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기’를 어떻게 대할 수 있는가
한때 세상의 주목을 끌었던 유려한 거상巨像이 세월의 흐름에 녹슬지 않고 여전한 위용으로 서있다.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치켜든 손가락의 섬세한 곡선이며 온화한 눈의 광채가 뚜렷하다. 태양은 거상의 머리 뒤에 가려 타오르는 광환만 남기고, 거상의 단호한 그림자는 남자를 어둡게 짓누른다. 가려진 태양을 되찾기 위해 남자는 거상으로부터 멀어지려 달린다. 무성한 수풀과 우거진 관목을 헤쳐 숨을 헐떡이며 나아간다. 정신없이 달린 후 그는 거상에게서 벗어났으리라 생각하고 기대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시선은 거상에 가 닿고 남자는 여전히 거대한 그림자의 무게에 압도 당해 다시 걸음을 옮길 힘을 잃는다. 시간이 지나고 겨우 발을 떼며 멀어지려는 몸짓을 계속한다. 그는 무한히 이어지는 듯한 좌절의 질주를 계속한다...
초등학생 때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읽은 기억이 난다. 쥘 베른의 해저2만리였다. 스토리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긴박감 넘치는 분위기와 심해의 무거운 느낌은 그 책을 읽었을 때를 떠올리게 한다. 해저2만리를 비롯하여 다양한 수학·과학책, 파브르 곤충기와 그림동화 등 초등학생 때는 곧잘 책을 읽었던 것 같지만, 중고등학생 때는 밤새우며 읽었던 반지의 제왕을 제외하면 딱히 기억에 남는 책이 없다.
독서를 다시 시작한 것은 대학생 때 보르헤스의 ‘불한당들의 세계사’를 통해서였다. 한가한 여름날 오후였다.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하나의 세계를 온전히 녹여낸 글. 나는 이해하지 못한 문장에 매료되었고 그가 가진 지식과 세상을 이해하는 시야의 한없는 경계를 동경하게 되었다. 보르헤스를 기점으로 그가 언급한 수많은 작가들, 에드거 앨런 포, 잭 런던, 너새니얼 호손, 체스터턴, 드 퀸시, 비오이 카사레스 등을 알게 되었고, 내가 품은 동경의 간극을 메우고자 위대한 작가들에게, 전혀 쇠락하지 않은 거상의 위용에 빠져 들었다.
읽기 위한 대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쓰기 위한 대상으로 책을 바라보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여러 작가들을 읽을수록 글을 써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갔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고 생각을 독창적으로 다듬어 우아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첫 소설을 썼고 작은 공모전에 제출했다. 당선이 될 거라고 기대했던 글은 평이한 이야기와 과도한 묘사, 타인의 시각으로 기워낸 주제로 얼룩진 글이었다. 납득하지 못했던 공모전 결과는 시간이 지난 후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나는 더 열심히 읽고 구상하고 썼다.
그러나 실패의 역사가 기록되고 있었다. ‘내가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실패를 정의하면, 실패는 대외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대내적 측면에서도 이어졌다. 짬짬이 쓴 소설은 공모전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내 손으로 되돌아왔고, 제출 전에는 만족스러웠던 문장이 제출 후에는 거상의 그림자에 가려 읽고 싶지 않은 문장이 되었다. 해가 지나도 글은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고, 거듭된 낙방은 글을 쓸 재능이 없는 사람이 무용하게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을 사실이라고 증명하는 듯했다. 번번이 의욕은 꺾였고 작가들의 글과 끊임없이 비교를 하며 한탄했지만 나는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읽기와 시간적 균형을 이뤘던 ‘쓰기’는 점점 실패의 밀물에 밀려 자취를 감추어 갔다. 작가들을 더 공부해야 한다는 이유로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책을 읽었다. 그러는 동안 글을 쓰는 시간은 점점 줄어갔다. 머리로는 쓰는 행위가 읽는 행위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대로 손을 부릴 수 없었던 것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조급함, 읽은 글과 끝없이 비교되는 나의 문장과 한정된 사유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실패를 대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쓰기 행위는 온전히 공모전의 결과와만 결부되어 있었다.
읽을 때는 즐거웠다. 내가 결코 떠올리지 못한 생각과 풀어내지 못한 묘사는 나를 읽는 행위로 몰아갔다. 쓸 때도 즐거웠다. 하지만 읽을 때의 즐거움과는 다른 즐거움이었다. 읽을 때의 즐거움이 순수한 지적 탐구와 연결된 그 자체로 완전한 즐거움이라면, 쓸 때의 즐거움은 거상의 그림자에 짓눌려 그 무게를 버티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갈 때 - 내가 어렵게 느끼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 느끼는 감정, 자기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으로부터 오는 고단한 즐거움이었다. 성격이 다른 즐거움이 나를 읽기라는 도피처로 이끌었다. 나는 내 글의 부족함을 알고 있었고 실패로 이어지는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쓰기를 외면했다.
어떻게 도피처로부터 나와 내 글을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는가? 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내가 읽고 배운 사람들만큼 잘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되었고 이 강박관념은 실패와, 그리고 실패는 성공과 관련이 있었다. 성공-사회적 인정이라는 결과-를 위해서는 실패가 용납되지 않았고, 실패하지 않으려면 잘 써야 하는데, 잘 쓰지 못하니까 두려워하고 피하는 것이었다. 실패와 두려움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했다.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무엇이 나에게 부단히 공부하고 쓰라고 말하는가? 미셸 푸코는 ‘쾌락의 활용’ 서문에서 말했다. “... 그토록 끈질기게 작업에 몰두했던 나의 수고는-단지 호기심, 그렇다. 일종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가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허용해 주는 그러한 호기심이다.” (미셸 푸코, 디디에 에리봉 저, 그린비, [9장_예술작품으로서의 인생]에서 발췌)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것은 부족한 나의 모습을 끊임없이 자각하고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었다. 지금은 거상에 가려진 태양만을 볼 수 있더라도 언젠가는 직접 태양을 보고 싶다는 마음, 거상에 가려진 그림자가 아닌 온전한 나의 그림자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는 변화를 원했다.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성공과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아무 질문도 던지지 못하는 자신, 항상 같은 것만 보고 같은 생각만 하는 자신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각이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좁은 세계에 갇혀 똑같은 세상을 살아나가는 게 싫었고 그래서 끝없이 배워야 하고 사유를 다듬기 위한 일환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쓰기라는 것은 언어의 한계 내에서 더 명확하게 표현하려는 노력, 글이라는 형태로 구체화하는 과정 안에서 묻혀 있던 생각의 발굴, 더 나은-더 열린- 가능성의 모색이라는 면에서 사유를 가다듬고 변화를 그려내는 행위가 아닌가. 위대한 작가들에게서 배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만들고 나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게 본질적인 목표였다. 결과에 연연했던 모습은 깊은 내면의 갈망보다는 피상적인 갈망을 투영한 것이었다.
정의부터 다시 내려야 했다. 결과에 초점을 둔 실패의 정의는 내게 부차적인 것이었다.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변화시켜 나가지 못하는 과정이 실패의 모습이 되어야 했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정체停滯니까. 바란만큼 잘 쓰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쓰지 않으며 사유를 다듬어 나가지 못하는 모습 자체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공모전에서의 탈락은 다른 의미에서의 실패일 뿐이고 과정으로서의 실패와는 아무 연관이 없었다. 변화를 포기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에서의 실패였다. 실패와 두려움은 이제 나의 성취를 재단하는 역할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때때로 나를 비추어 볼 수 있는 투명한 거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배우고 생각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내 기본적인 상태로 정의했다. 성공은 분리되었다.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성공과 실패는 강물 바닥에 오랫동안 잠겨 있다 필요한 날 떠오를 것이다.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차분하게 흐르다 어느 순간 변화의 흐름이 멈추는 날도 오겠지만 고여서 썩은 냄새를 풍기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 두렵다면 삶의 과정은 다시 흐를 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이 기존의 잘 써야 한다는 강박과 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정말 약화시키고 전환시켜줄까? 생각을 떠올리게 된 과정 자체가 하나의 변화였다. 변화된 생각으로 지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실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