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표정 좀 그렇게 하지 마"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왜?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 사실 내 표정을 거울로 보기 전까지 표정이 남에게 무례한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내가 나를 보니 잔뜩 찌푸린 얼굴과 불만이 가득해 심술이 난 콧구멍 그리고 이마에는 지렁이들이 기어 다녔다. 또 행복할 때는 송곳니가 드러나게 입을 벌려 웃으며 눈은 반달 눈이 돼서 흰자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해맑게 웃었다. 내 얼굴에는 항상 화남과 기쁨의 증거가 말보다는 표정으로 표현됐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잘못 나왔거나 공공장소에서 새치기를 당하면 말보다 먼저 눈썹을 세우며 표정과 눈빛으로 상대에게 '당신이 지금 잘못됐어요'를 알려줬다. 그럴 때면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은 나에게 표정을 보고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 수 있다며 표정을 숨기라고 했다.
또 내가 당했던 억울했던 일이나 너무나 기뻤던 일의 상황을 묘사할 때는 거침없이 그때의 표정을 재현했다. 코로나가 생기고 마스크를 쓰면서 얼굴의 반을 가리고 다니다 보니 내 표정을 의도치 않게 숨기게 되었다. 웃기면 치아를 다 드러내고 웃어야 하고 화가 나면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한숨을 쉬어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을 못 한다니 너무나 아쉬웠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 표정 짓기였다. 온갖 감정이 꾸밈없이 솔직하게 표현되는 것이 표정이었다.
그런데 회사에 다니다 보니 웃어야 할 때 울어야 하고 울어야 할 때 웃어야 할 일처럼 나의 진실한 감정과 다르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하더라. 상황에 맞춰 옷을 입듯이 표정도 눈치를 봐야 했던 사실을 몰랐었다.
아, 마스크를 쓰고 찾은 유일한 장점은 '시x'과 같은 말을 속삭여도 마스크로 가릴 수 있어서 표정보다 더 활동적인 분노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스크를 벗게 되면 버릇처럼 속삭이던 입 모양을 숨길 수 없어서 괴로울 텐데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