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숨어있던 인생
딸이 차를 산 지 아직 6개월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딸의 직업상 외근이 잦았고, 그 외근도 상당히 장거리 외근이었던 터라 벌써 만 마일을 채웠고, 엔진 오일을 갈아야 할 때가 되었다.
남들은 차를 가지고 하는 대학원 생활을 자전거로 버텼는데, 그 한을 푸는 듯 정말 원 없이 돌아다니는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커서 배워서 그런지 적응이 상당히 빨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주, 미국의 추수감사절에는 차를 몰고 대학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차가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럴 때 유용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 남동생, 그러니까 아이의 외삼촌이 차로 3시간 거리에 살지만, 차가 없어서 결국 추수감사절 방문을 한 번도 못 했는데, 이번에 그 한을 푼 셈이었다.
6시간 거리에 있는 친구네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외삼촌 집에도 들러서 각각 2박을 하며, 쓸쓸하지 않은 추수감사절을 보냈다는 것이 나는 무엇보다 기뻤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 같아서, 가게도 모두 문을 닫고, 혼자 있으면 굉장히 쓸쓸하기 때문이다.
마음먹고 운전하면 6시간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아주 즐거운 변화였다. 다만 친구네 집인 보스턴에서 외삼촌 집에 가는 길에 난이도 최강의 운전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보스턴에서 점심을 먹고 외삼촌 집으로 가는 길,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서 들어선 길은 산길이었다. 그린 마운틴스로 들어서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딸은, 이미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눈보라가 치고 있었고,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라는 의문이 드는 상황이었다.
자동차는 자동 하이빔이 올라갔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저 살금살금 앞으로 움직일 뿐... 그러다가 드디어 차들을 만났다. 딸의 앞쪽에 줄지어 기어가고 있는 차들이 나타난 것이다. 물론 앞의 앞의 차는 보이지 않고, 그저 바로 앞차의 꽁무니만 따라가는 상황이었다.
우리 아이도 초보였지만, 아마 앞차는 더 초보였나 보다.
너무 무서워서 자꾸만 브레이크를 밟아서 딸도 뒤에서 불안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브레이크 세게 밟아서 저 차가 돌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란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그 앞차는 그만 포기하고 싶어 졌던 것 같다. 계속되는 긴장을 견디기 힘들어서, 잠시 차를 갓길에 세우고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 막막한 순간에, 그 차가 갑자기 옆쪽으로 슬금슬금 빠지며 갓길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산길이었고, 이렇다 할만한 갓길이 있지도 않았다. 옆으로 빠지던 차는 산길 가의 움푹 파인 곳으로 덜컹하며 들어앉았고, 이제는 더 이상 오도 가도 하지 못할 상황이 되고 말았다.
딸이 그 상황에서 그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나설 수는 없었다. 자기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니 그냥 그 앞에 있던 차를 따라서 계속 살살 이동을 했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운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자아낼지...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고, 차들은 어쨌든 살살 이동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거기서 채 1분도 가지 않아서, 도로가 보이기 시작을 한 것이었다. 흰 눈으로 뒤덮여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도로인지 알 수 없던 길에서, 갑자기 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점차 나은 곳으로 들어서고, 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을 했다는 것이다.
딸의 그 무용담을 들으면서, 우리는 정말 이게 우리네 인생과도 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무슨 일을 해도 계속 꼬이고,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애를 써서 가야 하는 걸까 싶다. 마치 눈보라 속을 걷는 것처럼 막막하고, 힘들고,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삶의 경로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버티다 보면 놀랍게도 길이 열리는 순간이 나타난다. 전혀 희망이 없어 보였는데, 갑자기 길이 짠 하고 나타는 것이다. 다만 그 순간이 1분 뒤가 될지, 한 달 뒤가 될지, 일 년 뒤가 될지는, 그 순간이 되기 전에는 모른다는 것이다. 딸아이의 눈길 운전처럼 말이다.
그래서 1분만 더 가면 되는 순간에 포기를 하고, 옆의 도랑으로 차를 몰아넣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그런 어려움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좀 더 버텨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존버라는 말이 있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나는 존엄하게 버티기의 약자라고 주장한다.
힘든 순간들을 존엄하게 버티시고, 밝은 길을 다시 만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