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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아 Feb 22. 2019

착한 며느리라는 괴상한 칭찬

나는 유독 손재주가 없다. 손이 투박하고 못생겨서인지 섬세한 손기술이 요구되는 거의 모든 일에 엉망이다. 고등학교 가정 시간에 파우치를 만드는 실습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나의 작품을 보고 깊은 탄식을 내뱉으셨다. “오랑우탄이 바느질해도 이것보다는 낫겠다”며 일찍이 나의 손재주를 몹쓸 것으로 판명하셨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했기에 조물조물 손으로 만드는 모든 일은 가능한 멀리하려고 노력했다.


남다른 솜씨를 타고났지만 딱 하나 야무지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만두 빚기다. 가족 모두가 만두를 좋아하다 보니 식구들이 모여 앉아 만두를 빚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혀끝이 만두 맛을 조금씩 알아가던 유년 시절부터 만두를 빚어 나름대로 경력이 20년을 훌쩍 넘는다. 얇은 만두피가 터질 듯 소를 가득 넣고도 매끈하고 기품 있는 모양새를 완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만둣집에 위장 취업해 몰래 만두 몇 개를 빚어내더라도 결코 나의 것과 아주머니들의 만두를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야 만두 장인 (사진=밥블레스유)


요즘은 이런 만두 빚기 실력을 발휘할 자리가 없어 조금 섭섭하다. 지난해부터인가 친정에서는 만두 빚기 가내 수공업을 중단했다. 집에서 만든 것보다 더 맛있는 만둣집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입맛 까다로운 아빠도 인정한 맛집이었다. 개성식 만두전골을 파는데 칼칼한 국물과 주먹만 한 왕만두의 조화가 감동적이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갈 때마다 잔뜩 포장해 냉동실에 쌓아둔다.


남편에게도 만두 맛을 보여주기 위해 친정에 다녀오는 길 일부러 들러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만두라고는 고향의 냉동 맛밖에 몰랐던 그는 잃어버렸던 미각을 찾았다며 기뻐했다. 내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만두전골을 맛있게 먹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괜히 뿌듯했다.      


“아버님 만두 좋아하신다고 했지? 포장해서 갖다 드릴까?”


언젠가 시아버지가 만두를 좋아한다고 하셨던 말씀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남편은 좋은 생각이라며 식구들이 다 같이 먹을 수 있게 넉넉히 포장해 가자고 했다. 전골용 육수와 만두, 채소와 칼국수까지 야무지게 챙겨 들고 시가로 향했다. 시누이네 부부까지 모여 다 같이 만두전골을 맛있게 먹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뜨거운 전골을 호호 불어먹는 그 재미가 쏠쏠했다.


다들 맛나게 드셨나요 (사진=밥블레스유)


그로부터 한 달 뒤, 다시 시가를 찾았을 때다. 부엌에서 식구들이 먹을 과일을 시어머니와 함께 준비하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왜 만두전골 안 사 왔니?


어머님이 내게 맡겨 놓은 만두전골이 있었던가, 잠시 고민했지만 내게는 딱히 갚아야 할 만두가 없었다. 왜 사 오지 않았냐고 물어보셨지만 나는 왜 사 와야 하는지를 도리어 묻고 싶었다. 시어머니는 지난번 사 온 만두전골을 식구들이 맛있게 먹었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사 올 거라고 생각하셨다. 만두전골을 사 오지 않은 며느리에게 서운함을 내비쳤다. 만두 속 터지는 소리인지 내 속이 터지는 소리인지, 갑자기 마음속이 시끄러워졌다.


어미 새가 물어올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들처럼 모두가 내가 아닌 내 손에 들려 있을 만두전골만 기다렸을 텐데, 이렇게 배려심이 없었다니. 나의 짧은 생각을 깊이 뉘우쳤다. 혼잣말치고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던 어머님의 중얼거림은 나를 반성하게 했다.


헛기침하며 자리를 피하는 나를 보며 어머님은 내심 다음에는 만두전골을 먹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셨을 것이다. 나는 과일을 식탁으로 가져가며 굳게 다짐했다. 다신 만두전골을 사오지 않으리라!  


호의를 베풀고도 욕을 먹었다. 애초에 만두전골을 사 오지 않았다면 듣지 않았을 잔소리였다. 시가에 갈 때마다 만두전골을 들고 갈 것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사지 말았어야 한다고 후회했다. 아무도 내가 좋은 마음으로 사 왔던 만두전골을 배불리 먹은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시아버지가 좋아하는 만두전골을 다시 또 사 오지 않은 며느리의 야박함만 곱씹을 뿐이다. 이렇게 또 인생을 배운다.     


내 맘은 아무도 몰라 (사진=무한도전)


아홉 번 착한 행동을 하다가 한 번 무심해지면 서운함은 배가 된다. 아홉 번의 배려를 기억하지 않고, 한 번의 섭섭함만 떠올린다. 열 번을 모두 잘할 것이 아니라면(그래도 본전이겠지만) 아홉 번이든 여덟 번이든 호의는 의미가 없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착한 행동을 열 번이나 할 자신이 없다.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꾹꾹 참아가며 열 개나 하는 것은 수명 단축의 지름길이다. 잘 보이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마음에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내 방식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결혼 후 시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린 적이 손에 꼽힌다. 생신 때나 의논할 일이 있는 경우, 특별한 용건이 있을 때만 전화를 한다. 어릴 적부터 통화 매너는 ‘용건만 간단히’라고 배웠는데, 그것에 충실해지려 노력한다. 이유를 명확히 할 수는 없지만 통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그렇다.


시부모님이 아니라 그 누구와도 용건 없이 전화기를 들고 수다 떠는 일은 전혀 없다. 연애하던 때, 남편은 “어떻게 한 번도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있냐”라며 서운해 한 적도 있다. 통화 목록을 살펴보니 최근 몇 달간 남편에게 전화를 건 적이 없었다. 연애 상대에게도 그 정도이니 다른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다. 수다 레벨이 생애 최고점을 찍던 10대 이후에는 친구와 몇 시간씩 통화를 한 기억이 없다.


어쩌다 한 번씩, 용건이 있어 전화를 하면 시부모님은 에둘러 서운함을 표현하신다. “아휴, 이렇게 전화하니 얼마나 좋니”, “목소리 한 번 듣기가 힘들구나”, “요즘 많이 바쁘니” 등등. 그런 말에 절대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불편한 마음으로 안부 전화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는 마음 편히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


카톡 지옥도 마찬가지다. 결혼 후 시가의 단톡방에 끌려 들어갔지만 그 방에서 나의 존재감은 깃털처럼 가볍다.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게 아주 조용히 몸을 숨기고 있다. 매일 아침 어머님은 출처가 심히 궁금해지는 글귀와 짤 등을 퍼 나르시지만 나는 결단코 답장을 하는 일이 없다. 한번 시작하면 아침마다 ‘오늘은 어떻게 리액션을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할 것이 뻔하다. 굳이 그런 스트레스까지 찾아가며 챙기고 싶지 않다.      


못난 며느리를 용서하세요 (사진=그겨울바람이분다)


반면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찾아 하는 것이 있다. 시조부님을 챙기는 일이다. 결혼 후 처음 시할아버지의 생신 잔치를 하던 날, 남편은 외국에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나는 혼자라 조금 멋쩍기는 했지만 잔치에 참석했다. 백화점에서 1시간을 심사숙고해 고른 모자 선물을 들고, 함께 오실 할머님을 위해 작은 꽃다발도 하나 샀다.


얼마 전에는 시할머니의 생신이었다. 할아버님의 생신에는 식구들이 밥이라도 함께 먹는데 시할머니의 생신은 따로 챙기지 않는다. 쓸쓸하시겠구나 생각이 들어 슬쩍 남편에게 외갓집 주소를 물었다. 꽃배달을 하나 보내고는 시할머니에게 생신 축하 전화를 드렸다.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여자들은 꽃을 좋아한다고 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할머님도 꽃을 받고 무척 좋아하셨다.


남편은 본인도 못 챙기는 혹은 안 챙기는 시할머니의 생신까지 챙기는 모습에 퍽 감동한 눈치였다. 그것은 시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시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며느리를 잘 얻었다”라고 전화를 하셨고, 어머니는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 한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가 쏘아 올린 작은 꽃바구니는 모두를 기분 좋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나 칭찬 받은거? (사진=무한도전)


남편과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듣고 참 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홉 번 못하다가 한 번 잘하는 것을 모두가 기특해하니 말이다. 착한 며느리가 되기 위해 싫은 일을 꾹 참고 했을 때는 아무도 그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던 것이 떠올라 헛웃음도 났다.


착한 며느리 되길 포기하니

착한 며느리 소릴 듣게 되는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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