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08. 2020

아듀 2019

좋았던 것들을 기억하자

송년을 보내러 딸네 집에 왔다. 딸이 요새 좀 아파서 내가 걱정이 많다. 크리스마스도 같이 못 보내주었는데 아이가 앓게 되는 바람에 내가 많이 속이 상했다. 결국은 예정했던 28일보다 이틀이나 당겨서 급행료 잔뜩 내고 급히 날아왔다. 


가을에 지갑을 잃어버리면서 워크퍼밋을 분실해서 해외로 나가지도 못하고, 대학원 준비를 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로 할 게 많다 보니 건강도 못 챙기고, 마음도 쓸쓸하고... 다 컸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다른 애들보다 대학도 일찍 갔고 아직 어린애인데, 마음 쉼이 제대로 안 되다 보니 크리스마스 내내 앓으면서 엄마 걱정할까 봐 연락도 안 하는 바람에 무슨 일 났을까 봐 어찌나 걱정을 했는지! 부모 되어야만 아는 일인 듯.


도착해서 쾡한 딸아이 얼굴을 보니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다. 어려운 일들 잘 이겨내고 늘 씩씩했는데, 역시 혼자 지내는 외로움은 사람을 참 지치게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엄마 왔다고 기운 내서 다음 날은 출근도 하고, 같이 꼬마 크리스마스트리도 만들었다. 비록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말이다. 선물로 보내준 우쿨렐레 들고는 노래도 해주고...


꼬맹이 햄스터 헤이즐넛도 소개해줬다. 혼자 지내기 적적하니 동물 한 마리 키워보면 어떻겠느냐 넌지시 물었더니 그날로 바로 가서 구입해온 녀석이다. 가게에서 가장 착한 애로 골라달라 했더니 이 까만 녀석을 꺼내 주길래, "음, 너무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는데 손에 올라와서 딱 안기는 녀석을 보니 짠한 마음이 들었단다. 까만색이 너무 쥐 같아서 어린애들에게는 인기가 없겠구나 싶으니 내가 데려와야겠다 싶었다고.


그리고 연말연시를 함께 보내기 위해서 남편도 31일에 도착했다. 히터가 안 되어서 아침부터 고치러 오는 바람에 늦을 뻔했지만,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공항에서 렌터카로 픽업해서 함께 바닷가 와서 점심 먹고, 거닐면서 대화를 나눴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이를 위해 채웠던 크리스마스 양말을 풀었고, 하나씩 꺼내며 아이는 재미있어했다. 물질적 선물로 크게 기쁨을 얻는 아이는 아니지만, 자기를 이렇게 사랑해주고, 생각하면서 준비해주는 것에 고마워하고 또 미안해했다.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남편이 끓여준 연어 차우더와 내가 구운 참치 스테이크를 먹는데 왜 이렇게 배가 부른 것인지... 그렇게 먹고 자정이 되기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었다. 올 한 해, 뭐 하며 보냈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몰려왔다.


2019년에 한 일들

결혼 : 우째 이런 일이!!

대가족이 됨 : 나는 달랑 딸 하나인데, 저쪽은 딸 하나 아들 둘

진짜 눈으로 팥빙수를 만들어 먹어봄 : 캐나다 눈이 깨끗하다고 해서 시도했는데 진짜 맛있었음

티셔츠를 맞춤 : 결혼 축하 티셔츠를 만들어서 온 가족이 나눠 입음

딸 생일에 맞춰 축하하러 학교 방문 : 맨날 멀리서 그리워만 하다가, 가까워진 핑계로 날아감

딸 대학 졸업식 : 감개무량

캐나다 영주권 신청 및 취득 : 일 년 안에 안 될 줄 알았는데, 7개월 만에 취득

사방에 흩어진 가족들을 모아서 결혼 축하연을 함 : 대가족이 다 우리 집에 머물면서 완전 난리

유럽 신혼여행 : 무모한 남편의 지름신 덕분에 질러버림, 아름다운 경험이었음

파리 시청 앞에서의 Robert Doisneau의 키스 버켓리스트를 채움 : 20대때 사진 보고 탐내던 것 실천

여자가 됨 : 쭉 남자인 줄 알고 살았는데, 내 안에 여자가 있음을 발견!

내가 애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됨 :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일!

밤배를 타고 시칠리아로 넘어가며 일몰과 일출을 모두 봄: 크루즈 여행은 아니었지만, 밤새 배 타고 이동이 낭만적이었음

비키니 입고 바닷가에서 일광욕을 함 : 한국 같으면 꿈도 못 꿀 주책을 부림

브런치 작가가 됨 : 어렵다던데 운이 좋았는지 단번에 됨 

북클럽 강의 다시 시작 : 그만두려고 했는데, 좀 더 해달라는 꼬임에 넘어가서 가을 내 바쁨

결혼이 끝이 아니고 아름다운 시작임을 알게 됨: 죽으러 들어가는 길인 줄 알았는데 왜 또 했을꼬?

비행기를 1년 동안 14회 탑승 : 방사능 수치 걱정해야 할까?

할로윈 분장을 하고 사탕을 나눠줌 : 이거 꼭 해보고 싶었는데, 진짜 재미있었음

자동차에 루돌프 코와 뿔을 달아봄: 이것도 맨날 부러워만 하다가 진짜 해봄

아픔도 기쁨도 함께 느끼는 삶을 살게 됨 : 모든 일이 만사형통은 아니지만, 그 모든 것들이 혼자가 아니어서 감사하다는 것을 늘 느끼게 됨.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적어본 것들이다. 처음 경험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신기한 새 삶이 시작되었다. 힘든 일도 여전히 있지만 늘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야지, 내년 이맘때에는 또 뭘 쓰는지 모르지만.


글 쓰다가 자정이 가까워오자 밖으로 나가자고 남편이 말했다. 딸네 아파트 사람들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지만, 이렇게 불쑥 밖으로 나가니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고, 사방에서 개인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제법 근사한 것들도 있고, 머리 위에 터져서 정신없는 기분도 들고... 


시계 보면서 카운트다운해서 "해피 뉴 이어" 외치고, 서로 안아주고 불꽃놀이 보다가 들어왔다. 그리고 남편이 내밀은 새해 선물... 예쁜 진주 목걸이었다. 

늘 나보다 한 발 앞서서 생각하고 고민해서 이벤트 만들어주는 다정한 남편, 나는 아무 준비 못했다고 했다가 이마에 플릭(flick) 받았다. 난 감사히 받고 즐기는걸로!


새해는 어떤 해가 될까?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을 안고 맞이해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크리스마스 그 뒷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