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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r 24. 2024

봄이 오면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

만물이 소생하면, 내 안에 들어있는 무언가도 같이 살아나는가?

캐나다 밴쿠버의 날씨는 사람의 마음을 자주 조롱한다. 봄이 올 듯, 올 듯하면서 마냥 늦어지다 보니, 한국에 있을 때는 3월 초만 되어도 들뜨던 마음이 여기서는 많이 느긋해졌다.


캐나다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차페크의 책 '정원사의 일 년(The Gardener's Year)'에만 봐도, 우리가 마음속에 그리는 그런 봄과, 실제 가든에 나가서 느끼는 봄의 차이가 확실하게 다르다고 묘사된다. 그 부분을 읽으며 너무나 감정 이입이 되어서 낄낄대며 읽었다. (나도 이런 책 하나 쓰고 싶다, 우리 마당의 이야기로 언젠가!)


그런데 올해는 어째 예년보다 따뜻한 것 같다.  물론, 변덕스레 추웠던 날이 없지는 않았다. 갑작스레 몰아닥친 한파로 심하게 훼손된 나무들이 우리 집에도 있으니까. 


찬바람에 손상입은 줄사철나무(euonymus)에서 감사히도 새싹이 돋아난다


그래도  올해는 확실해 예년보다 따뜻하다. 이미 1월부터 꽃이 올라오기도 했고, 2월에는 제법 포근했다. 


겨우내 움직이기 싫어서 방에만 틀어박혀있던 내가 자꾸만 마당으로 나가는 것을 보면, 분명히 날씨의 변화가 몸으로 들어온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서머타임이 시작되어서, 하루가 한 시간 일찍 시작되다 보니 벌써 7시 까지 환하다.


튤립이 준비 중이다


분갈이, 잡초 뽑기, 쑥 나누기, 모종 만들기, 그리고 가지치기 및 화원 쇼핑까지 더해지니 궁디가 붙을 새가 없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다 거쳐가는 일이다. 


겨울 동안에 온실에서 자고 있던 화분들도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러면 꺼내서 정리를 해줘야 한다. 죽은 가지는 잘라내고, 새싹이 돋보이게 해 준다. 퓨시아는 며칠새로 쑥쑥 자랐길래 흙을 정리해 주고, 영양분도 뿌려주었다. 이 지역에서는 일 년생으로 매년 새로 구입하는 꽃인데, 작년부터 이렇게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어서 꽃을 피우렴.


겨울 동안 잠들었던 퓨시아가 온실에서 싹을 틔우더니 벌써 꽃망울 맺었다


구기자도 싹을 올리고 있어서 정원에 매달았다. 고지베리라고도 불리는 구기자는 웬만하면 죽지 않고, 삽목으로도 쉽게 번식시킬 수 있는 착한 식물이다. 가을이 되어 빨간 열매가 조롱조롱 달리면 참 예쁘다.


구기자 화분


이번에도 수국을 과감하게 가지치기해줬다. 매년 가지치기할 때마다 참 조심스러웠는데, 이제는 가지 자르는 손에 확실히 자신감이 들어간다. 반복되는 가지치기 덕분에 제법 빽빽하게 가지가 자리를 잡았다.


몇 년 지나니 이제 수형을 제법 잡아가는 수국이다.


예전에는 가지치기한 것으로 삽목을 해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지만, 올해는 그냥 속 편하게 화병에 꽂았다. 



아무것도 없는 가지를 이렇게 물에 꽂으면 며칠이 가지 않아 싹이 열린다. 그 모습이 참 예쁘다!


저 뒤에는 남편이 감자 싹을 틔우고 있다


화원에 가서 뭔가를 안 사고 집에 돌아올 수는 없다. 그곳에도 봄이 넘실대니 말이다. 특히나 싸게 파는 것들은 반드시 집어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한 개 500원씩에 팔던 프리뮬라는 상당히 시들어있는 상태였는데, 집에 가져와서 분갈이를 해주고 정리를 해줬더니 살아났다. 그래서 지금 우리 침실 창문의 윈도 박스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키우기 까탈스러운 래넌큘러스도 세일하길래 집어와서는 화분에 옮겨 심고, 화단에도 옮겨 심었다. 내가 싹 틔우는 녀석은 이제 싹이 날까 말까 하는데 화원에서는 이렇게 벌써 꽃을 피워 내놓으니 시간과 노력을 생각한다면 이게 싼 거다.

 

래넌큘러스! 이렇게 사진발을 안 받기도 힘들다!


그리고 올해는 새로운 수국을 한 가지 더 샀다. 등수국(climbing hydrangea)이다. 우리 뒷마당 가는 길에 있는 화단에는 해가 별로 들지 않는다. 따라서 뭘 심어도 꽃을 피우기가 힘든 편이다. 뭘 여기에 심으면 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걸 골랐다. 그늘에서도 꽃을 피우는 종류란다.



자리 잡아 꽃을 피우려면 3~5년은 되어야 한다는데, 이 녀석은 몇 살일까? 처음에는 좀 천천히 자라다가 일단 자리를 잡으면 잘 큰다고 하니 기대를 해 봄직 하다. 레이스 같은 흰 수국이 벽면을 덮으면 얼마나 멋질까 기대된다.


이렇게 봄은, 이미 마음속으로 일 년 치 꽃을 다 피우는 시기인 것 같다. 


죽은 듯 잠들었다가 싹을 밀고 나오는 장미, 다년생 화초들, 구근들... 너희의 겨울잠이 너무 고맙다. 이렇게 봄에 환하게 다시 만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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