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를 찍지 말고 물음표를 찍으세요.
2017년 대학교 4학년의 겨울방학 때 대학 연계 기관에서 체험형 실습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첫 사회생활을 하게 된 곳은 서울의 한 척추병원 외국인환자센터에서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책상을 부여받게 되었다. 러시아어를 전공했던 이유로 그 어떤 기관보다 배운 것을 써먹기에 좋다고 생각했던 기관이었다.
대학교에서 연계된 실습기관이라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있었다.
센터의 직원 중 한 분은 우리 대학 동문이었다.
또, 실습을 앞두고 과 선배들에게 수소문하며 정보를 얻다가 친하게 지냈던 선배 한 분도 이미 센터에서 인턴을 한 경험이 있어 선배님에게 여러 가지 꿀 정보들을 입수할 수 있었다.
그 센터에 아주 무서운 선생님이 한 분 있다는 것이다.
첫 출근을 한 날, 머리를 바짝 올려 묶고 하얀 셔츠와 검은색 니트를 겹쳐 입고 떨리는 마음으로 센터의 문을 두들겼다. 그리고 잠시 팀장님이 건네준 따뜻한 메밀차를 마시며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런데 통화를 마치고 온 팀장님께 나와 같은 날 출근을 하기로 했던 영어권 인턴이 실습에 참여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엄청난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 혼자 어떻게 버티지?"
"잘할 수 있을까, 혼자?"
"사회생활은 처음인데 혼자서 어떻게 적응하지?"
"말 한마디 하는 것이 두려운데 어떡하지?"
"무섭다고 한 선생님은 도대체 누구일까?"
인턴을 하면서 겪게 될 서러움과 애로사항을 함께 이겨낼 동기가 있음에 안도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내 곁에 없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움이 가득 찼다.
출근을 하고 팀장님과 다른 직원분들께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최신 의료 관광 동향을 조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환자분들이 오기 시작하면 간단한 안내를 하고 담당 선생님과 진료를 보기 전에 필요한 절차들을 진행하는 것을 도와줬다.
점심시간이 되면 입을 꾹 닫고 밥만 정말 열심히 먹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질문을 받아도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너무나 무서웠다. 상사들과 대화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힘든 걸까?
"라다쌤, 주말에 뭐 했어요?"
"그냥 쉬었어요."
"라다쌤, 밥 먹었어요?"
"네."
"라다쌤, 안피곤해요?"
"아니오."
나는 네, 아니오만 말하는 로봇이었다.
특히, 러시아어권 담당 선생님과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환자 병동으로 가는 시간이 끔찍하게 조용했다.
말주변이 없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그 조용한 정적을 어떻게 깨야할지?
매번 묻는 말에 대답만 하고 대화가 끊겨버리는 그 싸늘함을 누구보다 극복하고 싶었다.
외근을 나가는 날에 무서운 직원 한 분과 단 둘이 택시를 타고 이동할 일이 있었다.
"일은 좀 어때요? 할 만해요? 뭐 힘든 일은 없어요?"
업무가 많이 겹치지 않아서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던 상사라 질문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솔직하게 말주변이 없어 대화를 하는 것이 무섭다고 털어놓을까?
그냥 아무 일도 없다며 괜찮다고 말을 할까?
속으로 어떻게 대답을 할지 고민되었다.
"아니요. 다 좋아요."
아, 바보 멍청이다. 차라리 어떤 점이 조금 힘들다고 말을 할 걸.
그럼 해결책을 주지 않았을까? 아님 그 힘듦에 대해 사회생활의 선배로서 나에게 공감을 해 주지 않았을까?
엄청난 파도가 후회를 몰고 와 당황스러운 분위기를 몰아 덮쳤다.
"왜 그렇게 가식을 떨어요?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역시 나의 당황한 기색이 티가 났는지 비밀은 감출 수가 없었다.
왜 하필이면 이 선생님이랑 같이 외근을 나오게 된 것일까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솔직하게 처음 보는 사람과 낯을 가려서 먼저 말을 걸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사회에 나와 일을 하는 것이 처음이고 여러 상사들과 식사를 하면서 업무를 하면서 대화를 하게 될 때,
너무 긴장이 된다며 조용한 정적을 깨트리고 싶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말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주절주절, 어떻게 인턴을 하게 됐는지, 러시아어는 왜 배우기 시작했는지
숨도 쉬지 않고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재밌는 사람인지 몰랐네, 왜 그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었어요?"
"앞으로 얘기 좀 많이 해줘요."
"너무 긴장하지 마요. 어려운 사람들이 아니니까. 무슨 말이든 우리는 다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어요.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요. 선생님들도 다 사람이에요. 그냥 뭐든 다 물어봐요. 사소한 것이라도요."
택시 사건 이후로 같이 일하는 직원분들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들어봤다.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인턴"이라고 한 적이 없다.
"라다쌤"이라며 항상 나에게 선생님이라 불렀고, 직원분들도 서로 "ㅇㅇ선생님"이라며 서로를 선생님이라 칭했다.
그리고 항상 질문을 서로 많이 했다.
주말에 뭐 했는지, 요즘 재밌게 본 영화는 뭔지, 구내식당에서 맛있는 반찬이 뭔지, 어떤 나라에서 환자가 오는지, 날씨가 어떤지
정말 사소한 것에도 서로에게 질문을 하면서 끊임없이 하하호호 웃으며 대화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는 뭐가 그렇게 겁이 났을까?
왜 그렇게 웃음이 넘치는 대화 속에서 끼지 못하고 늘 인사만 하고 뒤돌았을까?
왜 무섭다는 소문만 듣고 그 선생님과 친해질 수 없다고 지레 겁을 먹었을까?
물어보는 말에 대답만 하고 말았던 내가, 간단하게 네, 아니오로 말을 끝냈던 내가,
업무를 하면서 상황 전달을 제외하고 말을 하지 않았던 내가,
점심식사를 하면서 점점 입을 열기 시작했다.
구내식당 반찬으로 나온 과메기를 좋아하냐고, 어제 본 드라마를 보냐고, 출근하면서 보이는 김밥가게 김밥을 먹어봤냐고, 사소한 질문을 선생님들께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하나씩,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질문으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오고 가는 대화 속에 그동안 꽉 다물고 있던 나의 입이 열리며 목소리가 담겼다. 조금은 거리감이 느껴졌던 선생님들과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일을 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직면했을 때,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지 먼저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도 이 센터 속에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입이 터지니 그동안 답답했던 나의 가슴속에 있던 풍선이 펑하고 터진 것처럼 엄청난 속 시원함이 뚫렸다.
두 달간의 실습을 하면서 선생님들과 친분도 얻었지만, 무엇보다 더 큰 성장력은 나의 외국어 실력이었다.
환자분들과 물리치료, 검사를 위해 대기하면서 간단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기 시간에 나와의 수다가 재밌었다는 환자분들의 칭찬을 들으면 그 어떤 때보다 신이 났다.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 누워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는 환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재미난 표현들도 많이 배웠다.
러시아어권 환자들은 동양인이 러시아어를 하는 것이 매우 신기했나 보다,
내가 한 마디만 해도 잘한다며 박수를 치고 칭찬을 해주고 통역 한 마디를 해주면 고맙다며 인사를 해줬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져 대화를 이어나갔다.
배운 것을 통해서 또 다른 배움을 얻을 수 있던 정말 값진 나의 시작이었다.
그 시작을 통해 국제환자센터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1년 뒤에 우즈베키스탄에서 일을 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마침표로 대화를 끝내지 말고 물음표로 꾸준히 대화를 이어나가며 옆에 있는 사람과 더 친해져 보는 건 어떨까
과도한 물음표는 금물이지만 사회초년생에게 물음표 남용을 허용해주는 너그러운 상사분들 가득한 사회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