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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Nov 06. 2022

그깟 꽃이 뭐라고

 누군가의 결혼식에 가면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이 있다.

양가의 축의금 받는 곳 바로 옆 길게 늘어져있는 화환들..'xx산업, xx모임, xx이사회, xx동창회' 양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경제활동과 결혼하는 사람들의 근무지, 출신학교 등도 분홍색 리본에 촘촘히 적혀 얼마 정도의 하객이 식장을 채울지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경제지표가 되는 화환들.

 그래서 나는 무의식 중에 나도 모르게 화환의 개수를 센다. 그 집안 부모들의 인맥과 경제력이 얼마인지를 화환의 개수로 가늠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기가 죽는다. 20~30대엔 남의 결혼식에 가서 그 화환을 보는 게 그저 부럽고 먼 일처럼 아득했다... 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결혼을 엄두도 못 내는 나에게 남의 결혼식은 그저 마음 한쪽 괜스레 상처 내고 돌아오는 곳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그 결혼식장의 주인공이 내가 되는 날이 되었을 때 예상했던 대로 나의 결혼식 화환 자리는 썰렁했다. 엄마와 아빠는 결혼식 준비에 일절 어떤 보탬도 주지 않으셨고 일 년 전 식당도 그만둔 터라 경제활동도 하지 않았고, 식당을 계속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 자리가 허전한 건 마찬가지였을 터. 남들처럼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는 부모님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사회생활에 열을 올리며 관계를 쌓아놓은 것도 아니였던지라 화환의 빈자리가 남들에게 우리 집의 빈수레를 대놓고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지난 주말 친한 동생의 결혼식에 갔다가 결혼식장 입구에 줄지어 놓인 화환들을 보며 내 처지가, 얼마 전 나의 결혼식과 오버랩되며 괜스레 초라하고 자존심 상했다. 최근에 공무원에서 퇴직하신 신부 측 아버지의 멋들어진 덕담도, 신부를 신랑에게 건네주며 따뜻하게 웃어주던 아버지의 인자함도 5개월 전 내 결혼식에서 볼 수 없던 그 부러움이 왜 섭섭한 감정으로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 순간도 어색하고, 신랑에게 후다닥 손을 건네주고 나에게 아무 리액션 없이 퇴장하던 우리 아빠의 무정한 뒷모습, 신혼여행을 가는 딸내미에게 아무 말 없이 집으로 서둘러 후다닥 돌아가는 모습. 본인의 형제 중 누가 올까에만 신경 쓰고, 신혼여행 가는 길에 맛있는 거라도 사 먹으라고 신경조차 써주지 않는 모습이 내게 편지를 건네주며 며느리로서 나를 맞이해서 너무 기분 좋다고 말씀해주셨던 시어머니와 대비되며 내 옆에 있는 남편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참 씁쓸하고 슬펐다.

 마음속 한 구석에 그런 서운하고 서러움 감정들이 고스란히 쌓여있다가 지난주 동생의 결혼식에 줄지어 놓인 화환들을 보며 쏟아져 나온 모양이다. 좋은 환경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곱게 자라 내가 지금 느끼는 이런 감정들을 경험해보지 않았을 눈앞의 신부가 조금 질투가 나기도 하고.



 이 글의 마무리를 어떻게 이어갈까 고민을 하다가 많은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그래도 시간이 내 마음을 다시 잠잠하게 만들어줬다. 그 당시의 서운함과 서러움은 다시 나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꾸려고 노력했고, 내 친정 식구들에 대한 서운함보다 새로운 나의 가족에 집중하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으로 서운함과 속상함을 메꾸는 것이 더 나를 위한 응원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앞으로 여러 번의 결혼식에 참석할 텐데 그때마다 식장 앞에 놓인 화환이 또 얼마나 내 지난 감정을 쑤셔 놓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지나온 나의 시간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야겠다고 생각하며. 남들 앞에 조금이라도 기죽지 않으려는 나의 자존심과 괜한 열등감을 10만 원도 채 안 되는 인조적인 꽃다발과 커다란 리본의 글귀에 내 허영심을 들키는 게 아닐까 두려워했던 그때가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이름 모를 풀꽃을 좋아한다.

작고 여리여리한 자연스러움을 보고 '꽃이 참 예쁘구나!'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녹차밭의 개운한 향도 기분 좋고, 가을철 소국을 맨손으로 보드랍게 만졌을 때 나는 그 촉감도 좋아한다.

인위적이고 조악스러운 손바닥 크기의 여러 개 꽃들을 날카롭게 찔러 쌓아 놓은 그것에 마음을 두지 말자고 생각한다. 한 시간 남짓, 타인의 눈요기로 쓰이는 꽃에 마음을 쓰진 말자고.

괜한 내 마음 한 구석의 옹졸함을 예쁜 꽃에 탓할 필요가 있을까?

마땅히 그 자리에 누구를 위한 목적 없이 피어있는 꽃들에게서 오늘도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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