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Feb 20. 2024

가까워졌지만 멀어진 관계

쉽게 친해지지만 그만큼 쉽게 끊어질 수 있어서 두렵기도 하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세상이 가까워졌다. 혼자 프랑스로 고학하러 갔을 30년 전, 나는 집에 전화 거는 일도 사치였다. 가격이 비싸니 정말 용건이 없으면 전화를 걸지 않았고, 걸어도 진짜 용건만 간단히 하고 휘리릭 끊어야 했다. 고립감이 상당히 컸던 것 같다. 


방 안의 스위치에 미소를 그려두기도 했고, 싹이 난 양파를 키우며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때에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했다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사람에게 다다를 수 있어서 상실감이 덜 했을 것 같다.


지금은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와 매일 화상통화를 할 수 있다.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정말 별 이야기 아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부담 없이 나눈다. 


또 다른 점이라면, 온라인 세상이 발전하면서 연락이 끊어진 친구를 페이스북에서 검색해서 찾는 일도 생긴다. 실제로 나도 몇 번 친구를 찾았다. 한 번은 그 친구를 찾으려다 못 찾아서 그 딸아이를 찾아서 엄마를 연결해 달라고 한 적도 있다. 물론 이럴 때에는 독특한 이름이 큰 도움이 된다. 나처럼 흔한 이름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진다. 온라인 영상통화로 영어 수업을 하는 나는 수강생들과 금세 친구가 된다. 상대방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사람들과는 정말 오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도 있고, 이야기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이메일 쓰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고, 마음이 우울하다고 하면 하소연을 들어주기도 한다. 종종 번개모임을 해서 외로운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면 나는 그 사람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쉽게 연결이 될 수 있는 만큼 쉽게 끊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정답던 친구가 사라지는 일이 생겼다. 재작년에 한국에 가려고 준비하면서, 간 김에 그 친구를 보고 싶어서 카톡을 했는데, 읽지도 않고 답이 없었다. 캐나다 온 이후에도 메시지를 나눴었고 통화도 했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국제전화를 해봤더니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어디론가 이민을 간 것일까? 정체를 숨기고 숨어야 할 일이 생겼을 수도 있을까? 아니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다들 집전화를 사용했고, 친구가 어디 사는지 정도는 다들 알았던 것 같다.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집에 전화를 걸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그 친구를 찾을 길이 없었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친구들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 나는 가까운 친구들의 그룹채팅 방에서, 남편이나 아이들의 연락처를 나누자고 제안했고, 친구들도 공감했다. 우리는 모두 무서웠던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일이 다시 최근에 일어났다.


수강생 한 명이 소식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녀의 이름과 그녀가 애틀란타에 산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의 한국 이름이 있었다. 이것이 내가 아는 모든 정보다. 


성격이 밝고, 매사에 열심이며,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성장하려는 젊은 엄마였다. 웃는 모습이 예쁜 그녀는 가끔 딸 키우는 이야기를 의논했고, 내 오전 수업 마지막타임이었기에, 뒷 수업 걱정 안 하고 30분 넘게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자주 있었다. 


그녀와의 마지막은 이렇게 되었다. 갑자기 엄마들 번개 모임이 생겨서 참여 못하니 내일 하자고 하길래 그러자고 대답을 해줬고, 그녀는 내 대답에 하트를 찍어줬다. 그게 끝이었다. 


그다음 날 수업에 연결이 되지 않았지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겠거니 했다. 그러나 그날이 다 가도록 소식이 없었다. 저녁때 되어서 별일 없느냐 연락했지만 읽지도 않았다. 다음날 수업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내가 보낸 메시지에 전혀 읽음 표시가 뜨지 않았다. 


그녀의 성격상 힘든 일이 있어도 연락하고, 하소연을 할 거 같은데, 아예 연결이 안 되길래 혹시 폰을 잃어버리고 연락처를 찾을 수 없나 싶어서 이메일도 보내봤다.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그게 벌써 지난주의 일이다.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불길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지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괴롭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하는 것이라지만, 이런 식의 이별은 마음이 너무 슬프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길 가다가 마주친 사람들처럼, 훗날을 함께 할 생각을 못하고 눈앞에서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제발 그녀가 무사하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