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이 있다. 본인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 늘 비밀이 가득해서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늘 남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한다. 그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면 아주 간단하게 대답하고 대화를 끊어버린다. 반대로 나는 비밀이 없다. 늘 "이거 비밀인데…."라며 친구, 가족들에게 나의 비밀을 말한다. 비밀은 내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소문이 돼 버린다. 그런데도 내가 비밀을 말하는 이유는 이 비밀을 나 혼자 앓기에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 보통 비밀이라는 것은 너무 좋아서 나만 알고 싶어서 마음에 담아두는 것보다 알려지면 창피하거나 부끄러워서 마음속에 숨겨두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와 열쇠로 자물쇠를 걸어 잠그는 비밀 일기장을 썼다. 그 속에는 내가 경환이를 좋아하고, 현정이가 문구점에서 본드 풍선껌을 훔쳤다는 사실도 기록돼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 왔는데 나와 비밀 일기장을 돌려쓰던 지현이가 엉엉 울고 있었다. 왜 우냐고 했더니 사물함에 넣었던 비밀 일기장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비밀이 적혀있는 일기장이 없어져서 나는 이 세상이 끝날 것 같았다. 내 비밀이 세상에 알려져 모든 약점이 다 드러나 창피한 기분이었다.
민들레 홀씨를 꺾지 않고 내버려 두면 그 자리에 머무른다. 홀씨들은 바람에 날아가기 전에 내가 꺾어서 바람을 후후 불어버리면 먼저 흩어져 버린다. 내가 비밀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언젠가 이 세상에 드러나는 비밀들은 조금 더 오래 머물렀을 텐데. 머무르다 비밀이 흔적도 없이 그저 바람에 따라 자연스레 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왜 내 비밀을 온 세상에 날리려고 했을까? 날아다니는 나의 힘듦을 같이 불어 달라는 응원의 요청이었을까?
일기장은 절대 찾을 수 없었다. 그 누군가 일기장을 발견하고 우리의 비밀을 알고 행복했을까? 오히려 그 사람은 타인의 비밀을 알고 마음이 더 불편해졌을 거야. 가만히 있던 민들레를 꺾지 말고 그저 그곳에 비밀로 남겨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