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여 Oct 26. 2020

모닝 리추얼 만들기 프로젝트

반복의 새로운 이름, 리추얼

잠이 들지 않는 밤. 계속 뒤척이다 아직 자기 전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천주교 신자이긴 하지만 내가 자기 전에 하는 기도는 어떤 간절한 바람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편안히 잠자리에 들기 위해 반복하는 행위이다. 나만의 '나이트 루틴'이랄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 무서운 꿈 꾸지 않고 잘 자게 해 주세요.



어린 시절의 나는 잠귀가 엄청나게 밝은 데다 타고난 성향 자체가 예민한 아이였다. 옆사람이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잠을 깨고, 달콤한 늦잠이 허락되는 일요일 오전에도 나 혼자 꼭두새벽부터 거실을 지키곤 했으니까. 겁도 어마무시하게 많아서 온갖 악몽을 꾸다 울면서 잠에서 깨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8살인가 9살 무렵부터 잠들기 전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무서운 꿈을 꾸지 않게 해 달라고.


신기하게 기도를 하고서부터 악몽을 꾸는 횟수가 줄었다. 그래서 매일 기도를 한 게 어느덧 20여 년. 이제 잠들기 전 기도는 내게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 밤, 왜 이렇게 못 자지? 싶을 때 기도를 하면 마치 플라세보 효과처럼 스르르 잠이 들곤 한다. 물론 너무 피곤한 날에는 기도의 ㄱ도 떠올리지 못하고 곯아떨어지지만.




최근 온라인 상에서 '리추얼'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규칙적으로 어떤 행위를 반복한다는 점에서는 루틴과 비슷하지만 리추얼은 반복된 행위를 통해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시작하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에 새로운 활력을 얻기 위해 지속한다는 것에 더 의미와 중점을 둔다고 한다.


그럼 나도 한번 시작해볼까? 나만의 나이트 루틴은 있으니  출근 전 시간을 활용해 모닝 리추얼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리추얼 주제는 아침 글쓰기. 전날 있었던 일이던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사물 혹은 내 감정에 대한 것이던 주제를 한정하지 않고 머릿속을 비우는 느낌으로 써내려 가기로 했다.


시간은 평소보다 30분 일찍 알람을 맞춰 오전 6시 30분으로 정했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날은 손에 꼽고 약 10분 정도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오가며 미적거린다. 그래도 결국에는 몸을 일으켜 명동의 어느 편집샵에서 산 초록색 노트에 초록색 펜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


모닝 리추얼을 시작한 건 9월 22일. 아침 일찍 떠오른 해가 거실을 가득 비추고 있었다. 햇살이 온몸을 감싸 안 듯 편안하고 부엌 너머 큰 창으로는 푸른 숲이 보였다. 그 순간에 깨어 있다는 것만으로 작은 희열이 느껴지며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듯한 고요함이 참으로 달콤했다.


원체 싫증을 잘 내고 포기가 빠른 나. 평소 작심삼일도 잘 지키지 못하는데 점점 날씨가 쌀쌀해지며 나를 포근하게 감싸안던 노란 햇살과 온기가 사라지고, 짜릿하던 고요도 쓸쓸한 정적으로 다가오니 '괜히 시작했나? 그냥 필사를 할까?' 자꾸만 꾀가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로 17번째 모닝 리추얼을 마쳤다. 주말과 공휴일, 컨디션이 너무 저조한 날은 제외 대상이라 이제 17번째다. 30일 동안 30개의 글을 쓰는 예외 없는 도전이 더 그럴듯해 보이겠지만 이번 리추얼의 목표는 내 페이스에 맞춰 30이라는 숫자를 채우는 거다. 느릴지 몰라도 오로지 내 만족을 위한 행위기에, 나는 작심삼일이라는 언덕을 넘어 10이라는 봉우리를 넘었고, 곧 정상에 다 다라 30번째 글을 쓰게 되리라는 걸 안다.


보통 '반복'이라고 하면 지루하다, 힘들다, 괴롭다 등의 부정적인 느낌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반복을 하는 것에는 분명한 힘이 있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면 반복은 훨씬 가치 있어진다. 나의 모닝 리추얼과 나이트 루틴은 소소한 행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하는 이유는 하루 3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수많은 나쁜 반복으로 채워진 24시간의 틈을 비집고 좋은 반복을 만들어 내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부스스한 상태로 일어나 책상에 앉는다. 밤새 굳은 머리와 손가락을 삐걱거리며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이미지, 감정에 대해 적어 내려간다. 글을 쓰며 오늘 하루도 나답게, 나를 지키며 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17번째 모닝 리추얼, 아침운동 끝.

작가의 이전글 250년 된 한옥에서 하룻밤, 아원고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