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by 라다

서랍장에는 상자들이 있다. 친구들에게 받은 쪽지부터 영화를 보면서 모았던 표와 포스터, 잡지에서 오렸던 마음을 울리는 글귀들을 상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또, 일기장에 적힌 담임 선생님의 코멘트가 소중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쓴 일기장들도 버리지 못했다. 정리가 진작 돼야 했던 존재들을 여태껏 갖고 있다. 평소에도 방 청소와 빨래, 설거지를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버린다. 들고 다니는 가방 속에는 오래 머물러 잉크가 지워진 영수증, 길거리에서 받은 광고지, 출근길에 마스크를 쓰고 남은 포장지들이 있다.


또 다른 가방을 열어보니 언제 샀는지 모르는 립밤과 핸드크림이 고스란히 머물러있었다. 단순히 정리하지 못하는 귀찮음의 결과일까, 소유했던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미련일까. 내 곁에 머무는 물건들이 꼬인 이어폰 줄처럼 풀리지 못해 보이지 않는 끈으로 나와 엮인 것 같다.

내 마음에는 여러 방이 있는데 행복의 방, 슬픔의 방처럼 감정과 기분에 따라 기억을 간직한다. 어떤 것들은 분류가 되지 않아 둥둥 떠다닌다. 감정도 소속이 있는데 도무지 자신이 머무를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그런 내 마음처럼 버려져야 하는 물건들이 제 소속을 찾지 못해 방치돼있다. 정리하면 말끔해질 텐데 마치 종이, 플라스틱, 캔, 유리처럼 뚜렷하게 분리수거가 되지 않는 쓰레기들을 모아둔 것처럼 애매한 마음들이 뭉쳐있다.


하루는 날을 잡고 방 청소를 하다가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야자 1교시 끝나고 매점에서 피자 빵 먹자' 솔직히 누구의 글씨인지 기억도 안 났다. 다만 공부에 지쳐 유일한 행복을 느꼈던 피자 빵의 맛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맛을 떠올리니 그 행복을 함께했던 친구도 생각났다. 희미해지던 추억이 글씨로 인해 되살아났다. 아마도 나는 미래에 문득 발견하게 되는 행복을 위해서 정리되지 못한 존재들을 계속 간직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잊고 있던 패딩 주머니 속의 만 원짜리처럼 우연히 발견하면 예상치 못한 기쁨을 얻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