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에 추억을 담으며...
서양에서는 가장 큰 행사인 크리스마스. 일찌감치부터 준비가 바쁜 것이 보통인데, 나는 이번에 신경 쓸 일이 있어서 준비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와 딸내미, 형제자매에게 그냥 재미 삼아 열어볼 수 있는 선물을 보내고, 뒤늦게 허둥지둥 준비를 했다.
남편은 원래 자식들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와서 저녁을 먹고 하루 자고 가기 때문에 트리를 보통 이브 전날쯤 사다 놓고 애들이 와서 꾸미게 했었는데, 이번에는 나도 함께 보내니 좀 일찍 트리를 사보자고 했다. 그래서 열흘 전 일요일에 크리스마스 선물 사러 다니면서 트리도 구경을 좀 했다.
세 군데를 갔는데, 처음에는 가장 만만한 수퍼스토어... 우리가 애용하는 큰 슈퍼마켓이었다. $45 붙어있는데, 흠... 싼 건가? 장도 보긴 해야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단 돌아섰다. 하지만 꼭 사야 하는 것이 있어서 동네에 있는 Safeway 슈퍼마켓에 갔다. 여기는 훨씬 규모가 작고 사실 가격이 전체적으로 좀 더 비싸서 평소에 많이 애용하지는 않는 곳이었는데, 문 앞에 트리를 진열해놓고 $39.99 가 붙어있었다. 좀 더 싸네. 샘플도 있었는데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냥 살까 하다가 일단 원래 사던 곳에도 가보자고 하고 발길을 옮겼다.
Art Knapps라는 가게인데, 화초들과 크리스마스트리들을 판매하는 정식 가게이다. 트리는 하나씩 다 따로 서있어서 소비자가 원하는 모양과 크기를 실제 보면서 고를 수 있고, 하나를 찍으면 둘둘 말아서 가져갈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가 이루어진다. 물론 가격은 그만큼 비싸다. 아직 열흘이나 남아서인지 이미 좀 떨어진 가격이지만 평균 $130이었다. 힉! 3배네. 남편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사니까 훨씬 저렴하게 사곤 했었다지만, 우리는 지금 둘이 살면서 이 가격을 주고 이런 럭셔리한 트리를 사야 할 이유는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날이 이미 저물었기에 집으로 향했다. 어떤 것을 사야 할지는 이미 마음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틀 후에, 트리를 사러 Safeway에 갔는데, 두둥! 이틀 사이로 가격이 대폭 인하된 것이었다. $9.99! 사실 인조 트리도 아니고 실제 나무 트리를 겅둥 잘라서 파는 이것들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그야말로 쓰레기밖에 되지 않으니 가게 입장에서는 빨리 팔아서 없애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그래서 가능성 있을 때 떨이로 처리하는데 우리가 운 좋게 타이밍이 맞은 것이다.
둘둘 말려있어서 고르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중 부피감이 있고 무겁고 키가 큰 놈으로 골랐다. 집으로 데려오자마자 설치를 시작했다. 이미 집안에 향기가 가득했다. 진짜 나무이긴 하지만 뿌리가 없이 잘렸기 때문에 살아있는 나무라고 하기에는 곤란하다. 그렇지만 아직 죽은 것은 아니니 물을 줘야 한다. 마치 화병에 꽃을 꽂듯이 물이 필요하다. 하지만 물통에 그냥 담으면 쓰러지니 단디 세워야 한다. 전용 도구가 따로 있다.
바닥에 십자가 모양의 받침대를 단단히 박아주고 화분에 세운 뒤 나사를 조여서 쓰러지지 않게 해 준다. 그리고 물을 담아주면 일단 설치는 완료. 나무 끝이 살짝 천장을 건드릴 듯 말듯한 크기였다. 남편 말로는, 아트 냅스에서 샀던 트리는 이 화분에 꽉 찰만큼 나무 기둥이 튼실했단다.
그러고 나서는 묶인 부분을 풀어주고 가지를 다듬어주면 완료이다. 물을 담다가 쏟을 것에 대비해서 바닥에 비닐을 깔아주었고, 남은 부스러기들은 청소기로 말끔해 정리해주면 트리 장식 준비 완료이다. 아래쪽 보기 흉한 부분은 트리 스커트로 덮어줄 것이라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선물들이 속속 도착했다. 별로 신경을 못 써서 보내서 내년엔 반드시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크리스마스를 닷새 앞두고 장식을 걸었다. 원래 남편이 가지고 있던 장식들과 내가 들고 온 몇 개 안 되는 장식들... 하나하나에 모두 사연이 담겨있어서, 하나씩 걸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신나게 장식하기보다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는 행사가 되어버렸다.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그간 살아오면서 만났던 작은 선행들, 떠나간 가족들... 그리고 나는 나의 어린 시절, 트리는 그림책에나 나오는 이야기이던 시절부터 딸내미와 트리를 꾸미게 되기 시작하면서 있었던 일들... 크리스마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같이 보내자고 딸과 약속했지만 또 그 약속을 못 지키게 되었다는 사실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파서 또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지나고 가서 신년맞이는 같이 할 거니까 청승 그만 떨고 조금만 더 기다려야지. 딸아 좀만 더 버텨줘.
그리고 오늘 크리스마스이브까지 분주하기 그지없다. 어젯밤에는 늦게까지 크리스마스 양말을 만들었다. 산타의 선물을 받을 양말을 딸내미 것까지 걸어줬다. 원래 남편의 자식들도 함께 했었는데, 올해는 졸업을 하겠다고 해서 딸아이 것만 걸어줬다. 그리고 딸에게서 온 것도 한쪽에 세워뒀다. 이제 준비 완료다.
이제 정리 마무리하고, 저녁 먹고, 남편과 오붓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면 될듯싶다.
야심차게 시작한 브런치, 이번 가을에 구멍 숭숭 냈지만, 그래도 다시 잘해보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