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혀가 마비되고 속이 얼얼해질 정도로 자극적인 매운 음식을 먹으며 해소한다. 떡볶이나 마라탕처럼 혓바닥의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매워서 온 신경이 혀의 고통에 집중되는 희열을 즐겼다. 음식을 먹은 후에 몸의 나쁜 노폐물을 배출하며 몸 안에 쌓인 더러운 감정과 생각들을 모두 비워냈다.
주차해야 하는데 자리가 없어 빙글빙글 하염없이 빈 곳을 찾아다니느라 진이 빠졌다.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의 소식에 나의 작은 회사가 초라해 보였다. 일은 하지 않고 월급은 많이 받는 낙하산 대머리 부장의 머리를 쾅 쥐어박고 싶었다. 인스타그램에 명품 백을 샀다고 올린 친구의 스토리를 보고 나의 몇 개월 월급으로 살 수 있나 계산해보며 괜히 심술이 났다. 수많은 순간의 자극은 나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코로나 이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간접적으로 받는 자극들이 많아졌다.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를 찾는 범죄 드라마, 이유 없이 약한 사람을 때리는 폭력적인 영화, 돈을 위해 내가 아닌 남을 죽이려는 소재들은 극단적인 연기와 설정으로 날카로운 화살들을 뿜어냈다. 이런 짜릿한 이야기들이 나의 감정을 마구 찔렀다. 내 피부도 아파지는 기분, 경찰을 피해 도망가는 초조함,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처럼 짧은 시간 동안 인생에 한 번 겪어볼까 말까 하는 일들을 경험했다.
현실에 존재하기 힘든 만들어진 상황에서 받는 자극들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세상을 느껴보고자 했는데 결국 독이 되었다. 순환해야 하는 감정들은 과도한 자극으로 꽉 막혀버렸다. 기쁨과 슬픔은 도를 넘어 감정을 헤아리는 감각이 이제는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고장이 나 버렸다. 자극을 곧이곧대로 받지 않고 적당한 필터링을 거쳐 무해한 자극만 흡수하고 싶다.
자극을 네모난 가나 초콜릿이라 상상한다면 칼로 원하는 크기만큼 네모 모양으로 잘라서 정직한 달콤함의 자극만 맛보고 싶은데 그건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