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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극의 부재

코로나가 나에게 준 우울함의 이유

by 라다


2020년 11월 22일



생일이라 친구와 친구 남자 친구랑 이태원에서

프랑스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아주 작지만 소소한 분위기가 아늑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줬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는 친구의 머슴에게

다리를 오므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지만

다리가 긴 그는 오므리면 불편하다며 다른 다리 무릎 위에 한 다리를 걸쳤다. 마치 기린이 다리를 꼬은 모습처럼 긴 다리가 꽤나 안타까워 보였다.

다시 다리를 편하게 벌리고 앉으라고 했다.



친구와 나는 어떻게 하면 투 턱이 된 얼굴의 살 덩어리들이 조금이나마 덜 부어 보이려고 애썼다.

하지만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입이 없는 카메라가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나?

정직하게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며 무언의 다이어트 잔소리를 전하고 있었다.



재밌게 놀고 서로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추운 코트 사이로 들어와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나의 발걸음 사이로 찬 기운이 가득했다. 뼈가 시린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집에 오는 기차에서 오늘 친구들과 먹은 음식 사진을 보며 그때의 맛과 분위기를 상기했다. 친절하지만 어딘가 진심이 사라진 서버의 웃음이 기억나고 후식으로 마카롱을 주던 중후한 서버의 잘 가라는 말도 기억했다.



비록 세 겹으로 접힌 뱃살이 원피스 천 사이로 빠져나가 그림자를 만들고 얼굴 두 개를 합친 듯 나의 턱 밑에 또 다른 살들이 넘치는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앨범에 가득했지만, 살짝 흔들렸지만 찰나의 웃는 내 얼굴 모습이 담겨있는 것을 보니 난 행복했나 보다.



다음날이 출근이라 더 늦게까지 놀지 못해서 아쉬움을 안고 친구들과 헤어졌지만 그때는 친구들과 노는 여가가 마지막이 될지 몰랐다.



두 달 동안 지인, 친구와 약속이 전혀 없었다. 코로나가 심해지고 만남을 제안하기가 조심스러웠다. 혹시나 하는 이동 경로에 확진자가 나와 같은 공간에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과 내가 먹고 떠드는 그 공간에 나도 모르게 타인의 바이러스 감염요인으로 범벅하게 될 수도 있다는 희박한 가능성의 부담이 두려웠다.



지인들을 만나 특별히 하는 얘기는 없다. 친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직장을 다니지 않는 친구와 직장으로 힘들어하는 내가 만나니 딱히 대화를 할 요소들이 없었다.



나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는데 글쎄 요즘 나의 지인들과의 대화는 어딘가 속이 비어있는 기분이다. 마음 놓고 요즘의 고민을 말하기보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도 어색함 없고 실례가 안 되는 가벼운 대화 정도만 하게 된다.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할 소재도 없고, 그렇다고 직장 이야기를 하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의 생활이 너무나 단조로워서 어떤 일상의 재미를 공유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대화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과의 대화는 나와의 교집합이 있다.

좋아하는 분야라든가 관심 있는 고민이라든가 어떠한 공감이 되는 공통점이 존재해서 그들과의 대화가 유지된다.



한 때는 친했던 사람과 오랜만에 만나면 과거의 그 사람과 나누던 공통점이 시간이 지나면서 차이점으로 변하기도 하다. 이러한 차이점 속에서도 대화가 이루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참 좋은 청력을 가졌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나는 공감이 안 되는 대화는 도무지 이어가고 싶지 않다.



세상살이를 이야기하자니 갈등만 생기고 서로 얼굴 붉히며 다시는 만나지 말자며 실망스러운 대화가 오고 갈 것 같은 토픽들이 뉴스창을 가득 채운다.



외출을 해서 내가 모르는 타인과 마주하게 되는 일화를 주로 지인을 만나면 했는데 최근에는 외출도 안 하고 집과 회사를 반복하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딱히 어떠한 사건도 없다.



조금씩 코로나 확진자 수가 줄어들면서 약속, 만남의 제안이 오게 될 텐데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어색할 것 같다. 나는 정적을 싫어하는데 어색함 이겨내려 어떤 질문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자체가 너무 고통스럽다.



목적이 없는 만남은 대화를 꾸려가기가 힘들다.

이런 생각으로 내가 우울한 이유를 찾았다.

지인들과의 만남으로 어떠한 영향을 받거나 정보를 얻는 게 그런 새로움이 전혀 없다. 긍정적이나 부정적이나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말과 행동으로 얻게 되는 영향력이나 자극은 필요하다.



타인을 만나면서 나와 다른 것을 발견하거나 다른 생각의 자극은 꽤 나에게 큰 삶의 활력을 줬던 모양이다.



공통점 없는 대화를 거부한다면서 무의식에 또 차이점으로 가득한 대화도 나에게는 어떤 자극이 되었나 보다.



이러한 새로운 자극의 부재로 내가 우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나이의 변화인지 호르몬의 영향인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출근하기 싫은 마음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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