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내 boundary의 그 어느 것도 누구도 쉽게 침범하는 걸 원치 않는다. 나의 경제관, 라이프 스타일, 직업의식, 정치색깔, 좋아하는 음식의 취향과 잠버릇까지도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얼굴과 몸, 생활습관에 나도 모르게 각인되어버린 나다움의 흔적들이 남들과 얽혀 사회생활을 하거나 종종 그 이상의 인맥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스스로를 불편하게 한다. 개.취의 존중만큼 나와 다름의 차이를 자연스레 인정하면 될 것을 자꾸 상대가 하는 말의 뉘앙스에 소화가 안되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딴지를 걸고 속으로 비아냥되는 것 같아 가끔은 스스로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음의 유연한 근육은 왜 그리 단련시켜놓지 못한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끈으로 타인과 묶여있고 얽혀있다는 것.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끊어내려 해도 이 세계를 공유하는 우리들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중요한 건 서로가 부담스럽지 않게 자신의 바운더리 내외에서 적절하게 공존하는 법을 학습하는 것일지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한두 살 먹게 되고 남들이 나를 어른이라 일컫는 어느 순간부터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기엔 버겁기도 하고 외롭다고 느끼는 그 순간부터
혼자 오르는 언덕길에 마음 맞는 동무 하나 조용히 수다를 떨며 가볍게 오를 수 있었으면 하는 그 바램의 순간부터
일상의 재미와 흥분되는 사건의 기억을 공유하고 싶은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그때부터
이런 때가 되면 누군가와 연대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이 뜨겁고 강렬한 바램이 아니더라도 상대에게 부담이 되는 조건적인 눈맞춤이 아니면 더더욱 좋을 그런 연대면 말이다.
서로에게 던져진 필모그래피가 남들 눈에 범상치 않다고 하여, '우리'의 시작을 주저하거나 선뜻 손 내밀지 못하는 용기 없음이 자리잡지 않도록.
내가 조금은 밝고 긍정적이었으면 한다.
부끄러움만 있었던 건 아니다.
외롭고 힘들기만 한 길도 아니었다.
그러니 남은 날들이 얼마일지 몰라도 내 마음 만은 여유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안의 진짜가 정말 행복해질 수 있도록
내가 가진 에너지가 남들에게 더 많이 따뜻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죽다 살아난 사람은 생을 다르게 살아간다.
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마음, 행복한 마음, 그것만이 전부.
지금 더 할 수 없이 편하고 행복하다.
함께 하면서 울고 웃었던 시간.
쓰고 달았던 시간.
무너지고 울었던 시간.
아마도 생의 마지막 순간 돌아보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드라마, 또 오해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