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내 눈에 익숙한 풍경은 나를 게으르게 하지만, 부스스한 몸을 이끌고 어제 읽다가 만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보거나 며칠 동안 놓아두었던 영어 문제집을 다시 펼쳐놓고 풀다가 고개를 들어 창가에 햇살 가득한 맑은 하늘을 바라보면 어느새 리부팅되어 또랑 해진 나를 발견한다. 얼마 전 새롭게 마음을 먹고 시작한 공부의 다짐도, 이번 방학 동안 해보겠다고 계획해둔 일들이 도루묵이 되지 않도록. 아...아주 잠깐의 방심이 또 나를 둔하게 만들었구나.
시간이 되면 언제든 어디로든 떠나는 여행에서 휴식을 찾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부족함을 채우는 시간이 이번 나의 목표인 만큼 하루하루를 성실한 routine과 긍정적인 생각, 타인과의 소중한 인연 맺기, 차분한 글쓰기로 한 달을 채워보려 한다.
평소 즐겨보던 차이 나는 클라스, 세계테마기행, 걸어서 세계 속으로, 방구석 1열 등 시간이 없어 건너뛰던 회차를 찾아 다시 보기 하는 즐거움, 남들 다 봤다는 동백이도 전 회차를 성실히 사수했고, 동네 바로 앞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은 얼마든지 빌려볼 수 있는 공짜 문화 찬스도 잘 활용했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소소한 집들이를 하며 꽤 괜찮은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늘상 갑자기 닥쳐온 여유로운 시간이 되면 돈을 내어 결과물을 만들거나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무언가를 고민하던 것들에서 벗어나 조금은 느리고 여유로운 일상 속 여행을 찾아보려 했다. 조금 더 너그러워지도, 긍정적이고, 원만한 내가 되기 위해서.
친구들과의 별거 없는 계속되는 단톡에도 의미 없는 수다를 재미있게 받아쳐주고, 여행 중인 친구에게 별 부담 없이 안부를 묻기 위해 보이스톡을 주저 없이 누를 수 있고, 아주 오랜만에 연락 온 동생들의 점심 약속에 부담 없이 밥 한 끼하며 서너 시간 수다를 떨 수 있게 되기 까지...
남들은 이런 것도 노력이냐고 콧방귀 뀔 수 있는 일이겠지만 사실 마음의 여유가 없고 사는 게 버거운 우리 주변 누군가에게든 사치일 수 있는 일상이 아닌가. 몇 년 전의 나에게도 그랬으니까.
시간의 롤러코스트에 나를 맡기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달릴 때, 때로는 아주 긴 터널을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힘들어하기도 때로는 화창한 맑은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즐거움을 행복이라 생각하며 몇 번의 변곡점을 지나며 이 속도가, 이 기분이, 이 방향이 결코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한동안 지루하고 재미없는 태평한 일상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하다가 문득 돌아본 나의 이전 시간들... 다시 한번 나의 망각을 반성해본다.
2020년..누구에게 같은 길이의 삶의 시간이 아니듯,
같은 장소, 같은 일상 속 똑같아 보이는 trick에서 우둔하게 어제와 같은 나일 거라 착각하지 말기를 나 자신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과거의 나를 믿고 과하게 먹고, 적당히 운동하며 20대의 건강체력일 거라 생각하는 오산은 분명 내 몸 여기저기에서 한 번도 맞딱들어 보지 못한 빌런들을 마주 할 것이고, 보기 좋게 ko패 당할 것을 예상한다.
그러니 경계하기를. 패배에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답도 없다.
그래도 한 가지 반가운 건 아직까지 그런 자기 경계와 일상 속 낯섦과 도전이 그리 싫지 않다는 것이다. 여전히 조금은 내가 깨어있으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젊다고 생각하고 무언가엔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문을 열고 아직 가보지 않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며 만나는 낯선 것들에게 조용히 속으로 인사를 건네본다.
'무심한 듯해도 내가 얼마나 설레어하고 기다린 순간인지 넌 모를 텐데..
그래도 환하게 나를 반겨줄래?
내가 무안하지 않도록. ' 라고...내가 먼저 어색하지 않게.
얼마 전 기운 나는 한 편의 글을 읽었다. 누군가의 응원과 위로가 다른 이에게 얼마나 힘이 될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
세상은 넓다.
너를 놀라게 할 일도 많겠거니와
또 배울 것도 많으리라.
축복한다.
이상, <1936년 여동생 옥희에게>
수 천 개의 단어가 아니어도 좋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다짐해본다. 배울게 참 많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