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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여 Mar 25. 2022

새 직장은 도서관, 사서로 이직했습니다

현직 사서 인터뷰

백조의 꿈


읽고 싶은 책이 생길 때면 동네 도서관으로 향한다. 열람실에 설치된 컴퓨터에서 책 이름을 검색하면 839.61-ㅅ238ㄷ 따위의 비밀스러운 암호가 우리를 반긴다. 보물 찾기를 하는 아이처럼 책장 사이를 비집고 다니지만 애를 써도 원하는 책을 발견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때면 항상 찾게 되는 사람. 유려한 몸짓으로 데스크와 책장 사이를 몇 번 오가고 나면 그의 손에는 어김없이 내가 찾던 책이 들려있다. 컴퓨터 앞에 앉은 모습은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은 물속에서 쉴 새 없이 발을 휘젓는 백조처럼 수만 권의 책들 사이로 쉴 틈 없이 일하는 사람들. 주말 근무가 끝난 일요일 밤, 갓 백조가 된 그녀를 만났다.


소개로 시작해볼까요?

안녕하세요. 서울 모 구립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 중인 이영진이라고 합니다.


일요일인데 오늘도 근무를 하고 오셨네요. 사서로 일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6개월 됐어요. 도서관은 늘 주말에 개방되어 있기도 하고 평일보다 훨씬 이용자가 많아서 주말 중 하루는 출근하는 편이에요.


재작년까지만 해도 출판사 마케터로 일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출판사에 들어갔어요. 약 6년 정도 마케팅과 영업을 했습니다.


6년이면 꽤 긴 시간이네요. 어떤 계기로 이직을 하신 거예요?

초반에는 최신 문학작품이나 작가의 동향을 파악하고, 문화를 선도하는 업계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컸어요. 그런데 소규모 출판사다 보니 매출 압박이 어마어마해서 정신적으로 많이 지치더라고요. 제 취미가 수영인데요. 어느 날 미친 듯이 양팔을 휘젓는 순간에도 제가 매출을 걱정하고 있더라고요.(웃음) 그때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아, 취미생활도 온전히 누릴 수가 없다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컸는지 알겠어요. 여러 직업 중에서 사서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책이라는 공통점 때문일까요?

고용안정성 때문이에요. 전 직장에서는 이 책을 못 팔면 회사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늘 있었거든요. 정규직 사서의 경우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공무원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연봉은 높지 않지만 ‘회사가 망하면 어쩌지’ 같은 고민을 할 필요는 없죠. 또 제가 선호하는 문화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고요. 마음을 먹으니까 다음 스텝은 빨리 결정하게 되더라고요.

 

그럼 사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총 3가지의 자격증 중에서 2급 정사서를 꼭 취득해야 해요. 이 자격증은 4년제 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거나 사서교육원을 수료했을 때 받을 수 있는데요. 저는 이미 대학을 졸업한 상태라 사서교육원에 지원했고, 면접을 합격한 곳들 중에서 가장 단시간에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곳으로 선택했어요.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어요. 주중에는 일하고 매주 토요일마다 12시간씩 수업을 들었어요. 대학생처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도 치러야 했고요. 회사에는 비밀이니까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면 휴가를 내고 시험 준비를 했죠. 내가 이걸 왜 시작했을까 싶을 때도 있었는데 같이 공부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덕분에 교육원을 수료한 지 6개월 만에 정규직 채용에 합격해서 비교적 빠르게 사서 생활을 시작하게 됐네요.

 

그렇군요. 주로 어떤 일을 하세요? 사서라는 작업이 낯설진 않은데 막상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먼저 책을 서가에 꽂고 배치하는 배가 업무를 하고요. 요청하신 책을 찾아드리거나 대출 및 반납을 도와드리기도 합니다. 다만 이건 아주 기본적인 일이고 회사원처럼 각자에게 주어진 일이 또 있어요. 지금 제가 맡고 있는 건 A열람실 운영이에요. 그래서 출근하면 가장 먼저 열람실의 불을 켜고 환기를 시키고요. 책의 등록번호를 매기고 신간 도서들로 구성된 신작 서가도 관리합니다. 이용자들이 열람실을 조금 더 편리하게 이용하실 수 있도록 서가 배치도를 만들기도 하고요. 제가 맡은 열람실만 해도 6만 권에 가까운 책을 소장하고 있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요.


입사하고 나서 새롭게 알게 된 사서의 업무도 있을까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도서관에서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더라고요. 코로나가 워낙 심각한 만큼 저희 도서관에서는 드라이브 스루를 통한 책 대여 서비스도 시작했고요.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역사에 스마트 도서관이라는 일종의 책 자판기도 설치해서 직장인들이 출퇴근길에 책을 빌릴 수 있게끔 하고 있어요. 작가 초청이나 영어 동화책 읽기 클래스 같은 프로그램 기획 업무도 합니다.

아, 저희 도서관이 얼마 전에 리모델링을 했거든요. 청소와 서가 배열하느라 열람실에 있는 책 6만 권을 2번이나 직접 옮긴 거 있죠.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평소에도 책을 들고 나르는 일이 적지 않아서 손에 통증도 생기고 책 먼지 때문에 비염으로 고생하는 분들도 있어요.


와, 6만 권이라니 상상이 안 가는 숫자예요. 사서가 하는 일이 꽤 다양하군요. 일을 하면서 영진 씨가 특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을까요?

막상 도서관에 오면 어떤 책을 고를지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대부분 신간 코너를 이용하시는데 사서인 제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늘 아쉬워요. 안 그래도 작년에 노벨상 시상식이 열려서 수상작 특집으로 서가를 꾸미려고 계획했거든요. 그런데 무산됐어요. 진행하려면 서가 디스플레이에 쓸 책 1권, 대여 가능한 여유분까지 모두 구입해야 하는데 도서관에서는 같은 책을 2권 이상 사려면 내부 회의를 거쳐야 하거든요.

 

도서 구입 기준이 까다로운가요?

새로운 책을 구입하는 일을 수서라고 하는데 매주 열람실마다 요청 도서를 제출하면 회의를 통해 구입 리스트를 결정해요. 예산이 한정되어 있지만 대부분 승인되는 편이고 분기 별로도 수거 작업을 하고 있어서 과정 자체는 그렇게 까다롭지 않아요. 다만 이미 도서관이 보유한 책을 추가로 구입하려면 기존 도서가 노후해서 대출이 불가하거나 이용률이 월등히 높다는 등의 증명 자료가 필요합니다.


매주 신간을 구입하면 기존 책들은 어떻게 되나요? 공간이 한정되어 있잖아요.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책은 보관 서고로 가요. 대부분 소설이나 오래된 학습서, 여행서적인데 지금은 윈도 2000 같은 프로그램을 쓰지도 않고 최신 여행정보도 얼마든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잖아요. 이렇게 잊히는 책들은 보관 서고에서 일정 기간 동안 보관하다가 폐기 처리합니다.


정말로 책을 다 버려요?

네. 처음에는 책을 버리면서 죄책감이 심했어요. 저는 출판사에서 일했잖아요. 책 1권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드는지 아니까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지긴 하네요.


책을 구입하고 관리하고 버리는 것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시네요. 사서로 일하면서 좋은 점은 뭐예요?

일반 이용자는 5권까지 빌릴 수 있지만 저희는 20권까지 빌릴 수 있다는 거?(웃음) 무엇보다 제가 읽고 싶은 책들에 둘러싸여서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아요. 저는 책은 볼펜이나 컵 같은 소모품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출판사를 다니면서 책을 파는 입장이 되니까 저조차도 책을 하나의 상품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책의 메시지보다 매출실적이 우선인 거죠.


출판사 직원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맞아요. 근데 시간이 지나도 제 마음이 편해지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이 고민에서 자유로워졌어요. 이제는 순수한 독자의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고 책을 대하는 제 태도가 훨씬 여유로워졌어요. 이 점이 가장 좋아요.


열람실에서 이용자를 응대하는 일도 하잖아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최근에 어떤 이용자께서 도서관 어디를 리모델링했냐고 바뀐 게 없다고 하소연하시더라고요.(웃음) 저희 도서관은 구청에 소속된 기관이다 보니 민원에 민감한 편이에요. 그래서 더 신경 써서 응대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다 맞춰 드리기는 어려워요. 특히 무기가 될 수 있는 가위나 칼을 빌려 달라는 분도 계셔서 좀 애를 먹고 있습니다.

 

아까 사서는 책을 20권이나 빌릴 수 있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책을 많이 읽으시나요?

단호하게 아닙니다.(웃음) 출퇴근 시간에는 최대한 책을 보려고 하는데 저도 많이 읽지는 못해요. 언제든 서가에 꽂힌 책들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느슨해지네요.

 

사서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긴 시간은 아니지만 6개월 동안 일하면서 느낀 건 사서는 책이 아니라 사람과 일하는 직업이라는 거예요. 이 점을 명심하시면 좋겠고 친화력과 융통성이 있는 성향이라면 일할 때 더 수월할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새해 목표 세우셨나요?

TV 방송에서 유산슬이 펭수한테 새해 목표가 뭐냐고 묻더라고요. 펭수가 “그런 거 없어요.”라고 하던데 저도 마찬가지예요. 주어진 업무에 충실하고 특별해지려고 애쓰기보다는 우선 맡은 책임을 다하려고요. 그럼 좋은 기회도 잘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 과제로 사서 이영진님을 섭외해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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