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지만 불행하지는 말아야지.
2020.03.23
경험이 쌓이고 삶의 경력이라는 게 많아지며 이제는 어디 가서 '애송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 만큼,
아니 오히려 꼰대 소리를 듣기 조심해야 할 몸 사릴 나이가 된 것 같긴 한대.
남들 눈에는 자신감 넘치고 당당해 보이는 쿨한 나인 것 같은데. 왜 그들이 보는 나와 진짜의 나는 아직도
이렇게 많이 다른 모습일까?
난 여전히 꿈속에서 누더기에 더럽고 좁은 집에서 늘 도망치고 있고, 준비하나 되어 있지 않은데 곧
시험을 치러야 하는 수험생일 때도 있고, 결혼식이 다음 날인데 아무리 찾아도 어디에서도 신랑의 얼굴은 볼 수 없는 웃픈 상황 속 주인공일 때가 많다. 그 속에서 나는 늘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며 외로워한다.
여전히 그 안에는 나에게 손 내밀어 주는 이는 누구도 없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일하고 친해져야 하는 조직 속에서도 나의 생존 방식과 삶의 모습은 혼자일 때의 나와 꾀 거리감이 느껴지고
나 스스로 낯설어진다.
진짜의 나는 이 두 사람의 어디쯤에 있는 걸까?
지금쯤.. 남들과 비슷한 경로로 그들과 함께 걷고 있는 속도라면
가족을 위해 저녁식사 메뉴를 매일 고민해야 하고 육아에 치여 사는 다른 행복한 82년생 김지영이었을 내가...
어쩌다 적당한 직업과 연봉과 직위와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가정환경에서 편히 잘 자라 혼자 하는 여행을 취미로 결혼의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못하는 골드미스로, 저녁엔 몸매 관리를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남는 시간은 자기 계발하며 YOLO를 즐기며 사는 그 여자가 되어 있는 걸까?
한 달 한 달의 집세 이자를 위해 용돈을 아껴 쓰고 부모의 주택담보대출과 나의 전세자금 대출을 성실히 갚아가며, 하루 10시간 이상을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부모의 억척스러움을 차마 모른 척할 수 없어 틈틈이 가게에 나가 설거지도 해주고 밀린 공과금을 내어주고 곧 분가를 하는 남동생 내외의 집세 계약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내 성과급의 일부를 몇 번의 고민 끝에 내어주어야 하는 한 집안의 장녀 역할을 하는 나름 하고 있는 내 사생활과....
그 어디쯤에서 나는 어디에도 기댈 그 누군가도 찾지 못하고 여전히... 혼자 당당하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있다.
'그럴 바에 나 혼자 가련다. 괜히 누군가에게 빚지고 싶지 않고, 누군가의 짐까지 함께 지고 가고 싶지 않아.
차라리.. 그게 낫겠다 싶어. 조금은 고달플 수 있는 내 생활 속에 누군가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그런 초라한 내 모습을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오픈해가며 자존심 상하고 싶지 않다고'
때로는 그런 각성이 나를 조금 더 당당해지게 하기도 하고, 육아와 부부생활, 고부간 문제 등으로 지친 타인들의 스트레스를 경험하지 않게 되어 나의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최소한 그런 고민들 자체부터 input이 되지 않으니 좋던 나쁘던 그 어떤 결과물도 피드백도 없다. 친구들의 고민 가득한 수다에 때때로 적당히 받아쳐주고 공감해주긴 하지만 사실 내 안에서는 그 어떤 물결도 일지 않는다. 그냥... 나와 다른 세계의 다른 일상일 뿐인 그 일들에 대해서.
난 이미 다른 세계에 와버린 걸까 아니면 환경에 적응하지 위한 본능적인 보호로 그렇게 귀를 닫아버린 걸까?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확신이 없다. 내 감정이 정말 나와 가족을 위해 누군가와의 동행을 단절시켜버린 이미 물 건너가버린 상황인지 아니면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해 그 마음이 기수면하고 있는 것인지... 끝까지 만나지 못할 수도... 끝내 깨어나지 못할 마음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아직...현재...내가..그리 불행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 일이 불분명한 건 누구나 마찬가지고 바로 코 앞에 어떤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는 건 누구에게나 동등하다...
지금 내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의 괴리감과의 싸움이.
그 누군가와도 함께 하지 않고 있다는 외로움이.
나를 불행으로 이끌 이유는 없다.
그렇게 연약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 나 자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Keep going. 살펴보고 느껴보라는 것...
내 삶의 순간을 지나치는 바람과 내 앞에 놓인 돌부리와
오르막길의 헐떡거림이라도 그때의 주변도 항상 살피며 의미를 되새겨보라는 것.
모든 것 하나 허투루 버려두지 말라는 것
그동안 나의 후회는 바로 그것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