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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06. 2020

인생은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다

내 덕도 아니야, 내 탓도 아니야

그렇다.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가 흔히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인생을 겪다 보면, 실제 인생은 드라마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멜로 드라마이든, 막장 드라마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놀랄 만큼...


내가 남편을 만나게 된 경위를 보아도, 세상에 이렇게 억지로 짜 맞춘 드라마는 없을 만큼 신기하게 모든 일들이 착착 맞아떨어졌고, 너무나 순조롭게 결혼이 이루어지기까지 이것은 한 편의 하이틴 로맨스가 아닐까 싶은 상황들이 계속 펼쳐졌다. 본인들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과거에서부터의 복선들까지 사실은 내가 영화 속에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착각까지 들게 했으니까.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세상은 역시 내가 노력하는 만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겸허한 마음을 더욱 가지게 되었다. 물론 많은 일들이 내 노력 여하에 달렸고, 그래서 세상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노오력'을 요구하지만, 그 노오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운이라는 것이 작용한다는 것,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일이 잘 되어도 자만하지 말고, 안 된다고 해서 스스로를 자학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는 그가 언급했던 만 시간의 법칙(The 10,000 Hours Rule)이라는 말로도 유명하다. 무엇이든 노력해서 성공하려면 만 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 시간은 하루 3시간씩 투자할 때, 10년이 걸린다. 콜로라도 심리학자 에릭 엔더슨이 1993년 논문을 통해, 세계적인 바이얼리니스트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연습시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고, 이 내용을 글래드웰이 언급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지만, 사실 그가 자신의 저서에서 주장한 내용은 그게 포인트가 아니었다. 만 시간의 법칙은 여러 가지 성공요인들 중 하나였으며, 그중에는 똑똑함과 성실함이 분명히 있지만, 거기에 운과 기질과 그 밖의 여러 인자들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똑똑하지만 안타깝게도 빛을 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보다 공평한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의도도 함께 어필하고 있다.


그렇다, 성공을 위해서는 재능도 필요하고,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에 얹어지는 운이라는 것, 그것은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무언가 이다. 종교가 있다면 신의 뜻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무신론자여도 어쩔 수 없는 힘에 끌려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순간이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호박이 덩굴채 굴러 떨어지는 일도 있다.


전남편과 이혼하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가진 문제가 무엇일까를 정말 많이 고민했다. 왜 나는 그와 순탄하게 지낼 수 없을까?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시도도 많이 하였다. 한국에서의 이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법적 절차도 복잡하거니와 사회적인 인식 또한 그렇다. 그리고 자식 문제도 걸리고... 같이 살기 진짜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몇 년간 계속 같은 루틴을 반복하면서 무의미한 동거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시름시름 아팠다. 가슴속에 큰 덩어리가 들어앉은 것 같았고, 수면의 질이 너무 떨어졌으며, 늘 피곤했고, 잔병치례를 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관리를 해도 몸은 좋아지지 않았고, 막판에는 감기가 걸렸는데 떨어지지 않고 기침을 계속하고 있었으며, 기침 몇 번에 갈비뼈가 부러진 듯 심한 가슴 통증이 와서 한 달이 가도록 가시지 않았다. 결국 이혼하자는 얘기를 꺼냈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나자 그날 밤, 나는 정말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해방이었다. 전남편에게서의 해방이 아니라 힘겨운 날들에게서의 해방이었다.


이혼의 사유는, 서로 노력하고 있지만 원하는 것이 너무 다르고 고통스러운데, 오십이 넘은 나이가 되었어도 여전히 살 날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것, 그래서 나머지 인생은 좀 편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문제의 해결은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벗어나는 데에 있었다. 오랜 시간 매일같이 노력해도 되지 않던 일들이 한순간에 풀려버린 기분이었다. 물론 산재한 일들이 남아있었다. 얼마 있지도 않던 재산은 토막이 나버렸고, 집을 빼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도 쉽지 않았다. 고민거리는 여전히 많았으나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고통을 주는 원인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몸에 박혀있던 가시가 빠져 버렸기 때문에, 여전히 치유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상처는 치유하면 되니까.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 이혼 얘기를 하거나, 전남편을 흉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몇 개의 인터넷 카페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말 한마디에 굶주려있고 지쳐있다는 것이었다. 판단하고 지적하고 충고하지 않는 짧은 몇 줄의 격려글로도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있었다. 상담사 자격증 비슷한 것도 있지 않은 내게 늘 이것저것 상담을 요청하는 쪽지를 보내오곤 했고, 나는 답변을 해주면서 그들과 소통할 길을 찾고 있었다.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픈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힘듦에 공감해주고, 그들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통로가 무엇인지는 잘 몰랐다. 아니, 아직 잘 모르지만 나는 또다시 시도를 시작해본다.


세상은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강자도 존재하고 약자도 존재한다. 테이커(taker)도 존재하고 기버(giver)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낀 매쳐(matcher)는 더욱 많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자꾸 횡설수설 여러 가지를 펼쳐놓게 되니 일단은 여기서 시작하는 말을 마무리하고, 다음 편부터 연재를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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