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잼
전날 새벽에 보름달이 유난히 크고 밝았다. 부족한 잠을 오후에 잠깐 보충하고 일어나니 눈이 펑펑 내렸다. 와, 첫눈이다, 일부러 기분을 띄워보며 귤을 꺼냈다. 필링까지 완성하고 과자는 보류, 3교 마치고도 바쁘다. 또 한 세트의 교정교열 시작으로.
어제 주문한 히터가 오늘 도착해서 개시했다. 온풍에 몸을 녹이며 교정교열인지 다시 퇴고인지 모를 작업을 하는데 메스껍고 정신이 몽롱했다. 산소를 태우지 않는 방식이라던데, 숨이 부족해서 저 세상 갈 것 같은 느낌, 히터를 끄고도 나아지질 않아 잠으로 피신했다. 돌이켜보니 수면 부족.
저 세상은 천국일 것이다, 나는 믿는다. 이 세상의 지겨움을 견디는 유일한 이유다. 어떻게든 자연사까지 버티려고 많은 일을 한다. 당장 다음 주는 올해 새로 시작한 학위공부 기말고사, 벼락치기할 예정이다. 준비는 적당히, 삶의 지혜다.
철저했던 성격은, 외부요인들로 인해 겪어야 했던 일들로 변했다. 어릴 땐 좋아했던, 시험이란 절차도 이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시험은 예외) 배움은 여전히 좋다. 필요없는 학위 과정을 밟는 것은, 편식하지 않기 위해서.
학점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신청한 과정에서 기대도 안 한 소득이 나오기도 한다. 사업적으로 잘 버무릴 시간이 없어서 문제다. 정말 시급했다면 여기에 끄적거릴 시간에 해결했을 테지만 나는 여전히 권태, 허무와 싸우는 여유를 부린다.
누구나 아닌 척, 무던히 애쓰고 있을 것이다. 혹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죽을 때까지 고민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해답은 없다.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각자 처한 환경에 따른 주관만 넘칠 뿐.
적당히 속을 풀었으니 다시 일해야 하는데, 원문에서 또 얼마나 잘라내야 후회없이 1권을 출간할까, 이 또한 혼자만의 판단. 세상에 정답은 없고, 내 몸 상태와 그에 따른 마음도 어제오늘이 다르니. 다채롭다, 나의 정의다.
결론, 밥부터 먹자. 권태와 허무 끝에 남은, 귤잼이란 자산이 내일의 과자가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