 교육에 관심 있는 분들과 함께 읽었다. 같이 읽은 분들의 반응은 정말 뜨거웠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교육서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식 키우는 이야기에만 관한 것이 아니라, 현재 자신의 모습도 투영해 주는 힘이 있었다. 자신이 자라온 과정을 돌아봄으로써 자신이 그렇게 성장한 이유를 찾아내기도 했고, 부부관계에 대입을 해서 생각함으로써 어떻게 더 좋은 관계가 될지에 관한 실마리를 찾기도 했다.
아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아주 어린 부모들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되었고, 아이가 큰 부모들은 상대적으로 쉽지 않음을 느꼈지만, 그래도 뭔가 희망을 찾았다.
이 책에 무슨 힘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을까?
이 책은 가장 기본으로 들어가는 책이다. 어떻게 해서 아이가 말을 잘 듣게 할까라든가, 공부를 잘하게 하는 비법 같은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꿀팁이나 편법은 없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를 어떻게 인간적으로 대접해서, 어떻게 독립적이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게끔 도와줄까가 그 포인트인데, 역시 족집게 과외는 아니다.
A를 하면 B가 된다는 공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를 컨트롤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그래서 어렵다. 특히 원서는 상당히 어렵더라. 이 작가가 단어도 좀 어렵게 쓰는 편이었다. 그래서 일부 회원들은 번역서를 함께 읽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내용에 몰입하는 것이었으니까.
칭찬이 체벌만큼이나 위험하다는 부분이 사람들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는데, 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 난 이후에도 쉽지는 않았다. 그 상황에서 잘했다는 칭찬을 하지 않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야야 할지 길을 잃은 듯하기도 했다. 나는 알피 콘 전문가 같은 남편에게 묻기도 하고, 또 내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엊그제도 브런치 글을 읽다가, "우리 아이가 그래도 착해서..."라는 말로 아이를 평가하는 부분을 읽으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 '착하다'는 기준은 부모의 말에 고분고분하고, 때론 억울하다 싶어도 반항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를 원하는 것일까? 평생 누군가의 말을 잘 듣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드물다. (패륜 부모도 있긴 하다만 서도) 누구나 다 자식이 잘 되라고 애를 쓰는데, 모든 자식이 다 잘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 부모는 처음이라 너무 힘들다. 아니 각각의 아이들이 다르니 아이가 여럿이어도 매번 처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하는 행동의 결과가 당장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장차 아이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사실은 부모 스스로를 참담하게 느끼게 만든다.
나 때문에 아이가 잘못될까 봐 꾹 참고, 그러다가 폭발하고를 반복하다 보면 나는 자질이 떨어지는 부모라는 자괴감이 들기 쉽다. 하지만 자식은 참고 견뎌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사랑하고, 함께 기쁨을 나눠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데 고통을 인내하고 있다면, 여기에 이미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순간이 있지만, 그렇다고 인내의 대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말은 쉽지!"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하는데, 지금 아이가 몇 살인지 모르지만, 하루라도 어릴 때, 이 쉽지 않은 일을 시도하고 경험하는 것이, 장차 훨씬 어려운 일을 막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부모로 하여금, 다른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해주는 책이다.
그렇지만 휘리릭 속독으로 대충 읽고 던져버린다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곱씹고, 생각 다시 하고, 그리고 자신의 경우와 비교해 가면서 꼼꼼히 읽는다면 분명히 그 방법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누군가와 함께 읽어보기를 더욱 추천한다. 배우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에도 북클럽을 할 계획입니다. 이번엔 번역서를 구해서 한국어본으로 할 거예요. 자녀 교육에 고민이 있어서 이 책의 북클럽에 참여하고 싶은 분이 계시면, '작가에게 제안하기'를 통해서 저에게 연락 주세요. 이미 함께 하실 분들이 십여분 되어서 많은 인원 충원은 불가하나, 정말 함께 읽으면서 고민하겠다 싶으시면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단, 대충 읽다가 흐지부지 사라지실 분이라면 사양합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녹여 넣어서 읽으실 분만 오세요. 4월에 시작 예정이고요, 제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 게시판을 이용해서 온라인으로 진행됩니다.
* 표지 사진 출처 : Pexel의 Nataliya Vaitkev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