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by 라다

단호한 말을 잘 내뱉는 사람이라 결정도 고민 없이 잘 해낼 것이라 믿어왔다.

"파란색은 싫어, 피망은 싫어, 딸기는 좋아, 추운 것이 좋아."


어떤 취향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했기에 결정도 깔끔하게 해낼 줄 알았다. 하지만 사회에서 요구한 결정들은 좋음과 싫은 것으로 나눌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고민과 생각이 많아 10년 뒤의 걱정까지 사서 하는 성격이라 선택의 순간에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때 그런 선택을 했던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을 만들어달라며 어딘가의 유능한 과학자들에게 나의 진심을 보냈다.

24살, 10개월의 해외 인턴과 정규직의 취업 사이에서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늘 꿈꾸던 해외 살이 의기 회가 왔는데 쉽게 가야겠다는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다시 잡지 못할 기회를 잡아봤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생활은 겪어보지 못했던 고통의 연속이었다.



가족과 친구가 없이 낯선 땅에서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또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하는 ‘나’를 탄생시키는 거대한 일이었다. 쉽게 살 수 없는 돼지고기와 맥주를 찾아 5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걸었다. 동전이 없고 카드 결제가 안 돼서 백과사전처럼 무거운 지갑을 들고 다녀야 했다. 지하철을 타려면 내 가방에 총과 같은 무기가 없는지 보여줘야 했다. 시간이 지나고 한국에 돌아갈 때쯤 나는 이 모든 것에 적응해 버렸다. 또 우즈베키스탄과 인연으로 현재 회사에 취업했다. 후회 없는 선택은 없어도 결정에 대한 만족스러운 결과는 만들어내기 나름이었다.


많은 선택 중에 결정한 방향은 비단길처럼 부드러운 길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이미 가기로 한 길을 가면서 만나게 되는 바람, 비, 안개를 극복하는 것이 틀린 시련은 아니었다. 다른 선택을 했어도 이런 극복은 필요했을 테니까. 산의 정상이 아름다운 곳인지 화산이 폭발할 곳인지는 직접 올라가 봐야 아는 선택의 결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