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명절,
여느 때처럼 남편은 아버님과 거실에서 밤을 깠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달리 직접 산적을 구웠다. 나와 함께 설거지도 했다. 내가 기름때를 세제로 닦아 건네면 남편은 그릇을 물에 뽀득뽀득 헹궈낸 뒤 식기 건조대에 쌓았다. 별거 아닌 이 행동이 내게는 퍽 감격스러웠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주방에 들어오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보면 안 되는 것을 감춰두기라도 한 듯 남편이 싱크대 주변만 어슬렁거려도 펄쩍 뛰며 쫓아내기 일쑤였다. 오매불망 손에 물 한방을 안 묻히고 곱게 키운 아드님인가 싶었는데, 남편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결혼 전에는 혼자 밥을 차려먹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장가를 가고 나니 주방 출입이 금지됐다. 이제는 어여쁜 며느리만이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총각 시절이 그리울 남편에게 설거지의 추억을 돌려주고 싶었다.
결혼 후 첫 명절, 몇 번이고 그를 주방으로 소환하려 노력했지만 시어머니는 그때마다 철벽 수비로 남편을 막아섰다.
“아들, 남자가 왜 주방을 흘깃거려? 거실에서 아빠랑 TV나 봐. 음식은 악아랑 내가 해도 충분해.”
충분하다는 것은 일당백의 든든한 일꾼이 교체 투입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설거지를 잘하게 생긴 팔뚝 굵은 며느리에 대한 믿음이 남다르시다. 허나 저는 그리 믿음직한 스타일이 아닙니다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남자 주방 출입 금지’ 명령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손을 맞잡는 시대에도 대한민국 집구석에는 아직도 주방과 거실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 보이지 않는 ‘가사 분계선’이 굳건했다.
자유로이 이쪽저쪽을 오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남편은 주방으로 넘어오려는 시도를 몇 번 해보다가 어머님의 상시 경계태세에 기가 눌려 곧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내 편이 되어 주리라 생각했던 남편조차 돌아서고 나니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됐다.
아군 하나 없는 원정경기에서 제 페이스를 찾긴 쉽지 않았다. 평소라면 남편에게 빨리 일을 도우라며 잔소리 폭격을 날렸을 텐데 그날은 마치 밀린 외상값을 일당으로 갚으려는 궁상맞은 여주인공처럼 침묵을 지켰다. 결국 입 한 번 뻥긋 못하고 대패했다.
곰곰이 실패의 원인을 분석했다. 시가의 낯선 분위기에 당황했고, 시부모님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컸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시누이 등에 대한 선수 파악의 불충분이 긴장감과 두려움도 가져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는 치욕스러운 패배를 가슴에 품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결전의 날을 기다리며 남편 집중 공략부터 들어갔다.
남의 집에서 홀로 설거지를 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상세 이론을 전달하고, 직접 처가에서 설거지를 해보는 실습 과정을 거쳤다. 그는 어느 정도 나의 고충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일단 남편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이다.
또다시 마주한 명절, 시가의 풍경은 여전했다. 여자들은 주방에서 종종거렸고 남자들은 거실에서 여유로웠다. 그렇게 교육을 시켰건만, 남편은 여전히 주방 출입을 두려워했다. 어머님의 불호령이 떨어질까 일부러 주방 쪽을 외면하는 듯했다.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틈만 나면 그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거사를 도모하는 부부사기단처럼 사인을 주고받으며 적절한 타이밍을 노렸다.
남편은 밤 까기를 마쳤는지 기지개를 한 번 켜고는 깐 밤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적진 침투까지 무탈하게 이뤄졌다. 남편은 오랜만에 들어온 주방을 둘러보며 내 곁을 맴돌았다. 이것저것 참견하고, 음식을 집어먹기도 하고, 기름 냄새도 킁킁거렸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주방에 들어온 것이 못마땅한 표정이긴 했지만 하는 일이 없으니 굳이 나가라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이때다 싶었는지 침 한 번을 꿀꺽 삼키더니 아주 어색한 말투로 “아이고, 설거지가 많네”라고 말했다. 누가 봐도 내가 시켜서 하는 것 같은 영혼 없는 멘트였다. 나는 일부러 싱크대에서 멀리 떨어졌고, 남편은 고무장갑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시어머니가 남편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제롬 보아텡(독일 프로 축구의 최상위 리그에서 뛰는 수비수)보다 빠르고 정확한 수비 능력이 감탄을 자아냈다. 남편에게 뺏은 고무장갑은 곧장 내게 패스하셨다. 나는 얼결에 장갑을 받아 들었다. 한순간에 상황 종료.
재빠른 판단력과 날렵한 움직임,
어머님은 이곳에 있기에 너무나 아까운 재능을 갖고 계십니다.
주방이 아닌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세요!
그러나 주방을 떠난 것은 어머님이 아니라 남편이었으니. 남편은 어머님에게 등짝 스매싱을 시원하게 한 대 맞고는 터덜터덜 그라운드를 떠났다.
남편이 없는 주방에서 무임금 노동을 하고 난 뒤의 기분은 굉장히 불쾌했다. 그런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면 예외 없이 서먹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나는 불쾌지수가 높아져 말수가 줄어들었고, 남편은 눈치가 보여 쭈뼛거렸다.
가족 간에 친목을 도모하고 화합을 추구하는 명절이건만, 어째 명절을 겪을 때마다 우리 사이에는 벽이 하나씩 쌓였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정면 돌파는 위험했다. 조금씩 천천히 움직이기로 했다. 내가 너무 보잘것없어 보여 상대가 마음을 놓았을 때를 노리자. 모름지기 공격은 적이 방심한 틈에 이뤄져야 하는 법이니까.
다음 명절, 시가에 가니 남편의 주방 출입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처음에는 통제가 철저했는데 한번 주방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시어머니도 그 모습을 크게 불편해하지 않으셨다. 어쩌면 그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근처를 뱅글뱅글 돌다가 이내 사라지는 남편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그 모습이 이제는 익숙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남편은 여느 때처럼 주방을 얼쩡거리다가 전을 부치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 부부는 계란물이 먼저냐 밀가루가 먼저냐에 대한 시답잖은 이야기를 던지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다. 시어머니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뒤집개를 남편에게 토스했다. 나는 유유히 가스레인지 앞을 떠나 화장실로 피신했다. 한 템포 쉬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왔을 때까지 남편은 전을 부치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이 그토록 듬직했던 적이 없었다.
“아들, 이제 악아 왔으니 어서 나가. 네가 언제 전을 부쳐봤다고 부산스럽게 그래. 얘가 아주 명절 음식을 망치려고 하네.”
음식을 못하면 주방에서 당당히 나갈 수 있다니, 왜 그걸 이제 말씀하셨나요. 손맛이 없기로는 남편보다 제가 월등히 뛰어납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눈을 토끼처럼 뜨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것은 남편에게만 적용되는 특약이었다.
서툰 솜씨로 두부 전을 찢어먹어도, 도라지나물을 인삼보다 쓰게 만들어도 시어머니는 내게 언제나 너그러웠다. 요리를 못하는 며느리를 주방에서 내쫓는 야박함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명절에도 남편은 주방을 기웃거렸다. 참으로 꾸준히 움직이는데 그에 비해 큰 성과는 없었다. 두부와 동태전을 부치고 잠시 한숨 돌리고 있으니 남편이 소고기를 집어 들었다. 시어머니에게는 “고기는 내가 제대로 굽는다”라며 너스레를 떨고는 소고기 산적을 굽기 시작했다.
“자기가 소고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굽잖아. 어머님, 남편이 구운 거 드셔 보셨어요? 진짜 맛있어요. 육즙이 살아 있다니까요.”
“그래? 우리 아들이 그럼 맛있게 좀 구워봐.”
열심히 부채질을 하니 남편의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어머님도 의지가 넘치는 남편의 모습에 한발 물러섰다. 정식으로 남편에게도 프라이팬을 잡을 수 있는 허가가 떨어졌다. 그동안 며느리가 만든 산적이 마음에 안 들어서였는지, 아니면 남편이 주방에서 일하는 모습이 이제는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이유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시어머니, 나, 남편이 주방 안에 함께 있으며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남편은 고기를 다 굽고는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하는 내게 “도와줄까?”라고 물었다. 사실 좁은 싱크대 앞에서 둘이 꼭 붙어 설거지를 하는 것은 혼자 하는 것보다 더 번거롭고 불편하다. 남편은 손도 느려 별다른 도움도 되지 않는다. 후딱 끝내고 쉬려면 차라리 혼자 하는 편이 훨씬 낫다.
하지만 굳이 남편에게 “그래, 혼자 하면 힘들어. 같이 하자”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은 불편해도 함께 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나중에는 남편이 홀로 설거지하는 날도 올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우리 부부의 대화를 들었지만 다른 말씀을 하진 않았다. 만약 남편이 홀로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면 분명 고무장갑을 뺏어 드셨을 것이다. 하지만 ‘도와준다’ 말하고, 나는 거절하지 않으니 썩 내키지는 않았겠지만 말리지도 못했다.
속으로는 설거지가 얼마나 된다고 둘이 같이 하냐며 유난스럽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남편이 시가 주방에서 홀로 설거지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의 시꺼먼 꿍꿍이까지는 눈치채지 못하셨지만.
남편이 시가에서 고무장갑을 끼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겨우 그까짓 것을 하는데 참 많은 에너지와 마음을 썼다.
그럼에도 계속해야 할 이유는 명확하다.
아주 느리지만 뭔가 달라지고 있으니 말이다.
안녕하세요, 악아입니다 !
위클리 매거진 10회 연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동안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많은 응원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 책도 출간할 수 있었네요! 브런치에 모두 담지 못한 얘기는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니 많이많이 찾아주세용 ㅎㅎ 앞으로도 종종 브런치로 재밌는 얘기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카밍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