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식의 부재
이 조직에 들어온지도 벌써 8년째이다. 부장을 5번 했고, 학교도 3번 옮겼다. 기간 제때까지 포함하면 경력 10년, 5번째 학교이다. 운이 좋게 아직까지 특별하게 진상인 학부모를 만나 뉴스에서나 볼 법한 뒤통수 잡는 일은 겪어보지 못했고, 복무가 들쑥날쑥 지맘대로인 한 두 명의 동료 교사와 약간의 트러블은 있었지만, 직장 내 왕따나 괴롭힘을 겪어보진 않았다. 갈수록 교사로서의 사회적 예우는 저리 가라 '선생님'이 아닌 '공무원', '서비스직'으로 취급받는 게 영 기분이 나쁘지만 나 혼자 참 교사 코스프레를 한다고 그 대세(?)를 꺾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이제는 애들의 싸움도 "학.교.폭.력"이라 단정하며 학폭 전담 경찰관이 학교회의에 당연스레 참여하고, 교사와 학생들의 트러블이 생기면 "아.동.학.대."로 학부모가 교사를 검찰에 고발하는 게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몇 개월에 걸친 진상조사와 진술로 인한 정신적 피폐와 변호사 선임 등 법의 절차와 진행에 드는 경제적 비용도 고스란히 해당 교사가 감당해야 한다. 상대의 리액션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순한 사과만으로 끝내지 않는 화가 아주 많이 나 있는 사회적 분위기. 법을 들이밀면 누구나 갑질을 할 수 있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상대방의 피폐한 모습이 고스란히 내 눈에 보이기 전까지, 어떻게든 법적인 위협으로 상대를 내 앞에 무릎 꿇게 만들겠다는 단오한 의지. 상대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결론은 경찰이나 검찰에서 다 내줄 테니까,, 그 중간 과정에 나는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무책임. 아이의 주머니에 녹음기를 넣어두고, 한 번만 걸려봐라라는 심정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하기란 지금까지 경범죄 한 번 저지를까 말까 한 소심한 인간들에게는 심적으로 쫄리는 위협이 된다. 설령 조사 과정에서 매뉴얼의 원칙을 한 두 건 위반하거나, 경미한 잘못이 있다고 해도 그 과정 중에 사람들의 인식 속에 무자비한 가해는 경중을 가리지 않는다. "혐의 없음"이라는 판결이 나기 전까지 그 교사는 아동학대자가 되고 성범죄자가 되어 있다.
굳이 권력의 양날을 들이밀자면 나보다 힘없고 약자인 아이들의 보호자가 그들의 대변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마땅하지만, 때로는 조금 성숙한 어른으로, 이성적인 판단으로 대화하고 싶은 몰상식한 이들을 마주할 때.
궁색한 나의 변명이 되지 않도록, 나의 처신은 남들의 기대만큼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나에 대한 변호가 평소 나의 행동의 일관성을 증명해주고, 내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교육자로서 매일의 교직생활이 하나같이 "상식"과'보통"의 수준을 어긋나지 않도록 나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일 것이다.
밖으로는 그런 외적의 침입에 대한 자기 방어를 어떻게든 지켜보려 노력한다치자...
조직 자체의 전문성과 미래의 투명성도 사실 보장하지 못한다. 문제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학생들의 수가 절반으로 떨어질 수 있는 내 밥줄의 벼랑 끝에 서 있는데 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위기감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OECD 국가의 교실당 평균 학생 수가 아직도 선진국 수준이 아니다 라고 하며 교육환경의 질적 문제를 크게 부각하고 있지만,, 하지만 그런 "교육의 질" 앞에 과연 선진국 수준의 needs를 운운할 만큼 자신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육아시간, 병휴직, 성과급 결정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 권리를 법적 조항까지 세세히 찾아 관리자에게 안내하면서 자기 업무 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담당자의 의견이 아니면 적극적으로 알아봐 주거나, 학년에 도움되는 일을 찾아 나서는 이가 손에 꼽힌다. "그건 제 업무가 아닌대요", "부장님, 이건 어떻게 해야 하죠?", "학년에서 상의해보죠" , "힘드신데 고생하셨어요. 제가 안 해본 일이라.."
굉장히 수동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집단이다. 자기 업무 외에는 자기 학년 외에는 관심이 없다. 이 조직의 가장 큰 문제는 공동체의 균열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학폭이 발생해도,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해도 관련 교사에게 그 어떤 도움을 주려는 집단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 잘못을 덮어주고 감싸려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심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울 담당자에게 적절한 매뉴얼대로 교권을 보호해줄 액션을 어느 하나 하지 않는 거다. 오롯이 그 사람 혼자 외롭게 규정과 절차를 알아보고 상담해가며 어떻게든 조용하게 잘 넘어갈 수 있도록 모르 척하는 것이다. 이런 집단은 자신이 몸담은 조직에 더 이상 충성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런 재수 없는 일에 당하는 사람이 자신만 아니면 될 뿐. 남들처럼 자신의 관심은 내가 맡은 아이들이 1년 동안 학폭에 연루되지 않는 것이며, 학부모의 적당한 무관심으로 상담기간 최대한 나의 얼굴을 보러 오지 않는 것이고, 갑작스레 생긴 공모사업의 담당자로 내가 pick 되지 않는 것이다. 동학년, 동년배의 교사들과 재미있게 잘 지내다가 학군이 좋다는 학교에 전근 가면 그뿐.
여기서 위와 같은 고민들로 조금 머리가 아플 무렵 우연히 읽게 된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 26p에 작가가 언급하는 요즘 우리 사회의 needs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데 어느 정도 공감한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액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라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다.
여기서 내가 속한 조직에는 바로 "연대"가 빠진 것 같다. 왜 그렇게 자기들의 사정만 엄청 중요하고,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과 협조가 그 사람에 대한 "참견"으로 인식되는지.. 전교조를 비롯하여 교육부 수장이라는 놈들마저도 '공무직'과의 역차별 발언으로 안 그래도 말들이 많은데, 우리는 그 어떤 action 없이 우리에게 침을 뱉으며 모욕하는 이들의 면상에 그 누구 하나 큰 소리로 잘못을 사과하라는 말도 하지 못하는 소심한 집단임이 참으로 답답하다. 내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내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깊은 생각의 공유와 침전된 문제를 명확히 해보자는 시도가 필요하다. 용기 있는 자가 앞서 나가려면 같은 편인 동료들이 따라와 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추진력 있게 지속적으로 용기를 내볼 수 있는 거다. 뒤에는 눈치 보고 바른 소리를 하기 꺼려하면 결국 한 명의 희생자만 생기는 일회성 몸부림으로만 취급될 뿐.
'개인의 프라이버시' 물론, 누구보다 나 스스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존중해야 하지만 필연적으로 내가 속한 사회에서 존중받고 행복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내가 감당해야 하는 나의 책임도 분명 뒤따르는 것이다. 내가 속한 조직에 대한 관심, 문제가 있으면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연대. 그런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면서 동료에게 섭섭함을 논할 순 없다.
나 역시,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그 말의 의미를 내 생활 속에서도 실천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조금 더 편해지고, 귀찮아지고, 힘들어지는 일들을 피하고 싶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자기 할 일만 하고 싶은 게 정상이다. 그러나 도저히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거나, 함께면 조금 더 건설적인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가끔은 함께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럼 나는 어떠한가? 과연 나는 그런 조직의 문제를 나서서 용기 있게 외칠 수 있는가?
어릴 적부터 가져온 남들 앞에 나서는 것에 대한 이상한 공포와 두려움. "나댄다"라는 시기 어린 눈빛의 열기를 피하고픈 나의 소심함이 과연 내가 이 조직 사회에 잔다르크로 '나댈만한 자'인지는 모르겠으나, 경력 8년 부장 5년 차 연배를 가지고 돈을 벌고 있는 생계형 교사인 나에게 남일 불 구경하듯 그리 무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듯싶다.
기왕이면 조직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의견은 조금이라도 내려고 노력할 것이며, 무엇보다 내가 있는 이 집단의 문제들에 대해 법과 규정에 대한 상식적 이해 정도는 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이해하고 남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최소한 우리들의 문제는 우리가 제일 잘 해결할 수 있다.
공동체에 대한 배려, 사회적 연대와 공존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로 한걸음 성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