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을 한 마리씩 끼고 앉아서 먹는 것이 신기한 사람들을 위하여
지난번 내 생일 때, 남편의 자식들이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814) 크리스마스 연휴를 어떻게 보냈느냐는 말을 나누면서, 남동생 집에 갔을 때 삼계탕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 식구들은 이렇게 늘 먹으면서 또 먹는 이야기를 즐겨한다.
사실 이 삼계탕은 남편과의 추억이 따로 있다. 바로, 남편이 처음으로 나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때, 내가 처음으로 시켜준 외식이 삼계탕이었다.
광화문의 그 유명한 토속촌 삼계탕 집에 가서, 줄을 서서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남편은 처음으로 놀랐다. 줄을 관리하는 직원이 워키토키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챙기는 모습에 또 놀랐다.
그리고 안으로 안내되었는데, 커다란 홀에 긴 식탁이 놓여있었고, 모르는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서 식사를 하게 된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그리고 각자 닭을 한 마리씩 끼고 앉아서 먹는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놀라움의 연속이 되었던 이 음식, 삼계탕. 캐나다에 와서 한번 끓였던가? 막상 집에서는 해 먹지 않게 되는 음식이었기에, 남편이 몹시 힘들어하던 어느 날 몸보신용으로 끓여준 것이 딱 한번 있었을 뿐이다.
남편이 자식들에게 이 무용담(!)을 들려주니, 자식들은 모두 웃으며 재미나게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넉넉하게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음식이 얼마나 궁금하겠는가!
나는 그날, 원래 이 음식은 여름철 가장 뜨거운 날에, 기운을 복구하기 위하여 먹는 것이지만, 우리 집은 6월이 될 때까지 생일 모임이 없으니, 그 사이에 모여서 한 번 먹어보자고 운을 띄웠다.
그리고 정말로 모였다.
사실 삼계탕이나 닭죽은 여러 번 끓였지만, 8인분을 끓인 적은 없었기에 나름 긴장이 되기는 했다. 한 명이 사정상 못 오고 7명으로 확정된 후, 나는 올케에게 전화를 했다. 5인분을 한꺼번에 끓인 올케의 비법을 얻어오려는 의도였다.
보통 삼계탕은 닭이랑 약재 한꺼번에 넣고 끓이지만, 아무래도 대용량은 솥이 모자랄 수도 있고, 번거로우니 국물을 따로 내는 것이 좋다며, 여러 가지 팁을 알려주었다.
나는 일주일 전에 김치부터 하며 의욕을 불태웠다. 사실 바쁘다는 핑계로 김치도 진짜 오랫동안 안 했는데, 그래서 심지어 사 먹어볼까 하고 한인마트에서 망상거리기도 했지만, 차마 구매하지 못하고 결국 배추만 사 와서 김치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늘 사 먹었었는데 어째 여기서는 그렇게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인지...
전날은 디저트도 만들었다. 쑥을 넣어서 스웨디시 크림을 만들었다. 아주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디저트여서 종종 애용하는데, 한식에 어울리게 이번에는 쑥을 넣었다. 색도 예쁘고 맛도 좋았다. 만드는 법은 일반 스웨디시 크림에다가 쑥을 두 숟가락만 넣으니 레시피는 그냥 링크만 남기겠다 (https://brunch.co.kr/@lachouette/358)
그리고 삼계탕 7인분을 만들었다.
캐나다에서도 영계를 파느냐 묻는다면, 이곳에서는 코니시 헨(Cornish game hen)이라고 부르는 영계를 판다. cornish는 닭의 종류인 듯하고, 보통 냉동으로 판매한다. 마트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데, 똑같은 상표도 마트마다 가격이 다르니 잘 비교하고 사기를 추천한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약재는 간편하게 패키지를 이용했다. 보통 1봉에 4인분이라고 하니, 두봉을 샀다. 하나는 잘게 잘라놓은 것을 샀고, 나머지 하나는 좀 폼나는 통으로 된 것을 샀다.
일하는 순서만 맞추면 그리 힘들지 않게 진행이 가능하다.
먼저 국물을 낸다. 패키지에 들은 것 이외에, 대추, 마늘, 양파, 표고기둥을 넣었고, 표고도 두 개 넣었다. 이거는 나중에 건져서 얇게 채 썰어서 고명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두릅나무 가지치기 하고 말려뒀던 것도 두 개 넣어줬다. 또 녹두도 좀 넣었다. 구수한 맛을 낼 수 있게 해 준다.
예전에는 땅콩이나 견과류를 갈아서 넣기도 했는데, 최근에 내가 너트 알러지가 생겨서 그것은 생략했다.
이렇게 해서 한 시간 정도 국물을 내주고, 내용물은 다 건져냈다.
국물을 내는 동안, 찹쌀과 녹두를 씻어서 불렸다. 찹쌀은 한 시간만 불리면 되고, 녹두는 3시간은 불려야 한다. 녹두 안 해도 되지만, 나는 녹두를 좋아해서 찹쌀의 반 정도의 녹두를 준비했다.
닭도 손질해 주었다. 이리저리 뒤지면서 기름진 곳들을 잘라내면 된다. 기름이 모인 곳에서 잡내가 난다고 생각하면 된다. 꼬리와 날개 끝도 잘라낸다. 그리고 안쪽에 내장이 남아있는 것들도 깨끗하게 긁어낸다
닭의 속을 채울 때에는, 나는 대추 2개, 큰 마늘 1개, 은행 2개를 넣었다. 밤도 넣고 싶었는데 파는 곳이 없어서 포기했다. 갈비찜을 할 때에는 맛밤이라도 사서 넣는데, 여기에는 안 어울릴 것 같아서 그냥 생략했다.
올케의 팁으로는, 닭의 목 부분과 끝 마무리 부분에 대추를 넣어서 구멍을 막아준다고 했는데, 그게 아주 요긴했다.
찹쌀과 녹두는 그냥 섞어서 넣었다. 세 숟가락 정도면 적당하다.
은행과 마늘을 넣은 다음, 마지막으로 다시 대추를 넣고, 허벅지에 칼집을 내어서, 다리를 꼬아 고정했다. 예전에는 실로 동여맸었는데, 올케의 방식으로 하니 간편했다
이제 이렇게 넣어서 끓이면 된다. 끓기 시작한 다음부터 40분~1시간 정도 끓이면 된다. 약간 살점이 흐드러지는 느낌이 들 때까지 푹 고아주면 좋다.
그리고 여기서 올케의 팁이 하나 더 있었는데, 닭다리를 같이 넣어서 끓이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닭이 많아서 깊은 맛이 나기도 하고, 혹시 모자란다 싶으면 더 먹으라고 할 수도 있으니 좋다는 것이었다. 이거 아주 좋았다.
찹쌀 남은 거에 대추랑 마늘, 은행도 함께 해서 면포에 넣고 같이 끓였다. 삼계탕의 찰밥은 언제나 맛있으니까, 모자랄 때를 대비해서 이렇게 준비하면 좋다.
약재 중에 좀 폼나는 것들은, 아까 국물 낼 때 안 쓰고 뒀다가 여기에 얹어줬다.
그래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모두들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곁들이로 쑥전도 해서 얹었는데, 바빠서 이건 사진도 못 찍었다. 우리 식구들은 다들 쑥을 좋아해서, 쑥전도 잘 먹고, 디저트의 쑥도 맛있게 먹었다.
닭은 정말 맛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살이 연할 수 있느냐고 다들 감탄했다. 안에 들은 대추도 맛있다고 먹었고 (안에 씨가 있으니 주의하라고 미리 이야기해 줬다), 찰밥도 딱 잘 익어서 좋았다.
막내며느리는 자기가 평생 먹어본 치킨 수프 중에서 가장 팬시한 수프라고 말했다.
서양에서의 치킨 수프는, 그야말로 막 끓이는 수프다. 집에 남아있는 야채 되는대로 넣고, 치킨스톡으로 끓이면, 추운 날에 엄마가 끓여주는 손맛의 수프이기에 럭셔리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에 비해서 삼계탕은 정말 근사하지 않은가? 우리에게도 별식이니까 말이다.
위에 얹은 고명은, 달걀지단과, 표고, 빨간 피망, 파송송이었는데, 색도 딱 좋았다
옛날에 영화 동막골에서 이장이 했던 말이 종종 생각난다.
마을의 화합은 "뭘 믹이야지~"라고 말하는 이장님의 음식 먹이기가 비결이었다. 함께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데에 아주 큰 역할을 한다.
온 식구가 앉아서, 우리는 또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꾸준히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데, 다음에는 또 뭘 소개하게 될지... 아직 안 보여준 것은 무엇인지... 또 어느 날, 아이디어가 번쩍 나오겠지?
마지막으로 팁을 하나 얹자면...
만일 삼계탕 손 많이 가서 안 하게 된다면, 그저 삼계탕 패키지 1개 사고, 닭다리 한 봉 사서 끓여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찹쌀도 뱃속에 넣는 대신 주머니에 넣어서 함께 끓이면 정말 거의 손 갈 일 없이 삼계탕 맛을 즐길 수 있으니 가끔 한 번씩 즐기시라 추천한다
8인분 기준
국물재료 :
삼계탕 패키지 약재 2 봉지
통마늘 반 잘라 1개
양파 반 잘라 1개
대추 2개
표고버섯 2개
통후추
생강
녹두를 씻어서 주머니에 넣어서 함께 끓여도 좋다
취향에 따라 견과류를 갈아서 넣으면 고소하다
닭과 속재료 :
영계, 대략 500~800g 정도로 준비한다
찹쌀 1 1/2 컵, 1시간 불린다
녹두 3/4컵, 3시간 불린다
대추 1인당 2개
은행 1인당 2~3개 (없으면 생략)
마늘 1인당 1~2개
밤 1개 (없으면 생략)
고명은 달걀지단채, 대파 송송, 붉은 고추 준비한다
만들기 :
1. 국물 1시간 정도 내고, 건더기는 건져 버린다.
2. 표고만 남겨서 채 썰어 고명으로 활용가능하다
3. 닭은 지방 잘라내고, 날개 끝 자르고, 내장도 깨끗하게 씻는다
4. 닭 속에 대추 넣어서 목구멍을 막고, 쌀과 녹두 합쳐서 3숟가락, 은행과 마늘 넣고 다시 대추 넣어 다리 오므린다.
5. 다리는 실로 묶어도 되고, 한쪽에 칼집을 내어 꼬아서 고정해도 좋다
6. 육수에 모두 넣고 끓인다.
7. 남은 쌀은 다른 속재료와 함께 면포에 넣어서 같이 익힌다.
8. 한 시간 정도 끓인다. 다리살이 좀 드러날 때까지 끓이면 된다
* 육수 남은 것으로 나중에 밥 하거나 찌개 끓이면 맛있다
* 더 진한 맛을 내려면 닭다리를 함께 넣고 끓인다
자세한 장면은 유튜브에 있으니 거기서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